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이에게 따뜻한 샘물이 되라

by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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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갯소리 같지만 30대 부부는 서로 손을 잡고 잔다고 하죠. 40대 부부는 서로 천장을 보고 자고요. 50대가 되면 서로 등을 돌리고 자고, 60대가 되면 각자 방에서 잔다고 하죠. 70대가 넘으면 어느 방에서 자는지도 모른 채 자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그 허전함은 말로 할 수가 없다고 하죠. 그러니 살아 있을 때,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더 잘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죠.


그런 말을 하니 갑자기 김재원 아나운서가 떠오르네요. 한 방송사에 30년 6개월간 몸담은 그였죠. 잘생기고 훤칠해서 아픔도 없는 것 같고요. 하지만 13살 때 어머니가 병으로 소천했고, 20대 중반 미국 유학길에 올라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귀국했을 때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졌죠. 절망 속에서 간병하던 병원 TV를 보고서 아나운서에 도전해 5차 시험 끝에 합격했다고 했고요.


만약 인생의 황급한 겨울을 맞이한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그가 귀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유학길에 오른 그가 잠시 돌아와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다시금 나가버렸다면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는 법이죠. 어쩌면 그때 그가 혹독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아버지를 잘 돌봐드렸기에 어렸을 때부터 꿈꾼 아나운서를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혜화동 길을 걷다가 발견한 조그만 카페의 간판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있다.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분위기가 따뜻하고 정겨울 것 같았던 그 집의 이름은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였다. 손을 잡으면 마음까지…. 이 말에 주목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손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신성한 대행자임을 믿기 때문이다.”(31쪽)


이승우의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에 나오는 이야기에요. 신학을 공부한 그리스도인이자 저명한 소설가인 그는 예수님이 손댄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풀어쓴 거예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사망을 생명으로, 실의와 좌절을 용기와 희망으로 바꿔 주는 그런 손은 많이 있다고 말예요. 그런 손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대행자라는 뜻이죠.


이 책의 1부 ‘눈 맞춤’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어요.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닿고 영혼과도 맞닿게 된다고 하죠. 2부 ‘신의 일식’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요. 3부 ‘사막은 샘을 품고 있다’는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죠.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인용한 그 문장은 사막으로 비유되는 이 삶에서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사막의 샘은 ‘보스토크 호수’를 말해요. 남극 대륙의 깊은 빙하바닥에 있는 400개 호수 중 가장 큰 호수라고 하죠. 그 호수는 영하 0℃의 공기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수백 만년 단절된 230km 길이를 자랑한다고 해요. 학자들은 지열에 의해 빙하 하단부가 녹아 생성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죠. 그렇게 극한 상황에서 아름다운 호수가 만들어지듯, 우리의 인생에도 그런 샘 하나쯤은 만들며 살자는 거죠.


물론 그런 샘은 아픔이나 고통이 없이는 만들어질 순 없겠죠. 화산활동으로 빙하가 움직이고 바닥 토양에 마찰이 생기고 짓누르는 압력을 견뎌야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우리 인생에서 겪는 아픔과 고통도 실은 청청한 샘을 하나 만드는 과정으로 여기면 어떨까요? 더욱이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 그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랑을 나눌 때면 더 깊고 선한 샘물이 될 수 있겠죠.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딤후4:21)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울의 편지에요. 바울의 생애 마지막에 디모데에게 쓴 편지죠. 바울은 자기 곁에 있는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없으니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당부한 거였죠. 당시 바울은 네로 황제 계략으로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돼 마메르틴 지하감옥에 갇힌 상태였죠.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는 그야말로 황급한 시기였죠. 다만 겨울철에는 지중해에서 부는 바람과 풍랑으로 모든 선박이 멈춰서는 때였죠. 그러니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속히 다녀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디모데가 바울을 찾아갔는지 성경은 알려주지 않아요. 만약 겨울이 되기 전에, 바울이 인생의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디모데가 찾아갔다면 너무나 기뻤겠죠. 바울로부터 더 맑고 깊은 샘물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도 깨달았을 거고요. 하지만 디모데가 그해 겨울에 찾아가지 않고 이듬해 봄에 찾아갔다면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는데 그때를 놓쳤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땅을 치고 후회했겠죠.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오네요. 매서운 눈보라가 치고 밤사이 눈도 쌓일 때가 있겠죠. 그땐 어디를 바라봐야 할까요? 누구에게 향해야 할까요? 저마다 깊은 샘물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어릴 적 동네 우물터에서 그 맑고 깊은 샘물을 퍼 올리듯 말이죠. 혹여라도 내가 그런 샘물이라면 누군가의 얼어붙은 심정도 녹여주고 갈급한 목도 적셔줄 수 있겠죠. 다만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더 속히 다가가 손을 잡아주고 나눈다면 더욱 뜻깊은 일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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