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쑥뽕삼 Sep 11. 2015

소규모 에세이 ; 편지 by 뽕

3인 3색, 같은 주제 달리 보기

세 번째 소재


편 지


글, 사진 / 뽕



 며칠째, 너와 함께 생활할 물건들이 거실 한 쪽을 차지하고 있었지. 그것들은 낯선 곳으로 떠나는 너의 마음처럼 무거워 보였어.    


  “안 돼, 이건 꿈이야.”    

  

  떠나는 날 아침, 너의 첫 마디. 네가 있는 동안엔 침대가 좀 좁았지만 발을 만질 수 있어서 좋았어. 내가 네 발가락을 꾹 누르고, 만지면 너는 꼼지락꼼지락. 그건 배꼽이 떨어지면서부터 함께 살아 온 우리만의 암호랄까. 뭐 그런 거 있잖아.    

 

  "나는 너를 사랑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나.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회사에 가시고, 우리 둘이 집에 있을 때가 많았잖아. 그때 우린 무수한 놀이를 만들어서 놀았지. 발레학원 놀이, 병원 놀이, 창작동요 대회 놀이, 레고 쌓기, 공주&왕자 놀이….    

  욕심쟁이 언니였던 나는 늘 공주를 차지했고, 너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늘 늠름한 왕자 역할을 맡아주곤 했어. 과자가 생기면 꼭 나와 나눠 먹던 너. 그런가 하면 내가 언니 노릇하겠다고 밥 먹여주고, 똥 닦아주던 일도 있었지.    

  넌 인형이 망가지면 마음 아파하면서 끝내 버리지 못 하는 아이였어. 엄마가 집안 어수선하다고 버리려고 하면 끌어안고 있다가 찾지 못할 곳에 숨겨 놓던 너. 유치원에서 넌 인기가 많아서 선물을 자주 받아 오는 편이었지. 큰 건 아니라도 그 시절의 우리에겐 매우 소중한 것들 말이야.  

 

"저기… 저기… 귀… 귀신 있다!"    


  내가 능청을 떨며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벽을 가리키면 너는 진짜인 줄 알고 내 품 속으로 고개를 파묻곤 했지. 그게 뭐 그리 재밌었을까?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난 꽤나 짓궂은 아이였나봐. 그러다 네가 더 이상 내 장난에 속아 넘어가지 않는 날이 왔는데, 그 때 좀 서운하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네가 훌쩍 커버린 것 같아서.     

  그런데 이제는 정말 네가 다 컸나 보구나. 공부도 하기 싫고 꿈도 없다며 눈물을 글썽이던 네가, 먼저 네 길을 찾아 떠나게 되었네. 그 길을 계속 걸을지 길 위에서 다른 길을 찾을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넌 성장하겠지. 어쩌면 삶은 길 찾기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영원한 미로가 아닐까. 


  먹고 사는 일에 바빠 언제부턴가 외식도 여행도 하지 않던 우리 가족이 잠시 일상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네 공이야. 네 덕분에 가족끼리 영화도 보고, 가족티도 맞추어 입고, 상머리에 둘러앉아 맥주도 마시고 와인도 마시고. 엄마, 아빠가 좋아하시는 걸 보니, 나도 참 좋은데 마음이 좀 조급해 져. 나도 너무 늦기 전에 그런 자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할 텐데 말이야.    


  숙소로 가던 길에 아빠가 맛있는 걸 사준다고 해도 자장면이면 된다고 했다지? 아니다, 짜장면! 그래, 네가 좋아하는 짜장면. 뒤집어 놓은 U자 모양의 입이 돋보이는 사진을 입수했지만 나만 볼게.    

  지난봄에, 네가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써 주었던 생일 카드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글이 네게 깨알 웃음을 선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 힘들겠지만 너무 슬퍼하지 말고 힘내 힘! 나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을게. 

우리 씩씩이 파이팅!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규모 에세이 ; 내가 버린 것 by 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