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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by 호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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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노웨어, 나우 히어> 전시회의 배경이 된 소설 「공생가설」이 궁금해서 읽은 책이었는데, 모든 이야기가 다 내 스타일이었다. 문체도 그렇고 작가님의 생각이 정말 독특해서 이야기를 후루루룩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책 뒷면에 내가 좋아하는 정세랑 작가님의 후기가 적혀있어서 더욱 믿고 읽을 수 있었다. 기대만큼 김초엽 작가님의 책도 너무 재밌었고, 뒤 내용이 궁금해서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7가지의 단편을 모아놓은 소설집으로, 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과 이야기를 정리해 보려 한다.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스펙트럼」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생각해 봤을 만한 내용이었는데, 여기에 작가님의 창의적인 상상력이 들어가면서 더 구체적이고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70p
희진은 이 행성이 두려웠다.
그러나 동시에 궁금해졌다.

인간의 탐구심이 드러난 것 같으면서, 나도 희진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려우면서도 궁금했기 때문에 읽는 동안 은은한 긴장감이 맴돌았고, 더욱 쉽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희진이 말하는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독자에게 결말을 맡기는 듯했다. 사실 열린 결말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야기를 읽고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99p
그 아이는 다섯 살부터
자신이 '그곳'에서 왔다고 주장했어요.

<유토피아: 노웨어, 나우 히어> 전시회의 배경이 되었던 「공생가설」


소설을 읽으며 전시를 떠오르니, 하나둘씩 맞춰지는 퍼즐이 묘한 쾌감이 있었다. 전시회의 작품들은 류드밀라의 그림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시회를 다시 생각해 보며 글을 읽으니 '그곳'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전시회의 작품들을 보며,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뭔가 이질적인 유토피아의 모습이라고 느꼈는데, 내 머릿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없나 보다. 그만큼 이상적인 공간이었기에 오히려 낯설었던 걸까?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6p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감정의 물성」은 곧 현실에서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였다. 인간은(=나) 왜 이렇게 물욕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물건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에 깊은 공감을 하게 됐다.


눈으로 인지한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고 있기에 우리는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이 이야기에 등장했던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품이 나온다면, 나도 한 번쯤은 구매해서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항상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회사에서 중요한 발표가 있거나 갑자기 찾아오는 무력감을 떨치지 못할 때 사용할 수 있는 감정을 살 것 같다.


지금도 항불안제 등이 있긴 하지만, 불안을 줄여준다는 말보단 행복하게 만들어준다는 문구가 더 혹하지 않을까?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25p
여전히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감은 달라졌다.

죽음을 떠올릴 때면, 죽어가는 당사자만 생각하게 되는데 「관내분실」은 죽음 이후의 남겨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 속 마인드 도서관은 죽은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인데, 상대방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들을 추억하고, 회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죽은 사람보다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언젠가 떠날 나겠지만, 생각만 해도 싫지만, 암튼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 도서관에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과 같이 기억으로만 추억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기억으로 추억하다가 서서히 잊혀가는 것이 남겨진 사람들과 떠난 사람 모두 덜 쓸쓸하고,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전시회로 알게 된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도서 리뷰를 남겨봤다.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은 것 같았는데, 재밌게 읽어서 아주 만족스럽다. 다음에 또 작가님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다.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새롭고 독특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기에 장르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책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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