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문선명은 서울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을 창립할 때 한국을 ‘메시아가 태어난 중심 국가’로 규정했어요. 자신을 메시아로 삼고자 초석을 다진 거죠. 그 후 70년대까지 통일교가 국제적으로 확장되면서 각 국가에 상징적인 역할도 부여했죠. 1981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선 ‘국제평화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했고요. 그때 한국을 ‘아담 국가’ 곧 아버지의 나라로, 일본을 ‘이브 국가’ 곧 어머니의 나라로 규정했죠. 성경 속 아담과 하와가 결합해 인류를 낳았듯이 한국과 일본이 터널로 연결되면 새로운 문명이 열린다는 논리였죠.
통일교가 작금의 우리나라를 혼란의 정국으로 몰아넣는 이유가 그것이죠. 자칭 메시아로 떠들던 문선명의 교리를 받들려면 사회적인 역량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관건이었죠. 통일교에서 전현직 국회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 들려오는 이유죠. 거대한 종교 조직이 정치권과 연결하면 법적인 규제나 사회적인 비판을 비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였죠.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얼마든지 반영해 줄 수 있다고 믿었고요.
하지만 그런 모습은 오래전 부패한 교황청의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는 거죠. 교황이 세상 권력까지 마음대로 흔들고자 할 때 스스로 부패했고 결국은 새롭게 저항한 개신교가 탄생했으니까요. 그만큼 통일교가 종교 자체의 순수성을 망각한 채 다른 데 눈길을 돌리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밖에 없죠. 그것은 비단 통일교만 아니라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그 어떤 종교든 동일한 모습으로 타락할 수 있죠. 스스로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죠.
“당시 피렌체는 유약하고 부패한 정부와 각양각색의 파벌들이 설치는 혼돈상태였기 때문에 간교한 교황은 이런 정국을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교황은 피렌체로 사절단을 보내어 시뇨리아를 설득하여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었고 시뇨리아는 군대를 보내서 사보나롤라를 체포하였다. … 1498년 5월 2일 사보나롤라는 시뇨리아 광장에서 온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화형을 당하였다.”(80쪽)
김종천·김태균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탐방〉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메디치 가문의 ‘위대한 로렌초’ 시절 성 마르코 수도원 원장으로 부임한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공개 처형당한 과정을 설명한 거죠. 사보나롤라는 설교 석상에서 교황 알렉산더 6세의 부도덕, 성직 매매, 사치, 부패를 공격했어요. 더욱이 자신을 수도원 원장으로 부른 메디치가문도 비난하며 몰락을 예언했고요. 교황은 그런 설교를 멈추면 추기경 자리를 주겠다고 회유했지만 그는 추기경의 붉은 모자가 되기보다 차라리 순교의 붉은 피를 원한다며 끝내 화형을 택했죠.
사실 14세기 후반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한 이름은 알비치(Albizzi)였어요. 그는 귀족의 혈통을 자랑하며 공화국을 흔들었고 그의 목소리는 곧 법이었죠. 하지만 상인에서 시작해 은행가와 정치가로 변신한 ‘조반니 디 비치’가 두각을 나타냈죠. 그는 카놋사의 굴욕과 아비뇽 유수 이후에 교황권이 약해진 틈을 타 민중과 상공업 계층의 지지를 받았죠. 알비치에겐 그 모든 게 불편했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가득찼죠. 결국 1433년 그는 조반니의 장자이자 훗날 국부(國父)로 불린 ‘코시모’를 모함해 피렌체에서 내쫓아버렸죠. 그로 인해 피렌체의 권력이 알비치에게 돌아가는 듯 싶었지만 코시모는 외부에서 자금을 동원해 1년 만에 피렌체로 돌아왔죠.
1434년 피렌체로 돌아온 코시모는 피렌체의 정치·문화·외교까지 장악한 메디치 가문을 건설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교황청을 향해 물질적인 후원을 했고 피렌체의 공화정 제도를 존중하면서도 시뇨리아를 배후에서 조종했죠. 더욱이 예술과 건축을 권력의 도구로 삼았어요. 브루넬레스키에게 두오모의 거대한 돔을 완성토록 한 것도, 산 로렌초 성당을 개축하며 메디치의 이름을 피렌체 심장에 새겨 넣은 것도 그랬죠. 도나텔로의 청동 조각이나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도 메치디의 후원 속에 탄생한 작품들이고요.
그 뒤를 이은 코시모의 손자 ‘로렌초’는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절정으로 끌어올린 인물이에요. 그는 정치적인 수완으로 도시를 안정시킨 동시에 예술가와 학자들에게 창조적인 자유를 보장했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미켈란젤로의 초기 조각,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실험적 작품들이 모두 그 시대에 꽃피운 것들이죠. 물론 로렌초 이후 그 가문의 출신인 교황 레오 10세가 통치할 때까지 메디치 가문의 권력은 부침이 심했죠. 다만 그 무렵 피렌체는 세계가 주목한 르네상스의 수도였죠.
바울이 로마교회를 향해 쓴 편지에요. 종말의 때에 어둠의 일보다 낮의 일을 좇아 깨어 있기를 당부한 거였죠. 여기에 ‘시기’란 헬라어로 ‘젤로스’(ζῆλος)인데 ‘마음의 흥분 상태에서 하는 질투’를 말하는 거죠. 한마디로 상대방을 제치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걸 뜻해요. 시기가 가득 차면 사람의 뼈조차 썩게 만든다(잠14:30)고 하는 말이 있죠.
바울은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썼는데 고린도도 실은 로마의 영향권 속에 있는 도시였죠.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벌이는 검투사들은 황제의 권력과 결탁한 권력층 가문을 대변하는 검투사의 경기였으니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죠. 일반 시민들은 술에 취한 채 투전판에 뛰어들며 시기하고 다투었죠. 그런 욕망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 순수성이 사라질 수 있으니 바울은 깨어 있도록 경계한 거였죠.
통일교의 어리석음이 뭘까요? 종교 본연의 순전한 가치를 정치권력과 결탁시켜 본질을 훼손하는 거였죠. 문선명이 내세운 교리도 어리석기 그지없지만 그걸 이루고자 엉뚱한 길을 모색해 왔으니 말이죠. 메디치 가문의 어리석음은 뭐였을까요? 교황권과 예술을 자기 권력의 도구로 삼고자 한 거였죠. 단기적으로는 그것이 자기 권력을 강화하는 길인 듯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도덕적인 정당성을 잃는 거였고 시민들의 신뢰조차 무너뜨린 거였죠.
이 책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작품을 읽어주는 면들이 남달라서 좋았어요. 특별히 메디치 가문의 탄생에서부터 그 가문의 부침이 있기까지 존재했던 피렌체의 문화예술이 어떻게 꽃피웠는지를 깊이 다뤄주고 있어서 더욱 좋았죠. 뿐만 아니라 정치든 종교든 그 내부의 시기와 질투가 끓어오를 때 그 본연의 정체성을 생각하는 게 진정한 존재 이유임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