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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울타리를 치고 살아야 합니다.
토머스 킹의 〈Borders〉에 나온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by
권성권
Feb 21. 2026
엊그제 예배당 옆 작은 텃밭과 주차장 사이에 울타리를 쳤습니다.
텃밭 안쪽과 바깥에 경계선이 없어서 그랬는지 개와 고양이 떼들이 마구마구 양파를 헤집고 다닌 까닭이었어요.
녀석들은 양파 모종을 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파헤치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나는 다시 심어주곤 했죠.
그렇게 계속하다가는 양파 모종이 뿌리를 내리지 못할 것 같아 이제는 참을 수가 없어 말뚝을 박고 줄을 친 거였어요.
그 울타리가 앞으로 어떻게 비칠까요?
때로는 멋진 울타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붙잡기도 합니다.
작년에도 그 경계선 사이에 심은 꽃양귀비가 길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니까요.
올해도 그럴지는 모르겠어요.
울타리를 친 경계선 밖으로 다시금 꽃양귀비가 피어오른다면 더 멋질 것도 같고요.
그저 울타리를 친 목적대로 짐승들이 텃밭을 헤집고 다니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공존하고 배려하는 방식은 때로는 울타리를 통해 드러날 수 있으니까요.
12살 된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차를 타고 길을 나섰습니다.
목적지는 미국에 사는 누나 집이었죠.
오랜만에 가족이 모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소년은 들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의 여정은 캐나다 국경에서 멈춰 섰어요.
국경 관리가 국적을 묻자 어머니는 ‘블랙풋(Blackfoot)’이라고 대답했기 때문이죠.
국경 경비병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 길을 막아버립니다.
계속된 질문에도 어머니는 흔들림 없이 똑같은 대답을 했어요.
결국 어머니와 아들은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에 놓이고, 무인지대에 갇힌 채, 차에서 생활해야 했죠.
아들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그저 ‘캐나다인’이라고 말하면 쉽게 통과되고 누나를 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깨달았죠.
자신의 어머니가 한 대답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존재를 지키려는 선언이었다는 걸 말이죠.
캐나다가 강요하는 정책에 맞서 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고자 끝까지 저항했다는 것을요.
토머스 킹의 〈Borders〉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머니가 끝까지 ‘블랙풋’이라고만 답하면서 캐나다인이나 미국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장면은 국가가 요구하는 정체성과 자신의 공동체가 지키려는 정체성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는 모습이죠.
그 충돌은 단지 북미 원주민 사회의 문제만은 아니겠죠.
트럼프가 보여주는 이민정책으로 현재 미국 사회도 대 홍역을 치르고 있죠.
대한민국도 다양한 형태의 경계와 정체성의 긴장 속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이에요.
크리스천들도 때로는 자신의 정체성과 경계를 두고 힘들어할 때도 있습니다.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출40:33)
성막과 제단 주위의 뜰에 ‘포장’을 쳤다는 건 ‘울타리’를 쳤다는 뜻입니다.
동쪽 울타리엔 정문까지 세웠고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 하나도 거기에 세워놨겠죠.
사실 진설병과 금촛대와 분향단과 법궤만 있으면 될텐데 왜 울타리를 치게 한 걸까요?
‘울타리’는 히브리어로 ‘하쩨르(חָצֵר)’인데 ‘울타리로 둘러싸인 마당’을 뜻해요.
‘울타리’는 성막과 세상을 구분하는 경계선과 같아요.
신약시대의 ‘아울레(αὐλή)’도 그런 뜻이에요.
예수님께서 가야바의 법정에 끌려갈 때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뜰(마26:58)에 들어가 지켜봤는데 그 역시 경계선의 의미죠.
사실 에덴동산도 울타리를 친 동산입니다.
왜 에덴동산에도 울타리를 쳤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슬피 울면서 탄식했죠.
만약 울타리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자신들의 어긋난 삶을 돌아보거나 에덴동산의 삶을 소망할 이유가 없었겠죠.
경계선이 없는 동산이라면 언제든지 발로 밟고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만큼 에덴동산에 울타리를 친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잊지 말고 살라는 경계선과 같은 거였어요.
크리스천도 때로는 울타리를 허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더 높은 자리에 손쉽게 오를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취할 수도 있으니까요.
캐나다 국경에서 그 어머니가 ‘블랙풋’이라고 답하지만 않았어도 손쉽게 통과할 수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크리스천이 신앙의 울타리를 허물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앞에서는 좋아할지라도 뒤에선 모욕을 해요.
신실한 크리스천이 믿음의 울타리를 치고 선을 긋고 살 때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이 감동을 받게 되고요.
앞으로는 텃밭과 주차장 사이의 울타리를 보고 개와 고양이 떼들이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습니다.
울타리 바깥으로 피어오를 꽃양귀비들을 볼 길손들의 마음에도 선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으면 좋겠고요.
그 울타리를 보면서 목포에 들어와 사는 다문화 이민자들도 배려하면 좋겠고요.
신실한 크리스천이 보여주는 믿음의 경계선으로 세상에 믿지 않는 자들이 감화를 받는다면 더없이 아름답고 선한 울타리가 되겠죠.
때로는 울타리를 치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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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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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고상하게 삶은 단순하고 평범하게 사는 목사이자 농부. '바울의 일생과 편지' 등 다수의 책을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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