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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Apr 14. 2020

있는데 안하는 것과 없어서 못하는 것의 차이

금지된 사우디에서 느끼는

예전에는 그 차이를 인지하지 못했었다.

자질구레한 일상에서 '있는데 안하는 것'과 '없어서 못하는 것'에 대한 그 극명한 차이를 사우디 5년 차 생활에서 절감하고 있다.


'있는데 안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나의 능력으로 가능하지만, 욕구에 반하여 뭔가를 참아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 대표적인 예로 다이어트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참음으로써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건강함과 살아나는 옷태를 생각한다면, 이는 힘들지만 즐거운 자발적 인내이다.


'없어서 못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나의 능력으로 가능하지만 어떤 사유로  Available 하지 않아 나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면, 딱히 생각나는 예가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즐겨왔던 대부분의 사소한 꺼리들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가 있어, 안 하면 안 했지 못할 이유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우디는 다르다.

사우디의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가장 불편한 2가지는 금지된 술과 돼지고기이다.

이슬람 교리인 꾸란에서 '돼지고기는 먹지 말라'고 되어있고, '술은 취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이슬람의 종주국으로 자처하는 정교일치의 사우디는 이를 보수적으로 해석하여 법으로 아예 "술과 돼지고기"를 금지하고 있어, 사우디에 거주하는 비 무슬림에게도 이에 대한 강제적인 복종을 요구한다.




나에게 술은

나는 맥주만 마신다.

소주는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았고, 대학 1학년때 친구 따라 상당량을 마셨다가, 심한 뱃멀미 증상이 삼 일 간이나 지속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소주는 나에겐 그냥 알코올이 되었다.

와인도 마신다.

원래 내 취향에 맞았던 진로 포도주의 달짝한 맛을 기대하면서, 호주 생활에서 접해본 와인은 처음에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너무도 흔한 '친'와인 환경으로 조금씩 그 맛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꽤 즐기는 편이다. 호주에서는 주로 병당 A$20 내외이면 내 저렴한 와인 취향을 만족시켜주기에 충분한 와인들이 널려있었다.

소주까지 땡긴다.

퇴근 후 동료들과 또 휴일에 친구 또는 RJ와 마시는 시원하고 청량한 생맥주 한잔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즐겁고 행복한 나의 일상이다.

하지만 흔하디 흔한 맥주 '한 잔'이 사우디에서는 불가능하고, 없어서 못하게 되니 알코올로 취급했던 소주 조차도 땡긴다.


나에게 돼지고기는

돼지고기를 기본으로 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얼마나 많은 음식이 돼지고기로 만들어 졌는지 사우디에 와서 알게 되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머리속에서 자주 나열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가끔 우리나라로 휴가를 가게 되면 하루에 3끼만 먹는 습관을 거스르고 싶다.


또한,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는 먹방이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1일 1예능을 소화하는 우리 가족은 원하지 않는 먹방에 노출되어, 출연자들이 맛깔나게 먹는 화면과 쓸데없이 생생하게 잡히는 먹는 소리에, 냄새까지 나는 것 같다.

가끔 예능을 보다가, 갑자기 불특정한 어떤 것에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코로나로

사우디는 요 며칠 코로나 신규 확진환자가 일일 500명 가까이 올라가면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에 대한 조치로 사우디는 벌써 오래전부터 국내외 출입국이 전면 금지되었고, 24시간 통행금지가 발효되어 동네 마트와 약국외에는 아무데도 갈수가 없다. 이런 강력한 조치가 코로나를 빠르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안심되기도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그나마 답답하면 콧바람을 넣을 수 있었던 쇼핑몰이 문을 닫았고, 비싸고 맛없어서 피해왔던 레스토랑들이 아쉬워지며, 또 가라고 해도 갈 데가 없지만 못 간다고 하니 어딘가 나가고 싶은 애먼 욕망이 꿈틀거린다.


가족들은 바레인으로 놀러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돼지고기와 맥주 한 잔때문에, 리야드에서 바레인까지 국경 통과 절차를 포함해서 차로 편도 6시간은 걸리는 불편함과 지루함이 싫어서이다.

휴교로 벌써 한 달 이상 집에 있는 '집돌이 J'와 삼식이들 뒤치다꺼리에 힘든 '콧바람 RJ'는 이번 조치만 해제되면 바로 바레인으로 쏘자고 한다.


그 하나하나가 그립고 또 그립다.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당연히 포기해야 하지만, 이는 손짓 한 번이면 금방 닿을 듯 가까이 있을 때 참는 것과는 그 결이 다르다.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알고 있고 즐겨왔던 대체할 수 없는 그 맛참아야 하고 또 그 인내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증과 욕망이 증폭되어, 이를 견디고 버티기 위한 정신적인 마모가 상당하다.

내 몸 구석 어디선가 사리가 생기고 있는듯 하다.


나를 다독이며 버티고 있다.

만약 사우디에 오지 않았다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없는, 주변에 널려 있어 내 일상을 풍족하게 해주는 사소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나고 나면 지금 사우디의 이 일상 조차도 언젠가 그리워질 거라고...

또, 먹어봐야 내가 다 알고 있는 그 맛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다 알고 있는 그 맛을 계속 즐기고 싶다. 이제는 그 소중함을 아니까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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