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이디스 워튼
서점을 구경하다가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 책장에 꽂혀있던 이 책을 꺼냈는데, 책의 뒷부분에 나열된 설명이 재밌어 보여 구매했다. 책을 읽은 후 나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스포주의☆
내가 생각했던 것하고는 좀 다른 내용이었는데, 그래도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솔직히 그냥 책을 즐겁게 읽는 무지렁이로서 말하자면, 약간 막장 드라마 같은 흐름이었다.(그래서 더 재밌게 읽었을지도!)
첫 부분은 등장인물도 많고 이름이 헷갈려서 누가 누구지... 하고 봤는데 중간 부분부터는 이름도 외워지고 내용도 더 흥미진진해져서 빠르게 읽었다.
'산'에서 태어난 채리티는 도시로 내려와 후견인인 '로열'씨의 손에서 자랐다. 도서관에서 일을 하며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대도시 출신의 건축가 '하니'가 등장해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여러 과정의 끝에 '하니'와 '채리티'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뜨거운 사랑을 이어간다. 하지만 서로의 상황이 생기고, 격차가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채리티는 약혼녀가 있던 그를 놓아주고, 결국 그와 함께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이디스 워튼 「여름」 121p
마치 한 송이 꽃처럼
옆에서 숨 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니는 처음부터 채리티를 대할 때 함부로 하지 않았고, 조심스럽고 애정 어린 행동으로 채리티에게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스포주의☆ 이렇게 스윗한 남자였는데 ㅠㅠㅠ 끝까지 스윗할줄 알았건만 약혼녀가 있는 것도 말 안 하고!!!! 채리티가 가라니까 좋다고 가버린 하니좌식
이디스 워튼 「여름」 122p
그러나 채리티에게
더위는 오히려 자극제였다.
여름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무더운 더위가 오히려 그들의 사랑에 기폭제, 자극제가 되는 역할을 했다.
무더위에 그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할 수 있다니!!! 청춘이다 청춘이여
이디스 워튼 「여름」 163p
때때로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채리티는 뭔가를 줍는 것처럼 몸을 숙이고
잠시 베개에 뺨을 올려놓았다.
채리티가 하니의 방에 가게 됐을 때 한 행동인데,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걸 알고 보는 독자로서 너무 귀여운 모습이었다.
어린 소녀가 사랑하는 남자의 방에 들어가서 사람들 모르게 저러고 있을 거 생각하니까 채리티의 어정쩡한 모습이 상상되면서 웃겼다. 물론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이였다면 소름 돋았겠지만;
이디스 워튼 「여름」 203p
만약 당신이 애너벨 볼치와 결혼을 약속했다면
그녀와 결혼했으면 해.
아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둘의 연애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약혼녀의 등장이라니..사학루등이냐고; 계속 채리티가 어떤 여자를 신경 쓰길래 아 그냥 예뻐서 신경 쓰이나 보다 했는데, 그게 하니의 약혼녀일 줄 누가알았냐구요
아니 약혼녀는 그렇다 치더라도 하니 이 좌식이 채리티한테 말도 제대로 안 해주고 기다리고 있으라 해놓고, 연락 내내 없다가 채리티가 혼자서 어찌어찌 하니한테 약혼녀가 있다는 걸 알아내고, 또 혼자서 끙끙 앓다가 저런 편지를 보낸 거라니. 독자 웁니다요 ㅠㅠ 과몰입못참아ㅠㅜ
되게 가볍게 여름의 풋풋한 사랑과 해피엔딩을 생각하고 읽었는데, 할아버지가 채리티한테 청혼하질 않나 하니 좌식이 채리티를 버리고 가질 않나 혼돈의 내용이 계속 이어졌다.
시대적 배경이 있는 만큼 채리티는 하니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지금의 나로서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하니를 보내줬나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스포주의☆ 거기다 채리티는 하니의 아이를 임신했어서 더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하니 좌식 너 이 좌식 책임 안 지고 이 좌식
이 책의 좋은 점은 이야기 끝에 옮긴이의 작품 해설이 있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감정을 이 작품 해설과 같이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옮긴이의 입장에서 해석한 작품은 더 풍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더 깊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어 이야기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았다.
이디스 워튼 「여름」 277p 작품 해설 中
나는 때로 여성의 성격이란
방이 많은 큰 집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왔다.
워튼의 초기 작품인 「충만한 삶」에서 여성의 성격을 방이 많은 커다란 저택에 빗댔는데, 공감이 가서 인상 깊었다.
모든 사람이 들락거리는 홀, 공식적인 방문을 받는 거실, 식구들이 오고 가는 가족실, 문 손잡이조차 돌려본 적 없는 숨겨진 방들, 가장 성스럽고 가장 깊숙한 방까지 다양한 방을 여성의 성격에 빗댔는데, 이건 사실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듯했다.
채리티는 가장 성스럽고 깊숙한 방에서 홀로 오지 않을 발소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성장 소설의 주인공인 만큼 숨겨진 아픔을 견뎌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이디스 워튼 「여름」 294p 작품 해설 中
그렇다면 과연 채리티가
로열 씨와 결혼한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을까?
…
오늘날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작품 해설 말미에는 옮긴이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를 하는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채리티의 어리숙하면서 어른스러운 듯한 행동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그 시대의 채리티 입장이라면 충분히 내릴 수 있는 결정이라고 애써 이해해 보려 한다.
출신지도 불명확하고 후견인에 의해 자라온 탓에 제대로 된 사랑도 받지 못한 채리티는 약혼자가 있는 사랑하는 남자를 무턱대고 쫓아가기엔 두려움이 컸을 것 같다. 그 남자의 아이도 갖게 되었지만 자신의 처지에 (약혼자가 있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짐이 되기 싫었을 것 같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행복을 비는 대신 본인이 희생하며, 그나마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로열씨를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채리티는 과연 이런 결정으로 어떻게 됐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자식을 낳고 끝내 행복을 찾았을까? 로열씨는 채리티가 하니의 자식을 낳아도 끝까지 책임졌을까? 채리티는 아이에게 하니의 존재를 알렸을까?
여러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저 채리티가 마침내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나 더 행복한 삶을 살았기를 바라며 독서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