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h-ha moment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대화하다 주제가 취미나 좋아하는 것으로 흐를 때, 나는 종종 "영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열에 여덟은 "오, 영어를 잘하시나 봐요?"라고 되묻는다. 그럼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잘한다기보다는 그냥 좋아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언젠가 잘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잘한다' 동일 선상으로 생각하곤 하는데, 그러면 나는 항변하고 싶어진다. "좋아하는 거와 잘하는 건 아예 다른 겁니다!"라고.
마치 누군가 '운동이 취미예요'라고 했을 때, 듣는 사람은 은연중에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를 기대하고, 말하는 사람은 그런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게 되면 본의 아니게 실망을 주는 입장이 된다. 그럼, 좀 억울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인 것을 강조하고 싶다. 과거의 배경이나 단편적인 기록만 보면 내 영어 실력이 꽤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에서 영어 관련 전공을 복수 전공했으며, 토익시험에서는 980점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1990~2000년대 주입식 영어 교육의 전형적인 산물이었다. 마치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틀에 박힌 시험 영어에는 강했지만 살아 있는 영어 앞에서는 약했다. 고백하건대 대학 시절 철학적 주제로 영어 에세이를 써서 과제로 제출하면서도, 100%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에서는 절반도 이해하지 못해 녹음을 해가며 공부했다. 독학으로 토익시험에서 고득점을 받았지만, 시험이 끝난 순간, 내 머릿속의 영어는 휴지 조각처럼 사라졌다.
그러다 내 인생의 영어 트라우마가 생긴 날이 있었다.
영어 트라우마의 기억
첫 직장에 입사하고 2년쯤 되었을 무렵, 내가 담당하던 고객사의 아시아 총괄자가 한국 지사로 출장을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와 함께 올해의 성과를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되었고, 나는 실무자로서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병아리 사원이었던 나는 미팅 일주일 전부터 틈틈이 영어로 업무 성과를 발표하는 연습을 했다. 더 자연스러운 표현을 찾기 위해 고쳐 쓰고, 반복해서 암기했다.
그리고 미팅 당일. 정장을 차려입고 강남의 고객사 사무실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부터 긴장이 되었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지만, 야근에 치여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왠지 자신이 없었다. 사무실에서 만난 아시아 총괄자는 홍콩지사에서 온 네이티브 스피커였다. 미팅은 대리님의 전반적인 업무 보고로 시작되었다. 대리님의 발표가 끝난 후, 그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준비했던 내용이었기에 대답하려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말문이 막혔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나는 황급히,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요. 미안합니다."라고 사과했다. 그는 살짝 놀라더니, 괜찮다며 말했다.
그다음 무슨 말이 오갔는지, 미팅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 뒤로하고 간신히 표정 관리를 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미팅이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사무실로 복귀하는 택시 안에서 참담함을 느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내뱉을 용기
그날의 기억은 영어를 좋아하는 내게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 후 한동안 영어를 말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지금의 나라면, 아무리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더라도, "갑자기 대답하려니 좀 당황스럽네요"라며 너스레를 떨거나, "잠시 후에 말씀드려도 될까요?"라고 유연하게 대응하겠지만, 당시 나는 경험이 부족한 사원이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걸 떠나서, "잠시 후에 말씀드려도 될까요?"라는 영어가 어려운 표현은 아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문법적으로 완벽한 영어 말하기에 갇혀있었던 것 같다. 그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준비한 대로 말하지 못하면 당황해서 결국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완벽한 문장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는 것' 그게 영어를 좋아하는 나를, 영어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바꿔 생각하면, 한국어가 모국인 나도, 사람들과 대화할 때 완벽한 문법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말하다가 버벅거릴 때도 있고, 문법이 틀리면 다시 말할 때도 있고, 아니면 그냥 얘기할 때도 있다. 그런데 영어 앞에서는 정확하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려는 완벽주의에 스스로 빠져, 완벽하지 않으면 아예 말하지 못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영어를 좋아한다면, 소통 자체로 영어를 즐기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오히려 그날의 사건 이후 나는 한동안 더더욱 완벽한 영어에 집착했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흘러, 이직한 직장에서 나는 점심시간에 원어민 회화 수업을 등록했다. 40분간 하는 프리토킹 수업이었다. 영어에 대한 애정은 늘 있었지만, 그날의 미팅 트라우마가 내 발목을 잡고 있었고 나는 이걸 극복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영어를 쓸 일이 없는 회사 업무로 인해 영어 실력이 떨어지는 게 슬펐다.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나 스스로를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나를 잃어버리는 핑계로 삼고 싶지 않았다. 학원에 가는 것은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이었다.
한 걸음 나아가다
나는 천천히, 꾸준하게 나아갔다.
