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좋은 시절이지만 죽음은 코끝의 호흡처럼 따라 다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죽음'을 마주하며 떠올린 생각

by 권성권
unnamed.jpg 대나무 참빗으로 그 많던 이를 잡던 시절의 사진



엊그제 누군가와 청국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6·25 한국전쟁 전후로 태어난 이들이 많이 죽던 때라고 말이죠. 듣고 보니 내가 살던 시골 동네도 마찬가지였어요. 먹을 게 많지 않던 그때는 다들 영양실조로 죽었어요.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것마냥 걸핏하면 죽어가는 때라 출생신고도 몇 년 후에나 올렸죠. 내 형제들의 호적도 늦게 올라간 이유가 그 때문이었어요.


실은 그분도 걸핏하면 쓰러졌다고 해요. 그때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며 그를 엎고 동네 한약방으로 재빠르게 뛰어갔다고 해요. 물론 그 시절의 한약방 주인은 대부분 어깨너머로 배운 침술과 처방전을 썼겠죠. 민간요법의 처방전이 잘 들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뜻에 맡겨야 했으니까요. 한 번은 그가 거의 죽어가는 지경에 처했는데 한약방 아저씨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나 봐요. 그때 아버지는 회충약을 한 번만 쓰자고 한약방 어른에게 간청했는데 그걸 써서 살아났다고 하죠.


그때는 왜 그렇게 이가 많았는지 몰라요. 가려운 머리를 대나무로 만든 참빗으로 빗으면 흰 종이에 이가 수북이 떨어지곤 했죠. 손톱으로 이를 하나하나 눌러대면 툭툭 죽어가는 소리에 재미를 붙이기도 했죠. 어쩌다 몸이 가려워 속옷을 벗어 제치면 죽은 이들이 온통 달라붙어 있었죠. 그토록 먹을 게 없던 가난한 시절이었으니 다들 영양실조로 죽었는지 몰라요.


지금은 회충약을 따로 처방받지는 않죠. 먹는 것도 기름지고 영양가 높은 음식이라 영양실조에 걸릴 일도 거의 없고요. 머리나 몸에 달라붙어 있던 이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아볼 길이 없죠. 입고 다니는 옷이 고급 화학섬유라 그런지 녀석들이 비집고 숨어들 틈이 없을 테니까요.


의약품도 갈수록 좋아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죠. 2024년 보험개발원이 생명보험 가입자들의 통계를 이용해 제10차 경험생명표 개정작업을 완료했는데 남자들의 평균수명이 86.7살이고 여성은 90.7살로 나타났다고 해요. 올해 56살인 저도 옛날 같으면 갓을 쓴 할아버지 모습이었을텐데 아직까지도 건강해요.


그렇다고 죽음이 사라진 건 아니죠. 죽음은 코끝의 호흡처럼 늘 내 곁에 따라다니고 있어요. 그토록 건강하던 사람도 그날 밤에 세상을 떠나기도 하죠. 운전을 잘하던 사람도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 운전자에 의해 목숨을 잃기도 하고요. 고관절 결핵 수술에다 호흡기 질환에다 심장혈관까지 시술해야 했던 우리 엄마도 92세를 넘길지 누가 알았을까요? 그토록 건강하던 81세의 장인어른도 뇌출혈 증세 후에 몸이 안 좋아 눕게 될지 누가 알 수 있었을까요?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창49:33)


야곱이 죽을 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말씀이죠. 자신이 죽게 되면 자기 시신을 애굽 땅이 아닌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기면서 마지막 숨을 내쉬며 죽은 거예요. 물론 그의 숨은 하나님께서 거두신 것이었죠. 그래도 147세의 일기로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었으니 얼마나 복된 죽음일지 알 수 있어요. 그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내 코끝에 호흡처럼 따라 다니는 내 죽음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죽음이란 모름지기 아침에 나선 집으로 다시금 돌아가지 못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아침이 되면 집 밖을 나서는 그 문으로 저녁에 귀가할 걸로 믿고 떠나죠. 하지만 오늘 아침 출근하고 외출한 수십억 명의 사람들 가운데 그 밤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예요. 더욱이 밤사이 잠을 자다가 죽는 사람도 부지기수고요.


죽음은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떠나는 것이죠. 누구도 자기 죽음을 예고할 수 없기에 자식들을 다 불러 놓고 하나하나 이별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극히 드문 일이예요. 그런 바람을 품고 자식들 앞에서 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 점에서 야곱은 복된 죽음을 맞이한 경우죠.


죽음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누군가 떠맡는 것이죠. 오늘이라도 내가 죽게 된다면 내가 하던 일을 누군가 이어받아야 하죠. 그만큼 내가 지금 맡은 일은 하루하루 성실하게 감당해야 하는 거죠. 그 성실함에 따라 나의 미래가 열린 미래가 될 수 있고, 닫힌 미래가 될 수 있는 법이죠.


죽음은 누군가 나의 서랍장을 여는 것이죠. 내가 죽게 되면 아무리 자물쇠로 꽁꽁 걸어 잠근 서랍장이라도 누군가 열어 제치게 돼 있어요. 열쇠가 없어 못 연다면 망치로 부서뜨려서라도 열어보게 돼 있죠. 그만큼 내 죽음을 생각한다면 매일 매일 바르게 정돈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죠.


그리고 죽음은 다른 사람이 내 옷을 벗기는 일이죠. 죽음 앞에서는 대통령도 이름 없는 시골 촌부도 모두 일면식이 없는 장의사가 내 옷을 벗기는 거예요.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도 다 벗어 제치게 돼 있죠. 알몸 상태일 때 비로소 주머니 없는 수의를 입히는 거고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게 없으니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상태를 보여주는 셈이죠(전5:15). 야곱도 자식들 앞에 그런 알몸으로, 그런 수의를 입은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났죠.


그 시절 회충약을 먹고 죽음에서 겨우 살아난 그에게 셋째 동생이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는 너무나 기뻐했다고 해요. 그때 비로소 그 집안에 죽음의 그림자가 모두 사라졌다고 하니까요. 그 동생이 태어나고부터 그 집안에 아픈 치레를 하는 자식들도 없었다고 해요. 그런 복덩이가 태어나서 그랬는지 아버지는 그 이름을 ‘영화로움을 불러 모은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하죠.


그 동생의 나이를 물어보니 나와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어요.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일이죠. 하지만 지금은 모든 의술이 좋아지고 의약품이 좋아 급성 뇌출혈 이외에 모든 질병은 다스릴 수 있는 때죠. 숱하게 죽어가던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시절이죠. 그래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죠. 죽음은 늘 내 코끝에 호흡처럼 따라다닌다는 것 말예요. 지금도 그분이 예고 없이 내 숨을 거두면 언제라도 떠나야 하는 게 나의 죽음이죠.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쾌적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