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한밤중을 맞이할 때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간 모습을 보면서 내 친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by 권성권

unnamed.jpg gemini가 만든 사진



하루라도 통화를 하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게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처럼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고 하듯이 말입니다. 책과 성경을 읽어야만 생각과 말이 정화되듯이 그 친구와 통화를 하고 나면 뭔가 정화되는 게 많습니다. 그래서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날은 괜히 궁금해지기도 하는 친구입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그 친구가 어린 시절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릴 적 섬에 살던 그 친구는 중학교 1학년 때 홀로 목포에 나와 자취하면서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밥도 혼자 해 먹고 학교도 혼자 다녔습니다. 친구도 없고 재미도 없으니 학교에 가는 날 보다 빠지는 날도 많았나 봅니다. 중학교 2학년 말엔 이곳저곳을 배회하는 날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러다 경찰의 눈에 들어왔고 곧장 경찰서에 붙잡혀 조서를 받았습니다. 결국 학교 선생님에게 연락이 갔고, 소악도에 사는 부모님께도 연락이 닿았습니다.


그때 영어를 맡은 박은희 선생님이 그 친구에게 사랑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를 데려다가 밥도 해 먹이고, 학용품도 챙겨주고, 공부도 알려주고 말입니다. 육적으로 곤고한 밤을 맞이한 그 친구에게,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 없던 그 친구에게, 그 선생님이 따뜻한 부모님이 되어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부모님이 그 친구의 손을 붙잡고 무안군 중등포 저수지 옆 오리가든 용별장으로 갔습니다. 그곳 근처에 사는 집안 어른이 그곳에서 일을 하도록 주선한 것이었습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할 바에는 그렇게라도 해서 세상에 적응하길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3년 세월이 흐를 무렵 부모님은 섬에서 지도읍으로 이사했습니다. 그 친구도 그 동네에 처음으로 가봤습니다. 당시 그 교회를 섬기던 목사님은 그 친구에게 신앙적인 길을 열어줬습니다. 더욱이 지도읍에 있는 중학교에 다닐 수 있는 길도 열어줬습니다. 영혼의 한밤중을 맞이한 그 친구에게 그 목사님이 영생의 길을 터 준 셈이었습니다.


그렇게 친구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고 3살 아래의 후배들과 같은 학년으로 중학교에 다녔습니다. 학교폭력이 심하던 그 시절 한 살 위 선배들이 동네 후배들 군기를 잡는다면서 밤에 야산으로 불러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친구도 그런 후배들의 눈치를 보며 학교에 다녔으니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또래 김삼남과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허물없이 지낸 그 친구는 얼마 전 세상을 앞서 떠났습니다. 번민의 한밤중을 맞이할 때 위로할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일까요?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3:1-2)


‘니고데모’란 이름은 ‘승리’(victory)를 뜻하는 ‘니코스’(νῖκος)와 ‘군중’(people assembled)을 뜻하는 ‘데모스’(δῆμος)의 합성어입니다. ‘군중들의 승리’를 뜻합니다. 그 뜻을 이루도록 부모님이 자식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었습니다. 그가 유대인들의 최고의결기구인 산헤드린 의원이 된 것도 그런 일환이었습니다. 그 의원들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부활도 천사도 영도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인 사두개인과 부활도 천사도 영도 모두 믿고 율법을 연구하며 가르치던 랍비 출신의 바리새인이 그들입니다. 니고데모는 후자였습니다.


왜 그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았던 걸까요? 예수님이 유월절 전후로 많은 표적을 보여줬고 성전 장사치들을 내쫓는 권위도 보여준 터라 니고데모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표적과 권위는 일반인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에 말입니다. 하지만 한낮에 예수님을 찾아갔다면 산헤드린 의원들 사이에 낙인이 찍힐 게 두려워서 밤에 찾아간 것입니다. 더욱이 ‘밤’(νύξ)은 시간적인 어둠만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죽음의 시간’이자 ‘죄악이 가득 찬 때’을 말합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심령 속에 차오른 영적인 갈증을 당장에라도 해결하고자 그 밤중에라도 찾아간 것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와 같은 인생의 한밤중을 맞이한 그 친구는 지금 윗쪽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그가 다닌 학교의 2년 선배가 나였는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고, 지금은 같은 목회자로 동역자의 길을 걷고 있어서 친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입니다. 내가 인생의 갈증과 번민을 맞이할 때 한밤중에라도 찾아갈 수 있는 친구라서 더욱 좋은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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