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악단〉, 냉혹한 상황에서도 거듭남의 변화 계속된다

by 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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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악단〉은 지난 12월 31일 개봉했다는데 이제서야 본 영화에요.

영화가 소리소문없이 80만 명의 구름같은 관객을 끌어모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는 북한 보위부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가짜 찬양단을 급조하는 데서부터 시작을 하죠.

하지만 북한의 체제나 이념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그 안에서 부대끼는 인물들의 관계와 변화에 초점을 맞춘 영화였어요.

그것이 영화의 몰입도와 흡임감을 더해 주는 것 같았죠.


북한은 대북 제제로 돈이 마르자 국제사회로부터 2억 달러를 지원받고자 종교를 이용코자 해요.

그를 위해 보위부 고위층은 공연 전문 악단인 ‘승리악단’을 차출하죠.

보위부 소좌 박교순을 불러 그들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을 맡기죠.

보위부 대위 김대위와 그의 프락치 리수림도 함께 악단의 찬양 맴버가 되어 더욱 감시토록 하고요.



박교순의 호출에 ‘승리악단’은 찬양 연습을 시작하게 되죠.

초반엔 감시의 대상임을 알고 서로 간의 분위기가 어색하고 삭막해요.

하지만 반복되는 찬양과 가사를 통해 통제를 담당한 박교순도, 찬양맴버 김대위와 리수림도 변화가 일기 시작하죠.

형식적으로 읽던 성경도 의미를 갖게 되고요.

그 무렵 박교순과 김대위는 그 악단이 북한 내 탈북자들을 돕는 자들임을 알고 척결할 때를 엿보죠.

하지만 〈광야를 지나며〉와 〈은혜〉를 부르면서 당연한 게 없는 상황에서 베푸시는 주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죠.

머리가 아닌 가슴이 움직이기 시작한 때였죠.




대동강교회에서 거짓 부흥회를 열기로 한 전날 밤이었어요.

리허설을 위해 그 교회를 찾아 찬양 연습을 하는데 대원 한 명이 총살당하고 말죠.

그때 박교순은 찬양단 이름을 ‘신의 악단’으로 부르게 되죠.

그 무렵 보위부는 부흥회가 끝나면 그 악단 모두를 쥐도 새도 모르게 처형하라는 지시를 내려요.

그날 박교순과 김대위는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데 그것이 이 영화의 명대사였어요.

박교순은 그 대화 후 어린 시절 어머니의 순교를 떠올리며 자신도 십자가의 길을 택하게 되죠.



박교순: 너도 찾지 않았어? 느끼지 않았어?

김대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진짜 이유가 나를 해방시켜 놓은 느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4-5)



유대 산헤드린 의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았을 때 예수님은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셨죠.

니고데모는 어머니 배속에 들어가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 물었고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죠.

‘물’은 헬라어로 ‘휘도르(ὕδωρ)’인데 ‘생수(요4:10)’ ‘샘물(계21:6)’ ‘강물(계16:12)’ ‘생명수(계7:17)’를 뜻해요.

그 단어는 구약의 히브리어 ‘마임’(מַיִם)과 같은데 ‘수면(창1:2)’ ‘생수(출17:6)’로 쓰였죠.

실은 노아와 이스라엘 백성도 물에서 건짐받았는데 세례(고전10:1-2,벧전3:21)와 같은 의미에요.

그만큼 물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세례의 생명수를 칭하죠.



그런데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어요.

거듭남은 물만으로 충분한 게 아니라는 뜻이죠.

‘성령’이 함께 해야 한다는 거예요.

왜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지만 두려움에 벌벌 떨고서 방문을 꽁꽁 걸어 잠갔죠.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고 난 후에야 비로소 순교를 각오할 정도로 담대하게 부활을 증언한 자들이었죠.

그만큼 성령은 거듭난 자들이 흔들림 없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이끄시고 도우시는 분이에요.



〈신의악단〉은 지난 주일 오후 목포서부감찰회 모임이 끝나고 밤늦게 함께 본 영화였어요.

영화가 끝나고 한밤중에 헤어질 그 때 어느 분이 그런 말을 했어요.

현재 목포에서 북한의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 참석한 탈북자가 한 말이라면서요.

현재 북한의 ‘지하교회’를 섬기는 이들이 30만 명가량은 된다고 말예요.


〈신의악단〉 은 몽골의 혹한기 속에서 만든 영화라고 해요.

하지만 북한의 실제 상황은 더욱 혹독한 상황이겠죠.

그 영화도 실제 상황을 토대로 만든 것이라고 하니 지금도 〈신의악단〉 같은 이들이 북한에서 활동하는지 모르겠어요.

다만 〈신의악단〉처럼 ‘지상교회’를 이루며 찬양하는 이들이든지, ‘지하교회’를 이루며 숨죽이며 찬양하는 이들이든지, 북한의 간부로서 감시와 통제를 하는 이들이든지, 그 냉혹한 상황에서도 거듭남의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거예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이끌어 가고 있는 셈이죠.

우리나라의 종교유착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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