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드디어 다 읽은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 출간됐을 때부터 구매해서 읽었는데, 등장인물이 많아서 그런지 왜인지 모르게 집중이 되지 않아 여러번 나누어서 오래동안 읽었다. 아마 그때의 내가 책을 읽을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번 집중하니 후루룩 다 읽을 수 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이 외의 정세랑 작가의 책은 글이 술술 읽혀서 한번 읽으면 쉬지 않고 읽었는데, 처음 정세랑 작가를 알게 된 「보건교사 안은영」부터 최근 2편이 나온「설자은 시리즈」까지! 작가님의 다양한 책을 정말 재밌게 읽고있다. 이 책도 작가님의 책이라고 해서 고민 없이 구매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제목을 참 잘 지었구나 싶다.
책의 주인공인 '심시선 여사'의 시선으로부터 작성된 '책'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심)시선으로부터 작성된 책을 그 후손들이 읽으면서 삶을 깨닫고, 이해하고, 이어간다. 제목 뒤에 있는 ",(쉼표)"는 (심)시선으로부터, 할 얘기가 더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내가그다지사랑하던그대여
내한평생에차마그대를잊을수없소이다
내차례에못올사랑인줄은알면서도
나혼자는꾸준히생각하리다
자그러면내내어여쁘소서
이상 <이런시 >
오늘은 나의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작가의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를 리뷰해 보겠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 책과 어울리는 책갈피를 사용하는데, 언젠가 책을 살 때 받았던 책갈피로 이번 책을 읽어봤다. 이 책갈피에 쓰여진 시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가 되었는데, 이걸로 책을 읽으면 더 잘 읽히는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모두 "내내어여쁘소서"
나는 책을 깨끗하게 보는 걸 좋아하는데, 구겨지지 않아야 하고 글을 쓰거나 형광펜으로 칠하는 것도 선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이소에서 산 롱인덱스를 활용해 마음에 드는 구절에 표시했다. 「시선으로부터,」에는 주옥같은 글들이 많아서 롱인덱스를 자주 사용했고, 읽는 동안 울컥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시선으로부터,」에는 등장인물이 꽤 많은데, 이름을 잘 못 외우는 나는 책의 앞부분에 있는 가계도가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책을 읽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앞을 왔다 갔다하며, 등장인물을 익혔다.
이 책은 심시선 여사가 죽고 나서 그 후의 자식들과 손주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심시선 여사의 특별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든 가족들이 하와이로 떠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심시선 여사의 특별한 제사를 위해 가족들은 제사에 놓을 특별한 것들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다들 한 단계씩 성장하는 듯 보였다. 나 또한 이런 과정을 읽으며 인생을, 사랑을, 가족을 배울 수 있었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304p
사랑은 돌맹이처럼
꼼짝 않고 그대로 있는 게 아니라
빵처럼 매일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거래
위의 구절은 사람이 하루하루 시간에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사랑도 그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해줬다. 언제나 같은 모양의 사랑을 만들기는 어렵기에 변화한 사랑에 슬퍼하기보단 변화에 따라 그에 맞는 모양의 사랑을 만들면 되는 거였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269p
남의 눈치 보지 말고 큰 거 해야 해요.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이 부분은 정말 통쾌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안되지만, 그렇다고 내 일을 못하면서까지 남 눈치 보며 살 필요는 없다. 좁으면 남들 보고 비키라지!!!
모든 구절이 다 와닿았지만, 특히나 공기가 따갑다는 부분은 마음에 콕 와닿으면서 아프게 다가왔다. 요즘 들어 우리 일상에서 흔히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모두 예민하게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우리 주변의 공기가 좀 더 뭉툭해지길 바라봤다. 세상을 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심시선 여사의 자식들, 손주들은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했던 심시선 여사를 닮았기에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됐다. 책은 끝났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심시선으로부터 나아가 이제는 그들의 시선으로부터 새로운 시작을 향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세랑 작가는 작가의 말을 읽는 재미도 있다. 존재하지 않는 심시선이지만 존재했던 것처럼 심시선 여사와 같이 죽는 날까지 책을 쓰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뭔가 나에게도 동력을 불어넣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인생의 수많은 중요한 시기 중에서도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시간을 허투루 쓰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작가님은 글을 정말 잘 쓰는 분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님인 거겠지만! 너무 좋아하는 작가여서 앞으로 나올 책들도 모조리 읽을 예정이다. 특히 설자은 시리즈는 추리물을 좋아해서 정말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이번에 2편이 나왔는데, 앞으로 더 많은 시리즈가 나오면 좋겠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256p
세상은 참 이해할 수 없어요.
여전히 모르겠어요.
조금 알겠다 싶으면 얼굴을 철썩 때리는 것 같아요.
네 녀석은 하나도 모른다고.
마지막으로 가장 와닿았던 구절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려 한다. 세상이 나랑 밀당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살아갈수록 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좀 더 세상을 편하게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불편하게 마음먹어봤자 인생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아서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나은 것 같다. 모든 세상을 이해하려 하기 보다 새로운 세상이 다가와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아직 읽지 못한 정세랑 작가의 에세이가 있다. 직장 동료에게 선물로 받은 책인데 마저 다 읽지 못했다. 이것도 읽어서 얼른 리뷰를 남겨보고 싶다. 처음 남겨보는 도서 리뷰라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이렇게 글을 정리해서 남겨보니 좋은 것 같다. 이제서야 책을 비로소 다 읽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