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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뽕삼 Sep 19. 2015

소규모 에세이 ; 신발 by 뽕

3인 3색, 같은 소재 달리 보기

다섯 번째 소재


신  발


글, 사진 / 뽕





그 어떤 모습의 나라도 사랑할 것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빠는 구두를 한 켤레 사주셨다. 굽이 오 센티쯤 되는 검정색 가죽 구두. 화려하진 않았지만 발이 편안해서 마음에 들었다. 아빠가 사준 구두를 짐 꾸러미에 넣고 학교생활을 위해 낯선 도시로 떠났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꽤 있었는데도 기숙사를 배정 받지 못한 나는 우여곡절 끝에 추가 합격으로 기숙사생이 되었다.     


  매일 밤 점호를 마치고 이층 침대에 누워도 좀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천장을 바라보며 가족의 얼굴과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시절의 나는 꽤 염세적인 학생이었다. 고대하던 스무 살이 되었는데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낯선 환경에 내던져졌을 뿐이고, 책임감만 막중해진 기분이었다.

    

  오랫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구들에게는 나에 대해 알릴 필요가 없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에게는 나를 소개해야 했고, 그 과정이 번거롭고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대학 친구들은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이라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는 루머에 지배받고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만났던 동기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새침해 보였다. 생각했던 대로 친해지긴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고, 말을 아꼈고, 웃음을 감췄다.

    

  밤 11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호를 하는데, 층장이 ‘건강진단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 날 마침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실한 같은 방 언니가 진단서 떼러 같이 가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수락했다.     


  “이쪽이 지름길인 것 같아. 이쪽으로 가자.”  

  

  언니가 가리킨 곳은 경사가 가파른 언덕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새 구두를 신고, 불편한 다리로 내려가기에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도 무슨 객기가 발동했는지 한번 가보자 싶었다. 발을 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심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안경이 날아가 있었고, 언니가 주워 다 준 안경 코패드암 부분에 살점이 붙어 있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간 부분에서 피가 흐르는데도 아픈지 몰랐고, 그저 창피하고 민망했다. 언니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뒤 보건소에 가려던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     


  “흉 남지 않게 꿰매주세요.”     


  수술대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겁이 나 꼭 감았던 눈을 뜨자 상처를 봉합하는데 집중한 의사의 코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게 보였다.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에 언니는 자신의 왼손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언니 손가락 못 생겼지. 말 하지 그랬어, 난 불편한지 전혀 몰랐어.”   

  

 언니는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없었다. 어린 시절 선풍기 앞에서 놀다가 호기심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고 했다. 언니는 얼굴을 다쳐 속상한 나를 위로해주려고 (아마도)별로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을 내게 보였다. 나는 그 때 누구나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지닌 채 살아간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내 경우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서 좀 속상하지만 그 또한 나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울면서 다짐했다. 병원에 다녀 와 이층 침대에 누웠는데, 온 몸이 쑤시고 힘이 없었다.  

   

  [미안한데, 내가 얼굴을 다쳐서 그런데 밥 좀 받아다 줄 수 있을까?]    


  식욕이 없었는데도 밥을 먹고 힘을 내서 얼른 나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을 같이 먹던 기숙사 동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몇 분 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함께 연재하고 있는)삼과 동기 언니가 식판을 들고 방으로 와 주었다. 그들은 상처투성이인 내 얼굴을 보고 좀 놀란 듯 했으나 내색하지 않았고 얼른 나으라는 말을 전했다. 입맛이 없었지만 꾸역꾸역 밥을 씹어 삼켰다. 걱정 어린 눈으로 나를 보던 동기들의 얼굴에 얼어 있던 마음이 녹으면서 고마움이 밀려왔다.     


  그날 저녁 소식을 들은 (함께 연재하는)쑥이 방문을 두드렸다.   


  “아프겠다. 그래도 눈을 안 다쳐서 다행이다. 유리조각이 눈에 들어가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어. 정말 다행이다.”     


  쑥은 촉촉한 눈으로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개강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내게 일어난 사고. 그 일로 울적했지만 덕분에 동기들에게 위로 문자를 많이 받았고, 삼과 쑥을 얻었다. 그 뒤로 우리는 ‘기숙사 패밀리’라는 이름으로 뭉쳐 다니며, 함께 수업을 들었고, 밤늦도록 과제를 했고, 감시의 눈을 피해 야식을 시켜 먹었다. 대학 친구들과는 깊은 교감을 나누기 힘들다는 풍문은 정말 풍문에 불과했다. 지겹도록 얼굴을 보고, 때로 잠까지 함께 자는데 어찌 친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얀 피부색 때문에 더 도드라져보였던 상처. 나는 지겹도록 거울 앞에 서서 그것을 들여다보며 슬픔에 잠기곤 했다. ‘그날 그 구두를 신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수만 번 삼킨 후에야 상처가 아물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스무 살 특유의 슬픔을 떨치고 일어 나 쾌활함을 되찾았는데 돌이켜 보면 그 날의 사고가 어리석은 나를 일깨워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희미하게 남은 흉터가 온 몸으로 내게 말한다. 그 어떤 모습의 나라도 사랑할 것.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주제,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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