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학생이 된 기분

by 리틀 골드문트

경기도인의 대감집 머슴살이

나는 10년 차 직장인이었다. 작은 회사에서 열정페이와 최저시급에서 시작해 대기업의 고액 연봉자가 되기까지 그야말로 경주마처럼 달렸다. 하지만 타고난 체력도 타고난 회사 체질도 아니었던 나는, 회사에 최적화되어 보이는 페르소나를 쓰고 달리는 경주마였다. 가면을 쓰고 달리는 경주마가 성할 리가 없었다. 언젠가부터 조금씩 탈이 났지만, '지금 그만두면 더 벌 기회를 놓칠 거야', '좀만 더 버티면 더 좋은 조건으로 옮길 수 있어'라며 자신을 채근하다 보니 마음의 병이 생겼다. 가족과 친구가 보기에 아마 나는 이제 안전하게 자리를 잡은, 이렇게만 살면 별문제가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없이 목표를 향해 달리던 때가 차라리 나았다. 일정의 목표에 다다랐을 때의 삶에는 즐거움도 행복도 없었다. 내 마음은 병들어간 지 오래였다. 털어놓기에는 그동안 알리지 못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실은 내가 좀 힘들었어.'라는 걸 말하기 위해 수많은 설명을 해야 하는 것은 고문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매일 오전 6시 ~ 6시 30분에 일어날 때면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쾌와 증오가 시작됐다. 전날 밤 쉬이 잠들지 못하고 정처 없이 SNS를 좇던 나 자신을 책망하며 억지로 샤워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에 내 몸을 맡길 때에는 반사적으로 욕이 튀어나왔다. 욕해야지 하고 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있을 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욕이 튀어나왔다. 주로 출근 전 샤워할 때 그랬다. 갑자기 튀어나온 욕에 번번이 흠칫했지만 그렇다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을 그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날에는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내가 망가진 것 같아 참담한 기분마저 들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사람들이 몰리는 급행열차에 나도 몸을 싣고 한 치의 틈도 없는 빽빽한 지하철 안을 견디고 있는데도 다음 정거장에 도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밀려 들어왔다. 뒷사람의 뱃살, 옆사람의 팔꿈치, 앞사람의 엉덩이가 불쾌하게 맞닿아가며 내리는 사람들과 타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불쾌한 시선과 '내릴게요!'라는 외침이 날카롭게 교차했다.


지상과 지하를 모두 달리는 경의·중앙선은 바깥의 열을 품고 있어 기본적으로 서울의 지하철보다 온도가 높았고,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사람들 틈에 껴 있노라면 등에서 엉덩이까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어떤 날은 욕설과 고성이 오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이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이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도 더러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볼 틈조차 없이 혼비백산한 날에는 달리할 수 있는 게 없어 음악을 들으며 '산다는 건 뭘까' 상념에 빠져있기도 했다. 그렇게 사무실에 도착하면 내게 남은 에너지는 거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해서 사원증으로 출근 기록을 남기고 근처 카페로 달려가 테이크아웃한 아이스라테를 속에 부어가며 정신을 차리는 수밖에.


그렇게 커피를 손에 쥔 채 사무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쪽 벽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한 단어만을 생각했다. '웃자, 웃자, 웃자.' 이렇게 몇 번을 되뇌어야 적어도 평범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 팀원과 인사를 하고 적당히 실없는 얘기를 건넸다. 주말에 어디를 다녀왔는데 좋았더라, 요즘 SNS에 이런 영상이 자꾸 뜨는데 웃기지 않냐, 어제 간다는 술자리는 어땠고 컨디션은 괜찮은지 등등. 사실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적당히 대화를 섞으며 시간을 메울 뿐. 적당히 사람 냄새나면서 좋은 팀원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최소한의 교류. 그러다 보면 팀장님이 나를 부르고, 이미 몇 번이나 대답했던 질문을 또다시 질문받으면, 때때로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나는 최대한, 마치 처음 질문받은 것처럼 성의 있게 대답했다. 어쨌든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늘 같았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Good Morning!

어학원 등록은 최소 일주일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국내 어학원을 통해 맨해튼 타임스퀘어 부근에 위치한 한 어학원에 2주를 등록했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영어를 배운다니, 생각만 해도 좀 멋진 일이었다.


