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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쑥뽕삼 Sep 11. 2015

소규모 에세이 ; 내가 버린 것 by 뽕

3인 3색, 같은 소재 달리 보기


두 번째 소재


내가 버린 것


글, 사진 / 뽕





  Y는 필요에 의해 가지고 다녀야 하는 물건을 사주는 걸 좋아했다. 내가 고마워하면 물건을 쓰면서 자신을 생각할 테니, 스스로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선물보다도 그 선물 안에 담은 마음을 참 좋아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얼마나 나를 좋아하는지. 


  3년이 지난 지금 Y는 더 이상 내 곁에 없지만 그가 선물한 것들은 대부분 남아 있다. 제 기능을 못 하게 된 휴대전화와 우산을 제외하고는 내 시간의 일부를 공유하거나 서랍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Y와 헤어지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그가 선물한 휴대전화가 고장 났다. 갑자기 휴대전화가 과열되더니, 전원이 완전히 나가 버렸다. 서비스 센터에 가서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는데 새로 장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칠 수는 있지만 한번 문제가 있었던 기계는 또 다시 고장 날 확률이 높고, 기기 안에 저장되어 있던 자료는 살릴 수 없다고 했다. 휴대전화 안에는 연락처, 틈틈이 해두었던 메모, 추억이 담긴 사진이 들어 있었다. 이 모든 걸 잃는다고 생각하니 울적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고장 난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Y를 생각했다. 뜨겁게 사랑한 날들을 지나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없는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Y와 나. 고장 나 버린 휴대전화가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 버린 우리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우산이 망가진 건 새로운 직장에 면접을 본 뒤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하늘이 어두웠고, 비가 왔고 바람까지 부는 날이었다. 매서운 바람 때문에 우산살이 곡선으로 휘어졌고, 우산은 원상태로 복구가 되지 않았다. 


   ‘너마저 망가져 버리는 구나…….’

  

  웬만해서는 망가지는 일이 없는 장우산이었는데도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휘어져 버린 우산을 보며 사람의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영역 안에 있는 듯 했다. 


  이별의 아픔에 잠 못 들고, 몸부림 칠 때 마음을 통째로 들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이 간절했다. 상처 받은 마음을 들어내고 새로운 마음을 들어앉히고 싶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지난 연애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건을 버리듯 마음을 버릴 수 있다면, 헌 마음을 버리고 새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무수한 사랑 이야기와 노래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세상이 될까? 그러니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쑥뽕삼의 <같은 시선, 다른 생각>은 

서른을 맞이한 동갑내기 친구 3인의

같은 소재, 다르게 보기 활동을 사진, 그림, 글로 표현한 공동작품모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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