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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진 Jan 06. 2019

글쓰기 원정대의 서막 2

# 책 따위 안 만들어도 되지만 3

*저의 두 번째 책 <책 따위 안 만들어도 되지만>의 1장에 해당되는 저의 이야기를 업로드해 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혼자 원고를 조금씩 써 내려가던 시기. 6주안에 책을 만드는 수업의 수강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름하여 ‘추워도 독립출판’. 게다가 인천콘텐츠코리아랩에서 진행되는 강의라 무료라고. 오호라! 이 과정을 열심히 따라가다 보면 책을 완성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수강하기 위해서는 통과해야 하는 전화면접도 있었다. 집에서 다니기 멀진 않은지?(집이랑 버스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만들려고 하는 책은 어떤 장르인지?(장르를 뭐라고 해야 할지 살짝 고민했지만, 에세이라고 말했다.) 묻는 간단한 전화 면접이 끝나고 운이 좋게도 합격해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첫 시간에 알게 되었는데 나름 4: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 된 거라고 해서 너무 놀랐다. 이렇게 책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니…그게 제일 신기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저녁 6시 반부터 10시까지. 첫 시간에는 각자 어떤 책을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한명씩 각자가 만들고 싶은 책에 대해 발표했는데, 다들 만들고 싶은 책이 분명했다. 강의를 맡은 북극서점 사장님은 “여기 계신 분들은 이미 작가님이신 것 같다”고 하시며 진심으로 우리를 한 명의 (예비)작가로 존중해주셨다. 


수업이 이뤄지는 6주의 절반은 각자의 기획과 원고를 발표하고 서로 피드백을 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남은 3주간은 실제 내가 만들 책을 디자인하고 인쇄해서 완성하는 일정이었다. 기획과 원고의 피드백은 ‘오직원 원정대’ 모임에서 한번 경험해 봤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나는 지금껏 디자인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고, 미적 감각도 보통 사람들보다 현저히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서 책을 스스로 디자인해야 하는 게 막막하기도 하고 자신도 없었다. 


‘그래, 그럼 깔끔하게 가자. 흰색을 기본으로 해서 블루로 포인트를 주는 거야.’ 그렇게 해서 흰 바탕에 파란색 글자를 삽입 해서 표지를 만들어갔다. 사장님은 수강생의 표지를 하나씩 스크린에 띄워놓고 피드백을 해주셨는데, 내가 작업한 표지가 화면에 크게 보이자 강의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음…이건 디자인이라고 할 수 없어요. 다시 작업해야 할 것 

같네요.” 


‘아…어떻게 해야 하지? 나 같이 감각 없는 사람이 책을 

만드는 건 무리였나 봐.’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다른 수강생들도 책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나 말고 다른 수강생들의 표지는 하나 같이 첫 작업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분들은 만족하지 못했을지라도 내 눈에는 너무 잘 만든 표지였다. 


다른 수강생들의 잘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이렇게 감각 없는 내가 무슨 책을 만들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책을 만들고 싶어 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건 피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은 따로 내 옆으로 오셔서 “글씨만 크게 강조해서 써보는 게 어떠냐, 다른 색으로 바꿔보자”는 의견을 주셨지만 내 손과 머리는 이미 움직이기를 멈춘 상태였다. 이리저리 커서를 옮겨 글씨체를 바꾸고 색도 바꿔봤지만, 도무지 어울리는 게 나오지 않았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는 날짜는 정해져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욕심을 줄이는 것뿐이었다. 6주안에 첫 책을 멋지게 완성하겠다는 과한 욕심은 버리기로 했다. 대신 그 기간 안에 첫 책의 가제본을 만들어 보는 걸 목표로 삼았다. 


원고, 디자인과 씨름하는 사이 어느새 벌써 종강일이 다가왔다. 험난한 인디자인의 과정을 넘어 책 만들기의 최종 관문인 인쇄 의뢰까지, 나는 정말 겨우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인쇄소에 의뢰를 맡기기 직전까지 파일을 붙잡고 마지막까지 이리저리 바꿔보며 수정해준 북극서점 사장님 덕분에 내 첫 번째 가제본 표지가 완성되었다.


의뢰하고 난 다음 날이면 바로 책이 만들어지다니! 왠지 모르게 긴장되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강의실에서 내 첫 결과물을 기다렸다. 곧이어 사장님이 우리들의 책을 산타처럼 한 아름 들고 들어오셨다. 사장님은 한 명씩 수강생들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우리는 마치 초등학교 때 상을 받았을 때처럼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책을 받았다. 다 같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 순간은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내 책이 아직 완벽하게 완성된 것도 아니고 누가 인정해 준 것도 아니었지만, 마냥 신이 났다.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상으로 내 책을 선물로 받는 느낌이들었다.


테이블에 모두의 책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우와, 이건 어떻게 만들었어요?”라고 물으며 서로의 책을 궁금해했다. 그림책, 만화책, 사진집, 에세이집 등등 책의 종류도 참 다양했다. 종이는 뭘 썼는지 만져보고, 조심스럽게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각자가 만들어 낸 그림과 글에 감탄했다. 우리는 서로의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작지만 분명한 성취감, 이렇게 뭔가를 만들어보고,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실 처음의 기대와는 다르게, 콘텐츠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6주안에 책을 완벽하게 완성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써 놓은 글을 책이라는 결과물로 만들어보니, 부족하더라도 뭔가를 만들어 냈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었다. 비록 그 결과물의 완성도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고 해도 말이다. 


수업이 종강한 후, 북극서점 사장님의 제안으로 우리의 첫 결과물을 북극홀에 전시하게 되었다. 3일간의 전시가 끝나는 날, 동그랗게 둘러앉아 우리는 그동안의 작업에 대한 소감을 나눴다. 그 자리에서 나는 책을 만들어보니 독립출판물에 더 애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책 한 권을 만들어 보니 작가가 그 책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알게 되었다고. 각자가 그렇게 소중하게 꺼내 놓은 이야기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싶어졌다고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사장님은 내게 이야기했다. 

“이 책 작업 완성하실 거죠? 저도 은진 님의 책이 꼭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추운 겨울, 아늑한 공간에서 나누었던 우리의 이야기들은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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