오래전부터 꿈꿔온 뉴욕과 어학원 생활이었기에, 어학원에 가는 첫날 아침, 씻고 단장하는 내내 설렘과 긴장감이 묘하게 뒤섞였다. 2년 간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학원의 원어민 프리토킹 반에 다니긴 했지만, 그때는 익숙한 환경에서 나와 비슷한 회사원들과 함께하는 소규모 수업이었다.

뉴욕의 어학원에는 전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어떤 친구들을 만나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단순히 영어를 배우는 것을 넘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낼 수 있을지, 또 내가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반응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옷 매무새를 한 번 더 다듬으며,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새로운 하루를 기대했다.


어학원에서 미리 받은 안내 메일을 참고하며 정신없은 맨해튼 거리에서 어렵사리 학원을 찾아냈다. 한국에서는 건물에 간판이 크게 붙어 있고, 회사 건물도 로비에 들어서면 층마다 입주한 회사 이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맨해튼에서는 어느 건물이 어떤 용도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한참을 헤맸다.


어학원에 입학하는 첫날에는 학원에 도착해 행정을 담당하는 선생님에게 학원 시설과 규칙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한 시간가량 듣는다. 이후 레벨테스트 결과에 따라 배정된 반에서 2교시부터 수업에 참여한다. 이날 나처럼 처음 입학하는 사람은 약 스무 명 정도였다. 인종도 출신도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있는 풍경이, 과연 뉴욕에 있는 어학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반에 배정된 다섯 명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교실로 들어갔다. 이미 교실에는 여덟 명의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인도 출신으로 보이는 남자, 한국과 가까운 나라에서 온 듯한 동양인 여성 두 명과 남성, 멕시코인 남성 두 명 그리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유럽인과 흑인이 있었다. 우리는 빈자리에 앉았고 나는 동양인 여성 옆자리에 앉았다. 열세 명의 우리들과 선생님은 각자 소개를 간략하게 시작했다.


내가 있던 반은 30대 이상의 사람들이 있는 반이었다. 처음엔 나이로 먼저 구분한 뒤 레벨에 따라 반을 배정하는 여기 시스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이로 사람을 나누는 것이, 자유가 중요한 이 나라와는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있어 보니 30대 이상 반에 있다는 게 어찌나 좋던지! 보통은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몇 달간 어학연수를 온 대학생이 많은 30대 미만의 반과 달리, 우리는 우리가 번 돈으로 바쁜 시간을 내어 열정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 반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평생 철도 기관사로 일했다는 백발의 프랑스 아저씨는 아들이 뉴욕에서 일하고 있어서 모처럼 휴가를 받아 아들도 만나고 영어도 배울 겸 등록했다고 했다. 검은색 매니큐어를 칠한 화려한 차림의 멕시코 남자는 세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크로아티아에서 온 언니는 직업이 가수라고 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하필 맨해튼에, 많고 많은 어학원 중 이곳에 모였다는 사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수업이 끝나자, 내 오른쪽에 앉아 있던 대만에서 왔다고 소개한 언니가 내게 말을 붙였다.

"나 네가 한국 사람인 거 한눈에 알았어."

"응? 어떻게?"

"한국 여자들 피부 좋잖아. 네 좋은 피부랑 눈매, 화장법 보고 알았지."

"오, 그렇구나."

"저기 앉아 있는 중국 여자애, 한국어도 할 줄 알아. 한국어 쓰고 싶다고 그러더니 네가 와서 좋아하겠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다. 대만 가오슝에서 온 찌아쉬안 언니, 중국 선전에서 온 서윤 언니와 한국 서울에서 온 나 삼인방은 수업이 끝나면 학원 바로 옆에 있는 타코 음식점, '로스 타코스'에서 점심을 먹거나, 브라이언트 파크에서 따뜻한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수다를 떨곤 했다. "뉴욕 사람들은 왜 이렇게 대마를 많이 피워대는 거야?", "한국인과 중국인과 일본인은 외모로 구별하기 쉽지만, 중국인과 대만인은 외모로 구분할 수 있어?"와 같은.


아시아 문화를 공유하는 유교걸 3인방은 때때로 서로의 엄마가 되어주며 잔소리하며 웃곤 했다. 무단횡단이 일상인 맨해튼에서 무단횡단을 하려는 서윤 언니에게 찌아쉬안 언니가 "그래도 교통신호는 지켜야 해."라고 말하면 "네, 엄마"라고 장난스럽게 말했고, 찌아쉬안 언니가 내게 "옷을 좀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고 하면 나 역시 "네, 엄마"라고 답하며 웃었다.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는 뉴욕에서, 사람들 틈으로 깔깔거리며 걷는 이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면서도 동시에 이 순간이 그리웠다. 하교하는 길에 친구와 웃으면서 걷는 것이 열여섯 살 이후 처음이었다.


