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경은 인천교대를 나와 동두천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 편입했어요. 졸업 후 6년간 조교로 일하며 캠퍼스 사역에 몸을 담고 있다가 경상도 출신의 남자와 결혼해 일산장로교회의 담임목사 사모로 섬기게 되었죠. 그런데 그 교회에 부임한 지 14일째 되던 날 아들을 잃고 말아요. 더욱이 18년 후에는 그토록 건강하던 56세의 남편도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죠. 그 후 그녀는 가족 관계 회복 및 의사소통 훈련을 전문으로 하는 일대일코칭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사범대학교 4학년 때 그녀는 선배들의 인도로 처음 교회를 방문하게 됐어요. 그 후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수련회에 참석했는데 9박 10일간 진행되었죠. 그때 방장도 맡았는데 청소도 하고 집회에 참석지 않는 이들을 다독이는 역할이었죠. 그날 저녁 팀장에게 보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팀장은 위궤양이라며 비스듬히 누워서 들었고 다른 방장이 보고를 했죠. “우리 방에 한 자매가 너무 말을 안 듣고 집회에 안 나가서, 저까지 방에 붙잡혀 있느라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때 팀장은 비스듬히 누워서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하죠. “그 자매를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하는 보고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한 다음에 하는 보고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그 팀장의 말이 박인경에게는 인간의 말로 들려오지 않고 온 우주를 울리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왔다는 거죠. 그야말로 ‘신 체험’을 한 거였어요. 천둥보다도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이 폭포수처럼 쏟아진 것이었죠. 그러니 9박 10일간 수련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모르지만, 그 캄캄한 밤 건물 밖 바위 위에 앉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밤새도록 운 기억밖에 없다고 하죠.
“그러다 난데없이 이웃집에서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자꾸만 되풀이하던 소린데 소년인지 소녀인지 모를 목소리였습니다. “집어라, 읽어라. 집어라, 읽어라.” 저는 즉시 낯빛을 바꾸고, 아이들이 무슨 놀인가 하면서 저와 비슷한 노래를 한 적이 있던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억누르고서, 성서를 펴들고 거기 눈에 들어오는 첫대목을 읽으라고 하늘에서 제게 시키는 것 외에 다름 아니라고 해석하고는 벌떡 일어났습니다“(304쪽)
아우구스티누스의〈고백록〉(성염 역·경세원·2016)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아프리카 출신인 그가 큰 꿈을 이루고자 황실과 가까운 밀라노에서 살 때 한 정원에서 그와 같이 ‘신 체험’을 한 거였죠. 그때 집어서 읽게 된 성경이 로마서 13장 13∼14절이었죠. 그 후 387년 암브로시우스 주교에게 그는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398년, 그의 나이 43세때 여태껏 방황한 삶의 일대기 속에서 회심한 과정을 담은 〈고백록〉을 남긴 거죠. 술이나 음식은 탐하지 않았지만 성적 충동은 강한 그였기에 17살부터 카르타고에서 사귄 여자와 13년간 살면서 아이를 낳은 고백도 담고 있고, 그런 자신을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하며 기다려준 어머니의 사랑도 담고 있어요.
사실 그의 〈고백록〉 전체는 하나의 기도와 같아요. 자신이 누군지에 그 답을 얻고자 하나님께 기도한 내용이자 그분의 대답을 듣고자 귀를 기울인 듯 고백을 하고 있으니까요. 더욱이 그의 〈고백록〉은 시편 말씀으로 시작을 하죠. 매 쪽마다 최소 한 번씩은 시편의 말씀을 언급하기도 하고요. 그만큼 시편을 쓴 시인의 목소리와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정연하게 혼합시키면서 글을 쓴 거죠.
