최근에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어요. 서울에 사는 그 친구는 지난 3월 1일 A형 독감으로 폐렴이 악화돼 폐혈성 쇼크까지 일어나 중환자실에 입원했었죠. 그때 폐가 너무나도 많이 소실됐다면서 담당 의사는 그 친구가 살아날 확률이 극히 미미하다고 했었죠. 그런데 6일 만에 일반 병실로 옮겼을 땐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고 한 달 만에 퇴원했을 땐 모두가 감격했죠.
지난 5월 14일 목포에 있는 한 장례식장에서 그 친구를 봤을 땐 꼭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어요. 하지만 눈에 띄게 달리진 게 있었어요. 여유로움과 따뜻한 미소였죠. 물론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고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그로서는 삶의 여유가 있을 수 없죠. 하지만 죽음의 터널을 지나 제 자리를 찾아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유를 느끼고 있는 그였죠. 더욱이 예전 같으면 자기 생각과 다른 말을 하면 곧바로 맞받아친 그였지만 그때는 잔잔한 미소까지 보여줬으니 참 따뜻했어요.
“내가 알던 세계가 얼마나 한 순간에 종말을 맞을 수 있는지 이제는 너무나 잘 안다. ‘내일 봅시다’라고 가볍게 인사하고 1년 넘게 회사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검진을 앞둔 전날, 내가 숨 쉬는 공기는 조금 더 매서워지지만 나라는 사람은 조금 더 따뜻해진다.”(172쪽)
최지은의 〈그렇게 나는 다시 삶을 선택했다〉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현대카드, 스탠다드차트드은행, JP모건, 메타에 이르기까지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던 37살의 그녀가 갑자기 자궁경부암 3기 진단과 함께 9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세상은 노랗게 변했겠죠. 더욱이 항암치료 중 폐로 암이 전이된 걸 발견했으니 살 소망조차 놓았겠고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암보다 더욱 빠르게 온몸에 퍼져나가는 중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소아암을 앓고 있는 5살 아이를 병원에서 마주쳤죠. 그때 그녀는 자신이 잘못해서 아픈 게 아니라 교통사고 같은 걸 당했다고 생각해요. 암보다 더 어리석은 자신의 자포자기한 무책임한 태도도 발견하고요. 그날부터 죽음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한다면서 유서를 쓰고 새로운 생을 결단하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엄마가 만든 배 터진 김밥도 열심히 먹었어요. 그만큼 포기할 줄 모르는 엄마와 10년 연애 끝에 결혼한 인도 출신 남편의 불타는 집념 덕에 그 터널을 통과한 것이었죠.
지금도 죽음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녀지만 이제는 회사 생활도 제자리를 찾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생존율 50%를 위해 3기 치료받던 시절보다 생존율 15%를 향해 발버둥 치며 4기 치료받던 그 시절을 더 즐거워하면서 말이죠. 언제 떠날지 모를 인생임을 알기에 가족과 일터의 동료들과 그를 아는 이들에게 더 따뜻하게 감사하면서 말이죠.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출23:16)
이스라엘 백성은 매해 세 절기를 지켰어요.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이죠. 유월절은 43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해방된 날로 인생의 재 탄생을 기념토록 한 거죠. 맥추절은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 칠칠절로 불렸는데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이고 신약시대엔 성령님이 강림한 날이죠. 애굽 방식을 모방하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제 자리를 찾을 때 경제적인 자유를 누린다는 거예요. 수장절은 가을의 소출을 거둬 축제하는 날로 초막절로도 불렸죠. 수장절은 한 해의 마지막과 함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바라보는 날이자 각자 인생의 마지막을 내다보는 날이기도 해요.
우리나라 기독교는 7월 첫째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어요. 보통 보리를 추수해서 감사절로 지켰죠. 하지만 대맥(大麥)은 보리를, 연맥(燕麥)은 귀리를, 소맥(小麥)은 밀을 뜻하지만 ‘맥’(麥) 하면 보리만 떠올리기가 쉽죠. 더욱이 농경사회에서 6월 중순에 보리를 수확해 7월 첫 주에 감사절을 지켜온 전통이 있었고요. 그런데 ‘맥추절’로 번역된 히브리어 ‘וְחַג הַקָּצִיר’(하그 카찌르)는 ‘수확의 축제’를 뜻하는 말이에요. 첫 결실의 기쁨이죠. 그러니 산업사회에 맞게 이제는 맥추절의 제 자리를 찾아 한 해의 전반기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절기로 지키는 게 좋겠어요. 2025년 전반기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으니 더욱 감사할 일이고요.
뭐든지 제 자리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제 욕심을 좇아 더 많은 돈을 움켜쥐려다가 뒤늦게 사기인 줄 알고 후회하지만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듯 말이죠. 건강을 잃었을 때 그 전의 건강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도 어렵고요. 더욱이 죽음의 터널을 지나왔고 또 지나고 있는 분들도 제 자리를 찾는 일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죠.
그것은 생존율 50%를 위해 3기 치료받던 시절보다 생존율 15%를 향해 발버둥 치며 4기 치료를 받던 그 시절을 더욱 즐거워한다던 최지은도 마찬가지겠죠. 수술과 항암치료와 후유증으로 1년간 비운 회사의 제 자리를 다시 찾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겠죠. 그래서 언제 어느 때라도 떠나야 할 존재임을 알기에 매 순간순간 동료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며 감사하며 살고 있는 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