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 주 유리병에 담근 모과차 향이 너무 좋네요. 코끝에 스며드는 그 향내는 목젖을 타고 심장까지 퍼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지금 단계에선 차로 우려내 마실 순 없어요. 한 달은 더 숙성시켜야 하니까요. 이틀에 한 번 정도 병 안에 든 모과를 흔들어 주는 이유죠. 그때가 되어 따뜻한 물에 타 마시면 추운 겨울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겠죠. 자주 쓰는 목도 그렇게 마시면 한결 더 부드러울 거고요.
지난주 토요일 오후엔 컴퓨터가 말썽을 부렸어요. 십 년 됐으니 그럴 만도 하죠. 갑자기 마우스가 멈춰 섰어요. 껐다가 다시 켰을 땐 조금 돌아가나 싶더니 또다시 멈췄고요. 어떤 작업도 하지 못했죠. 어쩌다 겨우 돌아갈 땐 친구에게 원격 도움을 요청했어요. 중간에 파워포인트도 안 돼 다시 도움받았고요. 밤늦게서야 모든 작업을 마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컴퓨터에 많이 매달려서 그런지 거북목 통증처럼 목이 아팠어요. 그때 하늘로 목을 치켜들고 양팔을 위로 뻗어 올리길 몇 차례 했어요. 목이 뻣뻣할 때 그렇게 하면 곧잘 풀렸으니까요.
“목뼈는 척추에서도 가장 유연한 부분이다. 이 유연성은 목에 있는 수많은 가동성 요소와 관절면 덕분이다. 머리를 뒤로 젖히게 하는 근육은 앞으로 숙일 때 사용하는 근육보다 더 크고 많다. 이렇듯 목뒤에 근육이 집중된 것은 머리를 들고 유지하는데 상당한 근육을 사용해야 했던 인간의 네발 달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진화적 산물이다.”(71쪽)
켄트 던랩의 〈목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인간이 목 근육을 잘 사용하게 된 게 진화적인 산물이라는 뜻이죠. 우리가 숨 쉬고 노래하고 장식하고 복종하고 저항하는 것도 목에서부터 비롯되죠.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 생물학 교수인 던랩은 생물학적 증거와 해부학적 구조를 토대로 목이 인류의 진화와 문명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 추적해 줘요.
그만큼 이 책은 해부학, 생물학, 인류학, 정치학, 예술사까지 아우르며 목 하나로 인간의 역사를 읽어주는 셈이죠. 1장은 목의 기원과 기능을 다루며 해부학적 구조와 진화 과정을 살피죠. 4~5장은 혈관·기관·식도 등 생명의 통로로서 목이 하는 작용과 갑상샘호르몬, 요오드의 발견 등 의학적 질환을 탐구해요. 6~7장은 언어와 발성을 통해 소통과 욕망의 수단으로 목을 조명해요. 8~10장은 목에 관한 사회와 권력, 상징과 치유의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어요.
던랩은 목에 두르는 것도 일종의 문화적인 상징으로 해석하죠. 왕족의 크라바트(cravat)와 에르메스 스카프도, 산업사회의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도 그렇다는 거예요. 그만큼 목은 그 시대마다 신분과 정체성을 드러낸 주요 무대였다고 하죠. 중세 유럽의 귀족이나 성직자들이 착용한 목둘레 착용품 러프(ruff)도 부유층의 특권을 시각화한 거라고 해요. 하지만 그토록 잘나가던 그들의 목도 권력의 변화와 함께 단두대 위에서 잘려 나가기도 했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
바울이 빌립보교회를 향해 쓴 편지죠. 염려 대신에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도록 권면한 거예요. 당시 로마의 압제와 유대 율법주의자들로 인해 교회가 안팎으로 힘들었죠. ‘아뢰다’는 헬라어 ‘아이테마(αἴτημα)’는 신약성경에 3회 쓰였는데 곤란하고 힘든 일을 마주할 때 간구하는 걸 말해요. 그 단어는 ‘구하다’ ‘요청하다’는 ‘아이테오’(αἰτέω)에서 파생됐죠. 비슷한 뜻을 지닌 ‘에로타오(ἐρωτάω)’와는 그 성격이 다르죠. ‘에로타오’는 나의 원함을 구하는 기도지만 ‘아이테오’는 하나님의 뜻을 좇는 기도죠(눅11:13). 물론 모든 기도가 ‘에로타오’로 시작하지만 점점 깊어지면 ‘아이테오’로 나아가게 되죠.
그리스도인이 구해야 할 참된 기도는 바로 그런 기도죠.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의 충분자이신 주님께서 나의 필요를 알고 있음을 믿고 기도하는 거니까요(마6:31∼33). 신실하신 주님을 신뢰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과 난관 앞에서도 도리어 감사하며 아뢸 수 있죠.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도 목에서부터 비롯되죠. 하늘을 향해 목을 치켜세우고, 때로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온 마음을 다해 크든 작든 목소리를 내서 주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는 것 말이죠. 우리가 그런 목청으로 ‘아뢸 때’ 하나님께서 감동하지 않을까요?
목은 해부학적으로 ‘머리와 몸을 잇는 30cm 길이의 통로’라고 해요. 그렇듯 목은 생명을 잇는 통로지만 실은 가장 취약한 곳이기도 하죠. 작은 통증에도 숨이 막히고 말문도 막히니까요. 그래서 그럴까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목을 감쌀 수밖에 없다는 거죠. 스카프를 두르고 옷깃을 여미며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도 그런 연유죠. 그것이 살아 있음에 대한 예의죠. 그걸 잃는 순간 모든 연결 고리가 끊어지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목은 생명과 언어와 주장과 저항과 모든 권력의 역사가 응축돼 있어요. 그 작은 30센티미터 길이가 실은 내 몸의 역사요 모든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통로죠. 그러니 예년과 달리 더 추울 거라는 올겨울엔 우리의 목을 더 따뜻하게 감쌌으면 해요. 유자차도 대추차도 더 많이 마시고요. 장시간 컴퓨터를 한다면 종종 목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손을 위로 뻗어 감사기도를 아뢨으면 좋겠네요. 그러면 몸의 노화와 함께 목주름 탄력은 떨어질지라도 생명력과 영성은 더욱 깊어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