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죠.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못 쓰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말을 잘 못한다고 말이죠. 언어 구사력과 글을 쓰는 문장력의 상관관계는 떨어져 있어서 그러는 걸까요? 물론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도 있죠. 다만 그의 말과 글이 얼마나 감화력을 주고 얼마나 생각의 세계를 넓히는가는 다른 차원이겠죠.
이어령 선생은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이었어요. 남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새롭게 비틀어서 놀라운 발상을 해 왔으니까 말이죠.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잔잔한 감동을 받기도 하고 상상력도 활짝 뻗어나갔죠. 그가 저 세상으로 떠난 지 벌써 3년이 됐는데 그가 남긴 스피치는 어떨까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제자들과 나눈 것은 먹는 것이었습니다. 빵을 주면서 ‘이것은 내 살이다’ 포도주를 주면서 ‘이게 내 피다. 나를 통째로 먹어라’라고 하셨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네가 내가 되는 것, 영혼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91쪽)
고(故) 어어령 선생의 3주기를 맞아 펴낸 〈이어령, 스피치 스피치〉에 나오는 말이에요. 예수님이 제자들과 나눈 성찬식의 행위 자체가 서로 간에 영혼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라는 것이에요. 그런 관점처럼 우리나라의 경제 논리도 기존의 경쟁 중심 논리에서 벗어나 자연 생태계처럼 순환하고 협력하는 ‘생명 자본주의’ 경제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하죠.
그를 위해 창의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해요. 꽁꽁 언 강이 녹으면 ‘물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어령 선생은 ‘봄이 온다’고 답할 수 있는 이에게 주목하라고 말하죠. 여름철 모기 때문에 어머니는 창을 닫자고 하고 아버지는 시원한 바람을 맞자며 문을 열라고 할 때, 자식은 어찌 해야 할까요? 상충되는 두 요구를 충족할 방안으로 ‘방충망’을 설치한다고 하죠.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생각을 할 때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난다는 뜻이에요.
사실 이 책은 이어령 선생의 많은 강연 중에 기업경영인을 대상으로 한 아홉 편을 추린 거예요. 그의 스피치는 단순한 전달력을 넘어 독자들의 감성을 움직이고 사유를 확장시키는 큰 힘을 지니고 있어요. 보통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지만 그 사람의 말과 생각이 살아 있다면 그만큼 오래 사는 사람이겠죠. 이어령 선생이 꼭 그렇죠. 그가 행한 스피치와 문장은 지금까지도 살아 있어서 발상의 전환을 꿈꾸게 하니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우리말 ‘떡’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르토스’(ἄρτος)는 ‘빵’을 의미해요. 신약성경에 98회 쓰였는데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레헴’(לחם)과 같은 말이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 벳새다 벌판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토막으로 오천 명을 먹인 후에 행한 스피치죠. 디베랴란 로마의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 Julius Caesar Augustus)의 이름을 따서 붙인 거예요. 황제의 마을에서 놀라운 기적을 맛본 군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해 자신들의 경제적인 필요를 충족코자 했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홀로 산으로 갔어요. 그 후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가버나움으로 갈 때 예수님도 합류했고요. 그 군중들은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거기까지 따라왔죠. 그때 그들과 나누면서 행한 스피치가 바로 이 말씀이에요. 로마 황제가 주는 떡은 정치적으로 목마른 떡이지만 당신이 주는 떡은 영생하는 떡이라고요. 예수님의 스피치는 지금도 살아 있는 스피치로 많은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어요.
이어령 선생은 그간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애당초 대립할 수밖에 없는 원리라고 했죠. 경제 자유를 추구하는 산업주의는 탈락자를 만들고 정치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화는 공생을 원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요. 그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명화’로 내다 봤죠. 한 생명이 어떤 자본보다도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면서 말이죠. 거대한 자본 없이도 온 국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BTS나 봉준호가 그렇다는 거죠. 그것이 ‘생명 자본’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인 상상력이라고 하죠. 그런 점들을 이야기한 이어령 선생은 죽은지 3년이 됐지만 그의 스피치는 지금도 창조적인 상상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