이탈리아 피렌체 남쪽에 있는 토스카나의 산촌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로마에서 밀라노로 가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죠. 거기에는 13세기 세워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작은 성당(Chiesa di Sant’Agostino)이 있다고 해요. 그곳은 밀라노의 웅장한 대성당(Duomo)과는 달리 북벽 안쪽의 소박한 건물이라고 하죠. 그 성당 제단 뒤쪽 반원형 공간엔 15세기 베노초 고촐리(Benozzo Gozzoli)가 아우구스티누스를 묘사한 17개 장면의 프레스코화 연작이 있다고 해요.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렸을 적 타가스테에서 교육받은 장면에서부터 아프리카의 히포에서 죽을 때까지 그 일생을 다룬 작품 말이죠.
그 작품 중에 어떤 그림이 가장 강렬하게 다가올까요? 무엇보다도 아프리카에서 로마를 거쳐 밀라노로 향하던 모습 아닐까요? 밀라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밀라노 황실의 연사 자리에 올랐고, 교황의 유력한 인사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그가 황제의 길을 사용할 특권을 받아 말을 타고 이동한 모습도 눈에 띄겠죠. 하지만 밀라노에서 10년간 사는 동안 그는 변할 수밖에 없었어요. 무엇보다 밀라노의 주교 암브로시우스의 탁월한 이성과 따뜻한 설교에 감동을 받았고, 카르타고에서 영향을 받은 마니교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고, 심플리키아누스와 교제하면서 진리에 대한 인식의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죠. 더욱이 밀라노의 그 정원에서 ‘신 체험’을 했고요.
현재 밀라노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자 세계 문화유산을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죠. 두오모 성당을 비롯해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도 그렇죠.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란 작품처럼 극적인 빛과 어둠을 대비하여 감정과 긴장감을 묘사한 테네브리즘의 창시자 카라바조(Caravaggio)도 유명하죠. 더욱이 〈약혼자들〉이란 책으로 19세기 이탈리아 국민문학의 기초를 세운 알레산드로 만조니(Alessandro Manzoni)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요.
하지만 밀라노는 크리스천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를 떠올리게 하는 곳으로 유명해요. 그는 기독교의 위대한 신학자요 철학자요 회심의 대표자이기 때문이죠. 더욱이 안셀무스, 아퀴나스, 페트라르카, 루터, 벨라르미노, 파스칼, 키르케고르도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커다란 떡갈나무 그늘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런데 그가 직접적으로 회심한 밀라노 정원은 어디일까요? 그의 〈고백록〉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지만 학자들은 당시 그가 머문 밀라노 외곽의 카시아코(Cassago Brianza) 정원으로 추정을 하죠.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롬13:12∼13)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고린도에 잠시 머물던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을 향해 쓴 편지죠. 방탕과 술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다툼과 시기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말이죠. 빛의 ‘갑옷’은 헬라어로 ‘아폴론’(ὅπλον)인데 전투때 입은 옷과 무기를 말해요 고린도는 2년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기념하는 ‘이스트미아 축제’가 열렸는데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들이 입는 옷이죠. 그때는 모든 이들이 도박과 술에 취해 방탕한 모습을 드러내죠. 더욱이 고린도의 언덕 정상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는데 1천 명의 여사제들이 낮에는 신전에서 일하지만 밤엔는 시내에 내려와 매음을 했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듯이 고린도도 로마의 영향을 받고 있었죠. 바울은 그걸 생각하며 로마의 성도들이 세상의 흐름이 물들지 말고 깨어 있기를 바란 것이죠. 아우구스티누스가 신 체험을 통해 집어 읽은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었죠. 아우구스티누스도 그때부터 어둠과 방탕의 일을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고 산 거였어요.
지금도 밀라노 외곽의 ‘카시아코’에 가면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신 체험을 할 수 있을까요? 그때 그에게 들려온 신의 음성을 똑같이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기독교 신학에서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정의하죠. 하나님은 어느 곳에나 있는 분이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하신 분이라고 말이죠. 마치 박인경이 우주적인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그곳도 특별한 집회 장소가 아니라 어느 방이었듯이 말이죠. 그만큼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곳을 아우구스티누스의 밀라노 정원으로, 박인경이 머문 그 방으로 삼고 사는 게 중요하죠.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으로, 누군가에게 어느 때라도 특별하게 찾아오시는 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