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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Sep 22. 2016

#1. 내가 말하는 나

1992년, 기록의 시작

나는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1992년 9월에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3년, 1년 전에 큰 언니와 둘째 언니가 태어났고 내가 태어나고 4년 후에 막내 동생이 태어났다. 어머니 아버지가 결혼한 지 8년 뒤, 지금으로 보면 대가족인 대열이 갖춰졌다.


어머니는 내가 어려서부터 신부전증을 앓고 계신다. 지금은 이식 수술을 받아셨지만, 그 전에는 투석을 받으시면서 힘들게 생활하셨다.


어머니 투석실에 가서 옆에 앉은 아저씨가 한 '신장이 아픈 사람들은 자다가도 그냥 죽기도 한다'는 말은 어린 시절 나를 움직이게 했던 명언 아닌 명언이다. 그때 처음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상실감, 두려움의 감정을 느껴보았다.


다행스럽게 이식수술을 받으면서 이 감정들의 끝을 나는 느끼지는 않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이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어머니는 아프시고, 아버지는 생계활동에 바빠 밖에서 생활하시고, 큰 언니는 운동선수 생활로 기숙사에서 살았다. 생활력, 집안일, 독립심을 빨리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형제 많은 집에서 가운데, 셋째로 자라나면서 그 당시 나로서는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집안일은 내가 했는데 큰 언니가 대표로 수고했다는 어른들의 토닥임을 받는 일, 나는 교복을 물려 입었는데 막내는 새 교복을 사준 일, 큰 언니 학부모 수업 참관에 가보고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내 수업 참관일에는 안 오신 일 등등 내딴에는 불평등과 차별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불평등과 차별, 편애 등에 조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그리고 진정한 평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를 내리지는 못했지만 끊임없이 탐구하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이러한 기질이 일견 타당하다고 말해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실제 외국의 한 연구 결과로는 형제들 사이에서 불평등과 차별을 비교적 많이 겪는 가운데 자녀, 그러니까 둘째와 셋째들이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불평등과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리더의 자리에 오른 사례가 많다고 한다. 마틴 루터 킹과 아브라함 링컨이 대표적이다.  


베이비부머의 자녀 세대로 수능을 친 이래 가장 많은 학생이 응시했던 2011학년도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중위권 대학에 진학했고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전공보다는 ‘토론’의 매력에 빠져 토론 동아리 활동에 더 열중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고, 진지하게 대화하는 것을 태생적으로 좋아함을 대학에 와서 깨달았다. 그동안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 또는 받아들이지 않는 고등학교, 중학교 생활에 억눌려 나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자유로운 학문 탐구를 허락하는 대학교에서 터져나왔다고 본다. 대학이 진리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잃었다는 비판이 많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 대학은 진리의 장으로서 의미있고 지금도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곳이다.


동아리에서 찬반을 나누어 토론하고, 때로는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공모전에 많이 참가했었다.


그러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스스로 잘 모르면서 그것을 아는 척, 이해하는 척 해왔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이게 말 좀 하는 사람의 '허영'임을 조금씩 깨달아갔다. 그 이후로  나는 '일단은 알아보고, 공부해보자’는 생활신조를 갖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 국책연구기관에서 청년인턴을 8개월 정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언론사 기자를 준비하며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가끔 <오마이뉴스>에 책 서평을 쓰고 있기도 하고 언론사 필기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논술 연습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그런데 시험에 통과하기 위한 논술을 쓰면서 생각의 복잡함을 표현하는 능력보다 평가자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무난하고 딱 떨어지는 글쓰기 능력만 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평가라는 중압감, 막막함,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나는 대략 이런 삶을 살아왔다. 토론을 좋아하고, 언론사 준비를 위해 사회 이슈 전반에 관심를 갖고 있으며, 가정의 영향으로 차별과 평등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통계로 잡혀 소위 '해결해야 할' 청년백수이고,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써보려고 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앞으로 내가 쓰는 한국현대사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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