냉정하게 말해, 하루에 40분 수업을 일주일에 두 번, 많게는 네 번 참석하는 것으로 영어 실력이 폭발적으로 향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피곤한 오전 업무를 끝내고 학원으로 향하는 걸음 자체가, 내가 영어를 계속 붙잡고 있겠다는 다짐이었다. 원어민과 얘기하며 스스로 막힐 땐 ‘더 정진하자’며 마음을 다잡았고 퇴근 후엔 집에서 유튜브 영어 채널의 강의를 보며 공부를 보충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냈을까. 나는 드디어 트라우마를 깰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당시 진행하던 프로젝트의 협력사는 미국 본사를 둔 일본 지사였고, 회의는 대부분 줌 미팅을 통해 영어로 진행되었다. 회의 중에는 일본 지사의 한국인 통역가 겸 기획자가 한국어로 통역해 주었지만, 협력사 직원들이 하는 영어는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 것이 영어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다.
회의 중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던 나는, 업무와 관련된 궁금한 사항을 영어로 질문했고, 담당자와 막힘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가 끝나고 나는 쾌재를 외쳤다! 그 순간, 7년 전 스스로 만들어낸 영어 말하기 트라우마를 완전히 깨부쉈다.
마침, 그날 영어 수업이 있어서, 나는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해방감을 느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학원에 갔다. 그날 원어민 선생님께 나의 트라우마에 관한 일화와 오늘 그 트라우마를 극복한 이야기를 공유했다. 선생님은 함께 기뻐해 주었다.
미국에서 만난 아하 모먼트
하지만,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해서 영어 말하기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국내에서 영어를 하는 것과 미국 현지에서 영어를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다음 날 센트럴파크를 걷다가 배가 고파 근처 핫도그 가판대에서 핫도그를 주문하는데 영어가 잘 안 들려서 당황했고, 치폴레 같은 복잡한 주문이 필요한 식당에서 줄을 설 땐 긴장하는 마음으로 메뉴판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초조하게 내 순서를 기다렸다. 물론 처음이 어려웠지 한두 번 하니 익숙해졌고 영어도 잘 들렸다.
뉴욕 한달살이를 하며 어학원 수업과 일상생활에서 공통으로 느낀 아하 모먼트(Ah-ha moment) 2가지가 있다.
(1) Placing emphasis on the right point
내가 정확하게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때가 있었다. 그 이유는 강세와 장음의 차이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내가 그래피티(graffiti)를 [그래피리]로 정확하게 발음해도 뉴요커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두어 번 다시 말했을 때야 비로소 "아~ 그래피-리!" 하고 이해했는데, 바로 [피]에 강세를 두고 길게 발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은 어학원 수업에서도 한 번 다뤄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뉴욕은 다양한 인종과 이민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완벽한 문법이나 발음을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런데도 소통이 원활한 이유는 강세를 정확하게 주기 때문이다"라며 이 부분을 강조했다.
사실, 토익을 공부해 본 학습자라면 한 번쯤 배우는 중요한 내용이지만, 직접 현지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강세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 특히, 같은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라도 강세 위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에, 이러한 단어들은 반드시 직접 발음을 들어보고 익히는 것이 필요하다.
예시
- photograph [ˈfoʊtəɡræf] → 사진, 사진을 찍다 / 앞 음절(fo)에 강세
- photographer [fə|tɑːɡrəfə(r)] → 사진사 / 중간 음(ˈtɑ)에 강세
이처럼, 어디에 강세를 두느냐에 따라 단어가 완전히 다르게 들릴 수 있다. 뉴욕에서의 경험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한 발음이 아니라 '리듬을 익히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완벽한 문법보다, 흐름이 중요했다. 말하면서 틀리더라도, 주저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2) Let the verbs do the work
11월에 들어서자, 뉴욕의 아침 공기가 부쩍 쌀쌀해지며 일교차가 커졌다. 어학원에 가서 선생님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던 중, 나는 일교차가 크다는 얘기를 하며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The daily temperature range is huge. (일교차가 크네요.)"
그러자 선생님은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지금 네 표현이 틀린 건 아니지만 뭔가 로봇 같고 딱딱해 보여. 영어에서는 동사가 핵심이야. 동사를 잘 활용하면 문장이 훨씬 자연스럽고 생동감 있지."
그러더니 내 표현을 더 자연스럽게 바꿀 표현에 대해 얘기해 보자며 수업을 시작했다. 아래처럼 다양한 표현들이 나왔다.
"The temperature goes up and down all the time."
"The temperature rises and falls like crazy."
"The temperature changes everyday."
동사를 활용하니 문장이 한층 더 캐주얼하고 생동감 있게 들렸다. 선생님은 "동사에 힘을 실어라."라는 말을 자주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오래된 문어체적 언어 습관에서 벗어나, 영어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단순히 문장을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동사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진짜 영어다운 표현을 만드는 길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
AI의 발전으로 영어 공부 방식도 한층 더 다양해졌다. 특정 표현이 자연스러운지 물어보기도 하고, 마치 메신저를 주고받듯 영어로 대화를 연습할 수도 있다.
작은 휴대전화 하나로 동시통역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언어를 공부한다. 문장 속에 담긴 상대방의 의도를 읽고, 문맥을 이해하며, 언어가 품고 있는 문화를 배우는 과정 자체가 내 세계를 넓히는 가치 있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히 내뱉는 연습을 할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진정으오 즐거웠다. 좋아하는 것을 더 깊이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안다. 앞으로도 영어는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걸.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많은 생각을 나눌 것이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는 한, 이 여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