여자 친구들과 마음껏 웃어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사실, 줄곧 이런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웃으며 보내는 순간이 즐거운 만큼, 문득 회사에서는 이런 유대감을 느끼기 어려웠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여자들 사이의 우정과 연대가 남자들 사이의 그것보다 묽고 느슨하다는 걸 느꼈다.


회사에서 실무자층에서는 여성 비율이 높지만, 중간 관리자 이상으로 올라갈수록 그 비율이 줄어드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그중 하나는 여성들 간의 업무적 협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성들 간의 연대가 늘 아쉬웠다. 서로 돕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함에도, 때때로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워 업무에 영향을 미치거나 불필요한 기싸움이나 갈등이 생기는 모습을 볼 때면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


이런 환경에서, 나는 어떻게 하면 불필요하게 소모되지 않을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과 에너지를 현명하게 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길은, 그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연연하기보다 나만의 공간을 지키며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그것이 최선이라 믿었다. 하지만 가끔은, 여자들과 소소한 일에 깔깔대며 웃고, 때로는 진한 동지애를 느끼며 하루를 채워가고 싶었다.


나는 미리 수업료를 지불한 어학원을 2주 다닌 후, 1주일을 더 연장했다. 학원이 정말 재미있어서였다. 누군가는 "뉴욕까지 가서 학원이라고?"라며 따분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뉴욕에 온 후 매일 아침이 즐거웠다. 샤워할 때 나오던 욕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어학원에 가기 위해 오전 7시에 일어났다. 뉴욕의 호텔 객실은 다른 나라보다 기본으로 설정된 온도가 낮은지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의 추위로 몸이 뻣뻣해진 느낌이었다. 샤워를 한 후에는 속옷이나 양말을 손빨래했다. 기숙사 지하에 세탁실이 있었지만, 세탁기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는 데다가 절약도 할 겸, 웬만하면 한국에서 가지고 온 세탁세제와 접이식 대야로 손빨래를 했다. 그리고 나서 몇 개 없는 옷가지들을 두고 오늘 날씨엔 어떤 옷이 좋을지, 난 어떤 옷을 입고 싶은 기분인 건지 생각해서 착장을 골랐다. 며칠 전만 해도 단정하게 머리를 바짝 묶고 뒷모습까지 거울로 꼼꼼히 체크한 후 출근했었는데, 이곳에서 나는 꼬불꼬불하게 파마한 머리를 대충 스타일링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문을 나섰다.



내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어학원까지는 걸어서 불과 7분 거리. 뉴요커들 사이로 나 역시 바쁘게 걸어갔다. 이른 아침에도 타임스퀘어는 활기찼다. 전문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들고 타임스퀘어의 현란한 전광판 거리를 찍는 관광객들, 그런 관광객에게 맨해튼 투어버스인 빅버스 티켓을 팔려고 호객하는 빨간 유니폼을 입은 흑인들, 그리고 어디론가 바쁘게 출근하는 직장인들 틈에서 나도 바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커다란 빨간 기타가 멋스럽게 붙어있는 'Hard Rock Cafe(하드락 카페)'가 보였다. 그 카페를 끼고돌아 바로 보이는 멋스러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Good Morning!"

미국 영화에서 많이 보았을 법한, 곰 같은 큰 덩치에 인상 좋아 보이는 흑인 빌딩 보안관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면 으레 눈을 찡긋하며 인사를 해줬다. 빌딩 출입 카드를 찍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노라면, 나도 이 건물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면 함께 탄 다른 사람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지만 그건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이 말 그대로 좋은 아침이고 그래서 인사하고 싶으니까!


직장에서는 업무 외에는 말이 없는 편이었던 내가 뉴욕에 와서는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먼저 인사하고 칭찬하고 제안했다. 내가 있는 어학원 반의 담임선생님 조나단과는 농담 코드가 잘 맞아서 복도에서 만나면 시끄럽게 얘기하고 웃었다. 한국에서는 스몰 토크를 어려워했던 내가, 이곳에선 사람들과 능숙하게 스몰토크를 나누고 둥글둥글해져갔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이렇게 기분 좋은 거였구나. 이런 기분이 행복이라고 얘기하나보다. 나는 다시 한국에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