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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뽕삼 Sep 23. 2015

소규모 에세이 ; 여행 by 뽕

3인 3색, 같은 소재 달리 보기

여섯 번째 소재


여행


글, 사진 / 뽕 




홀로서기 여행





  2011년 가을이었다. 내 나이 스물여섯. 두 번째로 입사한 회사를 그만 두었다. 기억을 끌어당기자 당신의 꿈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던 젊은 CEO와 종종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던 팀장,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공통분모로 거리를 좁히며 로맨스를 실현하고 싶었던 유부남 동료, ‘디자인 감각’을 운운하며 업무를 지시하던 ○○대학교 명예교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로 대표와의 면담을 마무리 지었고, 송별회를 하며 기분 좋게 퇴사했지만 내 앞에 펼쳐질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구체적인 욕망’이 아니라 ‘추상적인 도피’였다. 나는 필요에 따라 인간을 소모품처럼 쓰는 사회의 시스템,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파렴치한 남자에게 지쳐 있었다. 


  ‘떠나야 한다.’ 


  어디로든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능하면 우리나라가 아닌 곳,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나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었고 잠들어 있는 감각을 깨우고 싶었다. 무엇보다 형체 없이 널브러져 있는 사유를 끌어모아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몸의 기억을 만들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여행자들에게 ‘태국’을 추천받고, 커뮤니티, 여행 책자 등을 통해 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혼자 여행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도 되었지만 나의 껍질을 깨는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부모님의 염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 무렵 절친한 친구 J에게 Y를 소개 받았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청년이고, J가 아는 사람 중 여행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Y가 지방에 살고 있어서 문자와 전화로 태국에 대해 물어보았다. J에게 들었던 대로 Y는 건강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Y는 면접을 보러 서울에 올라왔다. 그 때 J와 함께 Y를 만났고, 브런치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만남을 기점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러는 사이 태국에는 큰 물난리가 났고,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었던 태국 여행은 물거품이 되었다. 물에 잠긴 지역을 피해 여행 루트만 수정하려고 했는데,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쳤고, 한국 여행으로 타협을 보았다. 그렇게 하여 떠나게 된 혼자 하는 첫 여행. 


부산 태종대

  Y가 살고 있는 거제에서 시작하여, 이모가 살고 계시는 부산, 쑥 작가가 살고 있는 대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행지마다 지인이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홀로서기 여행이라고 하긴 좀 어렵지만 그래도 혼자 걷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좋았다. 


  거제에서는 여행을 다니며, Y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험한 길이 나올 때마다 손을 내밀어주었던 청년.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참 따뜻했다. 그 때를 떠올리면 그날의 바람소리와 웃음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부산 해운대

  

  부산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바다에 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바다를 볼 수 있다니! 서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광안리 해변에 어둠이 내려앉고 불이 켜질 때까지 앞날에 대해 고민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나올 때처럼 글만 쓸 생각은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 무모한 인생 계획이고, 젊은 날의 객기에 불과했다. 나는 또 다시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나는 잠시나마 소모된 영혼을 쉬게 하고 싶었다. 여행 중 틈틈이 기록을 했지만 소설을 쓰지는 못했다. 


부산 광안리



2010년 대전의 가을 

  대전에서는 당시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던 쑥 작가를 만났다. 그녀는 회사 안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주었고, 자신이 일하는 공간을 소개시켜 주었다.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사회에 나와 제 몫을 해내기 위해 잘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했다. 

 





  수많은 여행 중에 이 여행이 유독 기억에 남는 이유는 혼자 떠난 첫 여행이고 다정한 사람들을 만나 소중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십 대를 지나 삼십 대가 된 지금은 혼자 하는 여행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 이십 대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되었고, 여행은 좋은 사람과 함께 할 때 기쁨이 배가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앞날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최근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호시탐탐 여행할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좀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의미 찾기 중이다. 


여행 중 기록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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