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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Jan 06. 2019

글 쓰는 걸 좋아하세요?

# 책 따위 안 만들어도 되지만 1

*저의 두 번째 책 <책 따위 안 만들어도 되지만>의 1장에 해당되는 저의 이야기를 업로드해 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쓰는 일’은 정말 지긋지긋했다. 왜냐면 나에게 글쓰기란 취미나 자아실현의 수단이 아니라, 매일 해야만 하는 ‘업무’였으니까. 지난 6년간 방송국과 영상제작사에서 ‘작가’로 일해 왔다. 매일같이 내가 쓴 글을 상사 혹은 클라이언트에게 검사받고, 요구에 맞춰 수정하는 일이 작가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직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을 선택한 후 오히려 글을 쓰는 게 힘들어졌다.   

회사원으로서 '작가의 일'의 순서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작가와 PD, 팀장이 회의를 통해 영상의 주제를 잡는다.→작가가 영상 시나리오의 초안을 작성한다.→초안을 작가 팀장에게 검사받는다.→ 의견을 반영해 수정한다.→ 1차 시나리오를 PD와 확인한다. → PD의 의견을 듣고 다시 수정한다.→완성된 시나리오를 클라이언트에게 보낸다.→클라이언트(담당자)의 의견을 듣고 시나리오를 수정한다.→ 수정된 시나리오가 클라이언트 (컨펌자)에게 전달된다.→ 클라이언트 (컨펌자)의 의견을 듣고 수정해서 최종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보통 하나의 프로젝트마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단계마다 수정 작업은 더 추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나리오 파일명은 1차에서 시작해 어느새 가뿐하게 10차를 넘기는 게 다반사였다.(하…눈물)  

이렇게 내가 쓴 글을 수십 번씩 고쳐가며 다른 사람들 입맛에 맞춰 쓰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급기야는 쓰지 못하는 병에 걸린 듯 단순한 문장조차 써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쉬지 않고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 나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직업이 작가라니 신기해요, 글 쓰는 걸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주춤했다. “내가 정말 작가가 맞을까? 내 글을 쓰는 것도 아니고, 글 쓰는 걸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가 작아지고 부끄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그냥 ‘일이니까 써왔다’라고 답했다. 작가답지 못한 대답이라고 해도 별수 없었다. 그게 정말 내 솔직한 마음이었으니까.  

결국, 오래 지나지 않아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클라이언트의 아바타처럼 대신 글을 써주는 것도 지겹고,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글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제 글 쓰는 일 따위 하지 않겠어.’ 글에 미련을 1도 두지 않고 나는 쿨 하게 회사와 헤어졌다.  

퇴사 후 몇 주간 남아도는 시간을 맘껏 누리고 있던 평화로운 어느 날이었다. ‘아…심심해. 뭐 재밌는 거 없나?’ 나는 휴대폰을 들어 평소 관심이 있던 동네 책방의 인스타그램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피드를 내려 보다가 평일 낮에 독서 모임을 연다는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오호, 이거 재밌겠다!’ 

그렇게 나는 집과 가까운 부천에 있는 동네 책방인 ‘오키로미터’에 처음 가보게 됐다. 글이라면 지긋지긋했는데도 마음에 여유와 시간이 생기니, 자연스레 다시 찾게 되는 건 이상하게도 책과 서점이었다. 
더위가 절정에 오른 8월 초. 부천역에 내려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을 지나쳐 걸어가니, ‘5km’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어느새 땀범벅이 된 나는 가파른 계단을 오르며 모임이 진행되는 3층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먼저 와 있던 모임 멤버분들과 직원분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책방에서 하는 모임에 참여한 게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평일 낮 햇살이 밝게 비추는 공간에서 둘러앉아 책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는 참 편안했다. 오랜만에 느껴본 여유였다.  

독서 모임 멤버분들과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각자가 가져온 책을 소개했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을 가져와서 읽는 시간이라, 나는 평소에 애정 해오던 김하나 작가님의 책 《힘 빼기의 기술》을 가져갔다. 다른 분들은 《파생의 읽기》, 《맥주도감》을 가져와 읽었다. (아무래도 모임의 첫날이라 누가 어떤 책을 가져왔는지가 또렷이 기억난다.)  

모임이 끝나고 매대에 진열된 책들을 구경하는데 모임을 진행했던 오직원이 내게 말을 걸었다.  

“독립출판물 좋아하세요?”  

사실 당시엔 독립출판물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엔 애매했으나, 이제 막 관심을 가지게 된 상태라 그렇다고 대답했다. 오직원은 친절하게 내 앞에 놓여있던 책 《파생의 읽기》를 가리키며 이 책을 읽어봤냐며, 이 책은 20대부터 30대까지 전부 공감하면서 읽을 만한 책이라며 나에게 추천해주었다. 마침 독립출판물도 읽어볼까 하던 참이었기에 고민하지 않고 책을 사 갔다. 책은 기대 이상으로 정말 재미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놀랐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음 독서 모임에 이 책을 가져가 재미있고 인상적인 부분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사실 이전까진 독립출판물에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보통의 책 보다 얇은 책들이 많기도 하고, 책 읽는 시간이 부족했던 터라 읽었을 때 만족감이 더 클 것 같은 기성 출판물을 안전하게 선택해왔다. 하지만 독립출판물을 읽어보니 그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걸 조금씩 알게 됐다.  

우선, 기성 출판물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주제들이 많았다. 처음 독립출판물을 접했을 땐 ‘이런 내용도 책이 될 수 있나?’ 낯설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던 느낌이, 독립출판물을 읽어가면서 ‘오호, 이런 주제의 책도 나왔네?’로 바뀌며 점차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개인이 직접 만들어 낸 책’이라는 물성 자체가 주는 신선함도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책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라니! 그 자체로 멋지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책이 자연스럽게 더 궁금해졌다. 그렇게 나는 매주 목요일마다 책방에서 책 읽는 시간을 가지면서 독립출판물의 애독자이자 동네책방의 단골손님이 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책방에서 ‘오직원 원정대’ 라는 새로운 모임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각자 책을 만들기 위한 글을 쓰고, 서로의 원고를 피드백하는 모임! 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 속에서 나도 한번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피어올랐다. 오직원과 같이 글을 쓴다니, 모임 이름만큼이나 왠지 든든하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회사 안에서 주어진 것들만 만들다 보니 ‘나 혼자의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멋진 창작물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동경해왔고 부러워했다. 나도 언젠가는 내 것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이 생기다가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이 고개를 들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일로서 주어진 것도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내 것을 만들겠다니. 과한 욕심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하던 일에서 벗어나니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나의 몹쓸 창작 욕망이 다시 깨어났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써본 적은 없으니까. 나도 나만의 멋진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그래 결심했어. 까짓것 한번 시작해 보자! 나는 오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하고 싶습니다! 글쓰기 모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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