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태어나 처음으로 모과차를 만들어 봤어요. 이웃 블로그랑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 했죠. 모과는 맨 처음 칼로 자르는 게 어려웠어요. 그걸 조각조각 잘게 써는 건 더욱 힘들었고요. 무채를 썰 듯 가느다랗게 썰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실력이 안 되니 어쩔 수가 없었죠. 그렇게 잘게 자른 모과를 유리병에 넣고 설탕에 재웠죠. 정갈해 보이진 않았어도 오늘 아침 그 향내를 맡아보니 너무나 좋았어요.
오늘은 대추차를 만들었죠. 그건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따라 했어요. 우선 잘 익은 대추 30개와 생강 하나를 냄비에 넣고 1시간가량 끓였어요. 그 후 부풀어 오른 대추를 꺼내 씨앗을 빼내고 그것들을 손으로 으깼죠. 이번에는 대추 끓인 물과 꿀을 살짝 붓고 한 번 더 약불에 끓였어요. 그 뒤 믹서기에 넣고 간 후 유리병에 넣었죠. 그때 풍기는 향기는 모과 향과 달리 구수하고 은은했어요.
모과든 대추든 모든 것들은 저마다 향기를 풍기죠. 마늘에선 마늘 냄새가 나고 국화꽃에선 국화 향기가 나듯요. 사람도 마찬가지죠. 아이에겐 아기 냄새가 나고 노인에겐 노인 냄새가 나죠. 나이 많은 어른에게 “노인 냄새가 나요” 하면 싫은 기색을 하겠지만 빈말이라도 “어르신께 향기가 나네요” 하면 한번쯤 돌아보겠죠. 좋은 사람에겐 그만큼 좋은 향기가 나는 법이죠.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고 다음에 또 보고 싶은 ‘인격의 향기’ 말이죠. 그런 향기는 삶이 고달플 때 기쁨을 잃지 않고 자기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더욱 느낄 수 있죠.
“당신은 누군가의 기준을 채우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나답게 산다는 건 세상과 부딪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의 뜻을 잃지 않는 삶이다. 흔들려도 괜찮다. 다시 당신의 중심으로 돌아오면 된다.”(45쪽)
민유하의 〈초역, 다산의 말〉에 나오는 말이에요. “사람은 하늘에서 각자의 뜻을 품고 내려온다”는 다산의 〈자찬묘지명〉을 재해석한 거죠.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만의 중심과 방향을 잃지 말고 살라는 뜻이에요. 그것은 요즘 유행하는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하는 말과 일맥상통하겠죠.
사실 다산 정약용도 천주교 박해사건으로 강진의 유배지에서 18년이나 살아야 했죠. 하지만 외딴곳에서 보낸 그 시간은 그에게 절망이 아닌 성찰의 기회였죠. 힘들고 고달픈 상황에서도 그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섰어요. 훗날 그것들이 〈여유당전서〉로 한데 묶여 나왔는데 민유하는 거기에 나온 말들을 재해석해 쓴 거죠. 다산처럼 힘들고 고달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무엇을 붙잡고 살아야 할지를 성찰토록 말이죠.
이 책은 크게 4개의 꼭지로 구성돼 있어요. 다산의 ‘마음 다스림’, ‘배움’, ‘말과 태도’ 그리고 ‘일상에 대한 철학’ 등이죠. 그중에서도 〈다산어록청상〉에 나와 있다는 “작은 풀도 제철이 되면 꽃을 피운다”는 말이나 〈다산시문집〉에 기록돼 있다는 “진짜 배움은 삶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데 있다”는 말과 “자신에게도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 남을 품을 수 있다”는 말은 너무나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오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2천 년 전 빌립보교회를 향해 쓴 바울의 편지죠. 그 당시 빌립보교회의 외부에선 로마의 핍박과 회유가 거세게 밀려들고 있었죠. 교회 내부에선 할례와 같은 율법주의가 혼란을 부추기고 있었고요. 그로 인해 그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잃고 기쁨도 놓치고 있었죠. 바울은 그들을 향해 기쁨을 잃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죠.
여기에 ‘기뻐하라’는 헬라어 ‘카이로’(χαίρω)는 ‘즐거워하다.’ ‘경축하다’는 뜻이에요. 이것은 세상의 출세와 성공 때문에 기뻐하라는 말이 아니죠. 세상에서 환란을 당한다 해도 주님께서 세상의 구원자요 영원한 생명의 동반자이기에 기뻐하라는 것이죠. 그분이 자기 목숨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이 세상을 사랑한 그 인격의 향기(빌2:6∼8)를 기억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거예요. 혼돈의 시대 속에서 중심을 다잡고 살아갈 이유가 거기에 있는 뜻이죠.
2015년 우리 집 아이들과 다산 초당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날 10년간 전남문화관광해설사로 일하고 있던 66세의 강두재 어른은 ‘다산 4경’만큼은 기억해야 한다고 했죠. 18년간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다산이 직접 새겼다는 ‘정석’(丁石), 그가 직접 샘물을 파서 차 끓이는 물로 썼다던 ‘약천’(藥泉), 초당 앞마당의 큼직한 돌을 부뚜막 삼아 불을 지펴 차를 끓여 마셨다던 ‘다조’(茶竈), 초당 오른쪽에 연못을 파서 잉어를 키웠다던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 이었죠.
물론 다산은 그때까지 절친으로 지낸 백련사의 혜장 선사와도 이별을 고했겠죠. 혜장 선사가 건넨 차로 자신의 지친 마음과 허약한 몸을 다스렸으니 말이죠. 그 덕에 그도 틈날 때면 백련사 위쪽의 만덕산을 돌아다니며 야생 차나무 잎을 따서 다조에서 끓여 마셨겠죠. 사람들이 ‘만덕산’을 ‘차가 많이 나는 산’이라는 뜻의 ‘다산’(茶山)이라 불렀는데 정약용의 호가 ‘다산’인 이유도 거기에 있었죠. 다산은 그만큼 자기 몸과 마음에 맞는 차를 좋아했고 그 덕에 혼돈의 시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