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를 달리는 인생

미용실에서 개인택시를 내려놓는다는 어느 아내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by 권성권
플로우에서 만들어 준 사진



한 달에 한 번 정도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가고 있습니다.

동부시장 파출소 뒤편에 있는 박영숙 미용실이 그곳이에요.

그곳을 찾아 다닌 지 5년도 훌쩍 넘은 것 같네요.

그 미용실 주인장은 내게 반값으로 머리를 잘라 주고 있어요.

덩달아 내가 소개한 두 분도 싼 가격으로 해 주고 있고요.

물론 머리도 세련되고 깔끔하게 잘라 주는 편이라 그곳을 찾아가고 있는 거예요.



그날도 그곳에서 머리를 잘랐습니다.

이제 새로운 분이 내가 앉던 의자에 앉았는데 60대 중반 여성 분이었어요.

그분은 남편이 여유가 생겨 그날부로 개인택시를 반납한다고 했어요.

오전에 번호판을 팔러 갔는데 1억 6천은 받는다고 했습니다.

20년 전 6천만 원 하던 게 지금은 3배 높게 거래되고 있는 셈이라고요.


왜 그렇게 높은 가격이 형성되고 있 걸까요?

20년 전에 비해 목포가 도시화로 발전했고 신안으로 여행하는 이들이 늘어난 까닭이겠죠.

더욱이 고령화로 진입하면서 택시를 더 많이 이용하는 추세고요.

앞으로 15년 뒤는 어떨까요?

인공지능에게 물어봤더니 자율주행이 당장 상용화되지 않는다면 자산 가치는 2억이 훌쩍 넘을 거라고 하더군요.

거기에 운행 수익까지 더한다면 충분히 매력이 있다고 말이죠.


사실 그 남편은 20년 넘게 택시운전을 하면서 고생이 많았다고 해요.

택시 번호판을 그렇게 샀어도 택시는 또 따로 구입해야 했으니까요.

더욱이 택시를 운행하면서 만나는 괴짜 손님을 상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요.

그때는 택시 한 대가 아파트 한 채와 맞먹었으니 매일 같이 때빼고 광내고 해야 했고요.

어쩌다 먼 거리를 왕복할 때면 한밤에 택시 안에서 한숨 붙이고 새벽에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고 해요.



인생이 그런 게 아닐까요?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산다 해도 다들 길 위를 달리는 인생이라는 것 말이죠.

머리를 자르다가도 손님이 없으면 잠시 의자에 기대어 쪽잠을 자다가 다시 달려야 하죠.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계속 달려야 하고요.

인력시장을 통해 공사 현장에 나가 일을 하더라도 새참을 먹은 후에는 다시금 달려야 하듯 말이죠.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출40:17)


출애굽한 지 1년이 지난 시점 곧 2년 1월 1일에 성막을 세웠다는 말씀입니다.

최초 애굽에서 빠져나와 3개월 곧 50일째 되는 오순절날 시내산 언약을 체결하죠.

그때 모세는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과 레위기의 율법서와 성막설계도를 받고 내려오죠.

하지만 백성들이 황금송아지로 된 하나님 우상을 만든 일로 재언약을 맺죠.

다시금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가지고 오는데 그게 5개월이 흐른 셈이죠.

그때부터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필두로 7개월간 성막을 만들어 세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말 ‘성막’은 히브리어로 ‘미쉬칸(מִשְׁכָּן)’에요.

‘임재하다’는 ‘샤칸(שָׁכַן)’이란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미쉬칸’은 장소의 성격이 강하고 ‘샤칸’은 동행의 성격이 강해요.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곧 38년간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익힌 거죠.

성막에서 제사하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성막 입구에 세워놓은 십계명의 돌판을 보면서 사람과의 관계도 바르게 유지하도록 말에요.

그들은 붙박이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매번 길 위에서 그렇게 이동하면서 산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택시 위에서 인생의 길을 달리고 있겠죠.

누군가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다듬으면서 인생의 길을 달릴 거고요.

누군가는 옷 가게에서, 누군가는 고깃배 위에서, 누군가는 공사 현장에서, 누군가는 필리핀과 해외 곳곳을 누비며 인생의 길을 달리겠죠.

모두가 다른 인생의 길을 달린다 해도 저마다 걸어 다니는 성막으로 살았으면 해요.

이동하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모시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세로 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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