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옆 길가에 있는 고구마밭에 고구마 순을 뜯고자 할머니들 몇 분이 옹기종기 모여들었어요. 모자를 눌러 쓴 분도 있고 수건을 쓰고 나온 분도 있고 세련된 안경을 착용한 분도 있었죠. 그분들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평소 알고 지내는 분들이라 그런지 반갑게 나를 맞아줬어요.
길가에 있는 고구마밭이라고 해 봤자 10평도 안 되는 길쭉한 밭이에요. 다들 익숙한 모습처럼 손놀림이 무척 빠른 것 같았어요. 금방 뜯어낸 고구마 순을 다듬고 정리하면서도 그간의 사정을 서로들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그것도 전라도 사투리로 말예요. “와따매. 어째야 쓰께라이” “그랑께라이” “그라믄 안 되지라이.” “허벌나게 좋아 불겄소이.”
나도 전라도에서 태어나 전주와 인천과 충주와 서울을 거쳐 다시금 목포로 내려왔으니 그분들의 사투리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구수하고 정겨운 말처럼 다정하게 들려왔어요. 문뜩 예수님이 이분들과 말씀을 나눈다면 어떤 말투로 했을까 하고 생각해 봤어요. 서울 표준어로 근엄하게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을까, 아니면 이분들의 삶을 공감하듯 다정다감한 사투리로 했을까, 하고요.
“23 마침 회당에 드런 구신 들린 사램이 있어가꼬 큰 소리로 24 “나사렛 예수씨. 지들이 지비랑 뭔노므 상관이 있단 말씀이다요. 지들을 싹 뒈지게 맹글라고 요라고 덥썩 오셔부렀소? 나는 말이여라, 지비가 뉘신지 폴새 안당게라. 하눌님이 밸라도 애끼는 자제분 아싱게라.” 25 예수께서 콰간 꾸짖어 말씀하셨제. “아야. 주딩이 닥치고 그 사람한테서 존말 할 때 나오그라.”(30쪽)
임의진의 〈마가복음 전남 방언〉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신약성경의 마가복음에 나오는 말씀을 전라도 해안가의 사투리로 번역한 거죠. 한국 최초의 방언 성경이라 할 수 있어요. 갈릴리를 주 무대로 삼은 예수님도 당대의 표준어인 히브리어를 쓰기보다 갈릴리 지방의 사투리인 아람어를 사용했죠. 물신숭배와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예루살렘보다 갈릴리 촌구석의 민초들과 부대끼면서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들과 동고동락한 삶이었죠.
임의진은 전라도 강진에서 태어나 그곳의 남녘교회에서 목회한 목사요 시인이며 음악가이자 여행가에다 문화예술기획자로 활동하는 다종예술가에요. 오래전 그가 쓴〈참꽃피는 마을〉을 읽고 구성진 사투리와 재치 있는 문체에 홀딱 반한 적이 있었죠. 이번에 사투리로 옮긴 이 책을 읽는데 마치 달고 구성진 남도 판소리를 한판 듣는 것 같았어요. 전라도 특유의 해학적이고 맛깔스러운 표현이 성경의 생생한 현장감과 친근함을 더해주고 있었고요.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2천 년 전 바울이 골로새교회를 향해 쓴 편지에요. 유대인과 그리스인과 해외 상인들이 몰려든 그 교회에 헬라의 이원론과 유대 율법주의와 로마의 황제숭배 등 혼합주의 사상이 파고 든 것이죠. 바울은 교회 구성원들이 그런 혼합주의에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굳게 서라’고 권면한 거죠. ‘굳게 서다’는 헬라어 ‘베바이오스’(βέβαιος)는 ‘안정된’(stable) ‘확고한’(firm) ‘확실한’(sure) 등의 뜻이 있어요. 그런데 이 단어는 ‘걷다’는 ‘바이노’(βαίνω)에서 파생된 단어예요. 인생길을 주님과 동행해야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는 의미죠.
‘목회데이터연구소’와 ‘희망친구 기아대책’에서 발표한 〈한국교회트렌드 2026〉에 그런 통계가 나와 있어요.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20%가 무속을 경험했고 10명 중 3명은 무속을 통해 지금도 위로받고 있다고요. 그것이 바로 무속과 물신이 결합한 혼합주의 신앙이 아닐까요? 더욱이 영이 구원받았으면 육체는 아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이원론을 따르는 구원파 집단에 젊은이들도 많이 빠져들죠. 종교 지도자가 정치 지도자를 위한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도 황제숭배 사상에 물든 모습이고요.
오늘날의 크리스천이 그런데 기웃거리고 빠져들고 있다면 과연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물론 각자 나름대로 겪고 있는 사정을 변명하듯 말할 수는 있겠죠. 지금 불어닥친 액땜을 면해보고자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쓴 거라고. 영이 구원받으면 육체는 비윤리적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서 그랬다고. 교회 지도자가 정치 집회로 이끌고 나가 인증 사진까지 찍는데 어쩔 수 없었다고. 그런 크리스천에게 예수님은 그리 말하지 않을까요? “아야. 주딩이 닥치고 존말 할 때 나오그라.”
사람들은 대부분 사투리 쓰는 걸 부끄러워하며 숨기려고 애를 쓰죠. 그런데 임의진은 경전 자체를 사투리로 옮겼으니 어찌 보면 발칙한 모습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그의 책은 가장 낮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 나사렛 예수의 삶과 언어가 어떤 것인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주고 있어요. 신앙의 초심을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예수님과 동행할 수 있는지 일깨워주는 귀한 책이죠. 특별히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홍성담과 전정호 화백의 목판화 삽화도 이 책에 들어 있고, 말미엔 방언사전도 담겨 있어 지역 언어를 연구하는 자료로도 손색이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