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뉴욕 지하철
뉴욕 지하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
'더럽다.' 그리고 '위험하다.'
뉴욕 지하철이 연말 연초에도 범죄 소식들로 시끄럽다. 지난 12월 22일 일요일 아침, 한 남자가 브루클린 지하철에서 잠들어 있던 여성 승객에게 불을 지르고 불타 죽는 것을 지켜본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1월 1일에는 45세 남성을 선로로 밀어 큰 부상을 입게 한 사건이 있었다.
특히 열차가 진입할 때 승객을 선로로 밀어버리는 범죄를 의미하는 '서브웨이 푸싱(subway pushing)'이 계속 발생하지만, 뉴욕 지하철은 여전히 한국처럼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흉흉한 범죄가 발생하는 뉴욕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선로 앞이 아니라 승강장 벽에 기대어 열차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가장 실용적인 교통수단
뉴욕에서 사람이 많은 혼잡한 시간에 지하철을 이용할 때 우연히 줄 맨 앞, 선로 바로 앞에서 지하철을 기다린 적이 있었는데, 누가 나를 밀진 않을지 불안해했던 기억이 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에 뉴욕 지하철에서는 핸드폰에 몰두하기보다 주변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뉴욕 지하철이 악명 높다 하더라도 24시간 운영으로 접근성이 좋은 데다가 노선이 광범위하고, 거리와 상관없이 1회 요금이 $2.90인 가성비를 감안하면, 뉴욕 지하철만큼 유용한 교통수단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낯선 여행자의 입장에선 지하철에서 뉴요커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지하철 타는 법이 익숙해지면 마치 내가 이 도시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여행이 더욱 생생해진다.
업타운, 다운타운만 알면 끝!
뉴욕 지하철을 탈 때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내가 타야 할 지하철의 방향이다. 이것만 알면 뉴욕 지하철이 쉬워진다. 지하철 방향은 업타운(Uptown)과 다운타운(Downtown) 2가지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내가 맨해튼의 중간에 위치한 타임스퀘어역에 있는데, 북쪽의 할렘역으로 가려면 업타운 방향, 남쪽의 월스트리트역에 가려면 다운타운 방향으로 타야 한다. 구글맵을 통해 타임스퀘어역에서 할렘역과 월스트리트역 가는 방법을 각각 검색하면 업타운, 다운타운 표지판을 따르라는 안내문구를 볼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
뉴욕의 일부 역에서는 입구 자체가 업타운/다운타운으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업타운으로 가야 하는데 다운타운 방향의 역으로 들어갈 경우, 다시 나온 후 업타운 방향의 역으로 가서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나는 이런 이유로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2.90를 추가 결재한 적이 있다. 얼마나 아깝던지!
뉴욕에서 숙소를 잡을 때도 지하철 노선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나는 한때 맨해튼 최남단 월스트리트 부근의 호텔에 머물렀는데, 그 이유는 브루클린에 쉽게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가고자 하는 브루클린의 목적지에 바로 가는 노선이 거의 없어 우회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었다. 뉴욕에서는 단순히 거리가 가까운 것이 아니라, 지하철 노선과 연결성이 좋은 곳에 숙소를 잡는 것이 필수다.
참을 수 없는 뉴욕 지하철의 냄새
뉴욕에서 가장 별로인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냄새다. 각 블록마다 다른 종류의 악취가 풍겼다. 대마 냄새와 오줌 냄새, 쓰레기 냄새,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러서 코가 아플 정도였다. (내가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냄새가 특히 심한 곳이 바로 지하철이었다.
뉴욕의 지하철은 파리의 지하철만큼 악명 높은 탓에 종종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충격적인 모습으로 영상이 올라오곤 한다. 취객 위로 오르내리는 쥐, 온갖 기이한 옷차림으로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등 상상을 뛰어넘는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영상 중 일부는 과장된 것일 수도 있지만, 냄새만큼은 사실이다.
뉴욕 당국도 이런 불명예를 타파하고자 시민의식을 개선하는 데 노력하는 듯하다. 지하철을 타면 ‘본인의 짐은 꼭 본인 자리에만 두기’, ‘뉴욕의 또 다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등의 시민의식 향상을 위한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뉴욕 지하철은 한국의 지하철과 비교하면 유해하고 때로는 위험하다. 선로에는 온갖 쓰레기가 나뒹굴었고 개울처럼 물이 흐르기도 했다. 나는 살아 움직이는 쥐를 보지는 못했지만 죽어있는 쥐는 몇 번 목격했다.
뉴욕에 사는 사람이 말하길, 폭우가 내리면 지하철 안이 종아리까지 물에 잠기고, 온갖 쓰레기와 오물이 뒤섞이기 때문에 레인부츠는 필수라고 한다. 여름에는 악취와 찜통더위가 만나 더 열악해진다고. 그럼에도 뉴욕 지하철은 모든 게 말도 안 되게 비싼 뉴욕물가 중에서 몇 안 되는 가성비 좋은 곳이긴 하다.
그래도 특별한 뉴욕 지하철
뉴욕의 지하철은 그 자체로 새로운 지하세계다. 누구나 자유롭게 연주하고 춤추고 노래한다. 고약한 냄새 속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국적인 고향의 전통노래가 들려오는가 하면, 힙합노래에 맞춰 수준 높은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사람도 있다. 조금이라도 타인과 부딪히면 자동으로 'Sorry'를 말하는 예의가 있고 여행자인 내게 이 방향이 업타운인지 다운타운인지 묻는 현지인의 편견 없는 사고방식도 있다. (가끔 내게 길을 묻는 현지인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내가 여기 사는 것 같은 기분 좋은 착각이 들었고, 한 번은 '너 여행객인 나한테 길 묻는 거 알아?'라고 놀려준 적도 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 지하철 한 칸에 이탈리아인, 미국인, 인도인, 한국인 등 각기 다른 인종과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을 깨닫곤 혼자 재밌어한 기억이 있다. 이 작은 지하철 한 칸이 마치 작은 지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뉴욕 지하철은 불편하고, 때론 위험하고, 악취도 심하다. 하지만 이 도시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불편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한 곳. 뉴욕 지하철은 그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