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믿어뿌요이.”

어느 목사님들과 커피를 마시면서 듣게 된 신뢰에 관한 이야기

by 권성권
Image_202601241248.jpeg 플로우에서 만들어 준 사진


엊그제 목사님 몇몇 분과 커피를 마셨어요.

그때 어느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나이 많은 여성 장로님과 몇몇 권사님이 전부인 시골 교회에 부임한 이야기였어요.

부임한 지 한 달이 지날 때까지 기도만 했고 필요한 것이 있어도 함부로 돈을 쓰지 않았다고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날 무렵 그 장로님이 드디어 목사님에게 말했다고 해요.

“목싸님. 내가 한 달간 목싸님을 쭉 지켜봤당께라이. 인자는 믿어뿌요이. 말이나 행동이 똑같고 교회 돈도 목싸님 맴대로 안 씅께라이. 너무 좋으요야.”



어쩌면 그것은 신뢰의 시작점이었을까요?

그 후 목사님의 자녀들이 그 교회 통장에 매달 십일조를 보내왔나 봐요.

그러니 장로님과 권사님의 자녀들조차도 그걸 닮아 갔고요.

그때 비로소 그 장로님이 뭔가를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목싸님. 인자는 이 통장 목싸님이 맡아부쑈. 돈도 필요한 데만 쓰는 것 같아 몽땅 믿어붕께라이.”

그 후 자녀들이 기부금 서류를 원할 일이 있었나 봐요.

“아따 목싸님. 우째야 쓰까라이. 지 자식들이 기부금인가 뭥가 하는 서류를 맹글어달라고 헌디라 이?”

그 장로님과 권사님은 미안한 마음으로 목사님에게 말했나 봐요.

하지만 그 목사님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그걸 발급해줬다고 해요.



나폴레옹 황제가 평민 차림을 하고 어느 부관과 시골 여관에서 묵었어요.

여관 근처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는데 웨이터가 계산서를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나폴레옹도 그 부관도 숙소에 지갑을 두고 온 거였어요.

정중히 사과한 뒤 한 시간만 기다려주면 돈을 가져오겠다고 했죠.

웨이터는 이해하려고 했지만 여관 주인은 정신없는 놈들이라면서 당장 돈을 내놓으라고 성화를 부렸죠.



웨이터가 믿어보자고 해도 그 주인은 버럭버럭 화만 내고 있었어요.

보다 못한 웨이터가 결국은 자기 돈으로 14프랑을 계산했어요.

한 시간 뒤 그 부관이 와서 웨이터에게 14프랑을 주는 거였죠.

그리고 여관 주인에게 말했어요.

“이 여관 얼마면 살 수 있어요?”

주인은 얼마 전 3만 프랑을 줬으니 그거면 살 수 있다고 했어요.


그 부관은 그 자리에서 3만 프랑의 거래를 마쳤어요.

그리고 여관 주인이 보는 데서 그 문서를 웨이터에게 주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나폴레옹이 쓴 쪽지까지 전달해 줬죠.

“나는 나폴레옹 황제다. 오늘부터 네가 이 여관 주인이다. 너는 나를 믿어 주었다. 그것으로 나는 너무 기뻐 이 선물을 네게 주는 거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예수님께서 내면적인 질문과 영적 고뇌로 한밤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말한 거죠.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이죠.

‘거듭나다’는 말은 ‘태어나다’는 ‘겐나오(γεννάω)’와 ‘위로부터’를 뜻하는 ‘아노텐(ἄνωθεν)’가 들어가 있어요.

이 ‘겐나오’라는 단어에 ‘-사이’를 뜻하는 ‘아나(ἀνά)’가 붙으면 ‘아나겐나오(ἀναγεννάω)’로 ‘거듭남’이란 말이 돼죠.

‘거듭남’이란 ‘새롭게 태어나다(born anew)’ 곧 ‘위로부터 태어나다’는 뜻이에요.


새해를 맞이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가네요.

새해를 맞았다고 인생 자체가 저절로 새롭게 되는 건 아니죠.

군대에서 전역했다고 해서 뭔가 새롭게 달라지는 게 아니듯 말이죠.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도 애초에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말하는 시간은 만물이 변하는 속도에 따라 인간의 편의에 따라 만든 것일 뿐이니까요.

디지털시계든 아날로그 시계든 1초 1초 움직이는 것도 실제로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변하는 거고요.


지난 1년간 시간이 흘렀다면 우리 자신이 1년만큼 더 변하고 늙어감을 의미하는 거겠죠.

그 할머니 장로님과 권사님들 모습처럼 말이죠.

하지만 진정으로 변화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자 사람에 대한 신뢰 아닐까요.

한 해 한 해 늙고 있지만 그 목사님을 온전히 신뢰했던 그분들처럼 말이죠.

식사비를 가지고 올 걸 믿어 준 웨이터처럼요.

하나님 앞에 거듭난 사람이 하나님을 그토록 신뢰하고 맡기면 귀한 선물까지 베푸시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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