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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Nov 12. 2016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가

[일곱 번째 책] 김영란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법은 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법의 원리를 형식적으로만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근대법의 토대인 국민주권, 기본권 보호의 원리는 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김영란,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p294-


우리에게 법은 때로는 일도양단으로 받아들여진다. 합헌 아니면 위헌, 유죄 아니면 무죄. 이런 식으로 비교적 단순하게 법의 판결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라는 국가 제도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민·형사상 판결의 진짜 의미는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할 정도는 아니다’이지, 그것이 전혀 문제가 없음 또는 그것이 전적으로 옳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로 법의 판결을 두고 문제의 종식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김영란의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의미 있는 책이다. 논의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의 판결 앞에서 멈춰버린 논쟁들을 다시 진행시키는 동력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인 김영란 교수는 현재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 사법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불릴 만큼 사회적 약자와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온 법관이라고 평가받는다. 또한 작년부터 올해 9월에 시행되기까지 말이 많았던 ‘김영란법’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는 저자가 대법관으로 있었던 시절에 다뤘던 사건들로, 이 사건들은 한국 사회를 움직였다고 평가되는 것들이다.   


존엄하게 죽을 권리 vs 생명을 보호할 의무

주식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종교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는가

교육의 공공성 vs 사립학교의 자율성

성소수자의 기본권 vs 사회 통념의 한계

변화하는 전통과 장남의 권한

환경의 가치 vs 대규모 국책사업의 가치

출퇴근, 업무의 연장인가 아닌가

퇴직금은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가       


각각의 주제들은 다른 모습으로 현재까지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2018년부터 시행이 예고된 웰다잉법이나 샤를리 에브도에서 터져나온 종교와 관련한 표현의 자유 문제, 2015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헌 합헌 판결, 임금피크제와 국민연금 등이 얽힌 정년 문제까지 말이다.


책은 과거의 판결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 논의에 참가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핵심 쟁점을 이해하려면 한 번은 읽어봐야 할 책으로 적극 추천한다.       


특히 이 책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용어의 '정의'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부터 해서 논의의 진행, 발전 방향을 자세하게 설명한다는 점에서 가독성이 뛰어난 책이다.


예를 들어 '지속가능한 개발'에서 개발은 기본적으로 고갈이라는 한계를 기본 전제로 까는 단어인데,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지속 가능한 개발의 원칙’을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할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하는 개발로 깨끗하게 정의함으로써 논의의 탄탄한 기반을 마련한다.




생각해보기 <헌번재판소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가.>


헌법재판소에서 다룬 이러한 쟁점들은 하나같이 민주주의적 가치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들이다.



위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사회 전체 방향에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사회, 행정, 인권 등의 주요 이슈가 헌법적 결정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헌법재판소는 과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가.


조금은 추상적이고 광범위한 표현으로 법전에만 갇혀 있는 헌법을 일상으로 끌어내서 판결을 내린다는 점, 법의 적용을 넘어서 법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해석을 다툰다는 점, 그리고 절차적으로 마지막 법의 판단을 헌법재판소에 맡긴다는 점에서 봤을 때 헌법재판소는 겉으로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민의의 반영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제도이므로, 헌법재판소가 이것의 왜곡이나 유린 등을 판단해야 할 때에는 민의의 수렴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법관들은 국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해서 권한을 위임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서 내부적으로 헌재를 지탱하는 시스템들 하나하나가 대체적으로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가 민주적인가를 판단할 때, 사람으로 대표되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우리나라 최고의 사법, 헌법 전문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들이 국민에 의해 선출되어 민의를 따르는 직이 아님을 생각했을 때, 헌법재판소에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를 담당할 사람들이 없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최종 판결 정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행정, 입법의 해석은 다룰 수 있고, 이 다름을 다투고 논쟁함으로써 헌법적 해석보다 더 진전된 논의,대안을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이다.



그러나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확정적이고, 최종적인 판결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의 논쟁을 중단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헌법재판소가 자의든 타의든 이런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봤을 때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자격이 불충분하다.


오히려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민주주의의 왜곡과 파괴를 두고보지 않는 국민들 수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지금 그 마지막 보루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나섰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식과 이해의 욕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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