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생각
3N년의 시간을 살면서 오랜 시간 동안 내게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었다. 바로 교환학생이다. 대학생 때 교환학생 설명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성적 우수생이 되어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돈이 꽤나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 '미국으로 교환학생 가는 건 꿈도 못 꾸겠구나'하고 낙담했었다.
'교환학생의 꿈을 안고 열심히 공부해 성적 우수생이 되어 꿈을 이뤘습니다'라는 멋진 스토리를 만들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주 전공 철학, 복수전공 미국문화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과장을 좀 하자면, 미국문화학을 복수 전공하며 불구덩이에 스스로 뛰어든 학생이나 다름이 없었다.
당시 철학 시험은 보통 빈 페이지에 질문 1~2개가 있었고, 답은 원하는 만큼 기술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B4 크기만 한 용지를 꽉꽉 채워 답안을 제출했다. 답안 분량이 많을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의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철학 사상은 물론이고 그 사상이 나왔던 역시적 흐름과 맥락, 교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논점을 철두철미하게 알고 있어야 했다. 적당한 답변만 끄적이고 제출하다간 C를 받기 십상이었다.
미국문화학은 100% 영어로 진행되었다. 수업엔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원어민 학생들, 해외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한국 대학교로 온 원어민과 다름없는 한국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수업 중 그들과 때때로 토론하고 조별과제를 해야 하기도 했다. 하물며 수업교재는 미국문학이 아닌가! 옛날 말로 어지럽게 쓰인 문학작품을 매주 몇십 페이지씩 읽고 퀴즈를 보기도 했다. 단어의 뜻을 모두 알고 있어도 좀처럼 해석이 안 되는 문장이 많은 어려운 작품을 부여잡고 있노라면 정말이지 울고 싶었다.
난 철학도 미국문화학도 너무나 사랑했지만 멋모르고 저지른 사랑의 대가는 가혹했다. 나의 모국어를 쓸 수 있는 철학 수업의 경우, 동서양 각 철학 사상의 개념이 오래전 한국어로 번역된 번역본을 교재로 쓰곤 했는데, 한국엔 없는 개념이라 번역이 어려운 부분도 있고, 번역 자체도 매끄럽지 않아서 단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수십 번 읽으면서도 그 위대한 철학자의 사상은 내게 다가올 듯 안 올 듯 아스라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 사상을 불현듯 깨닫는 순간 느껴지는 쾌감은 너무나 짜릿한 것이었지만.)
미국문화 수업에는 녹음이 필수였다. 교수님의 명확하고 단정한 영어는 이해했지만 같이 수업을 듣는 학우들의 영어는 절반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느 외국인의 영어 발음은 억양이 세서 도저히 알아듣지 못했고 어느 학우의 유창한 영어는 속도가 너무 빨라 놓치는 게 많았다. 한국식 주입 영어의 산물인 나는 도무지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난 당시 과외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었고 연극회 동아리도 하고 있었다. 과외 수업을 준비하고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오늘 들은 수업을 복습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다. 대학생이 되면 만끽할 수 있다는 핑크빛 연애는커녕, 똑똑하고 잘난 아이들 틈에서 내가 졸업이나 무사히 할 수 있을지, 문송합니다의 장본인으로서 졸업 후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내가 벌려놓은 일이긴 했지만 그때는 하루하루가 답도 없게 느껴졌다.
언젠가는 수업도 시험도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미국문화학 수업의 어느 교수님께 '너무 죄송하지만 힘들어서 못할 것 같다'라는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감사하게도 그 교수님은 내가 퇴학을 하려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전화를 하시곤 열심히 위로해 주셨다.
어쨌든 나는 성적 우수는커녕 B만 돼도 감사할 정도였기에 성적 우수로 교환학생에 가는 건 100%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환학생 설명회가 끝난 늦은 저녁, 나는 교환학생은 꿈도 꿀 수 없겠다는 실망감과 빠듯한 집안 사정에 대한 무력감을 안고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내 분수에 맞지 않으니 그만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환학생을 가지 못했던 일은 그 뒤로도 한동안 후회로 남았다. 시간이 지나 직장생활을 해보니 그때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다면 부모님께 말이라도 해봤으면 또 다른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다못해 마이너스 통장이라도 만들고 나중에 직장생활을 하며 갚아도 되지 않았을까?
절친한 친구들이 부모님 덕분에 프랑스며 미국이며 교환학생을 떠나 해외를 누비고 있는 동안 나 혼자 한국에 남아 고군분투할 때마다, 이후 외국계 회사에 이직하고자 입사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낙방할 때마다, 남자친구의 여동생이 뉴욕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영어실력이 내 맘처럼 늘지 않을 때마다 나는 교환학생 설명회를 들었던 그날을 떠올렸다.
최선을 다해 아등바등했지만 결국 또 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원인을 탓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내가 미련을 갖고 있는 - 가지 않았던 그 길을 다시금 회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회상은 종종 상상의 날개를 달아 '그때 교환학생을 갔으면 나는 지금쯤 행복했을 것이다'라는 현실 부정의 마침표를 찍곤 했다.
문송합니다를 겪고 작은 사무실에서 최저시급도 못 받으며 커리어를 시작했던 내가 열심히 경력을 다져가며 원하는 회사와 환경을 성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때때로 한다는 것은 꽤 괴로운 일이었다. 사실 내가 바란 삶은 이게 아니었다는 걸 내면에서 외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교환학생을 못 간 것이 하나의 동기부여가 되어 지금까지 열심히 살 수 있었던 추진력이 됐을 수 있고, 혹여나 그때 교환학생을 갔는데 적응을 못해서 아까운 돈만 축낸 것으로 마무리가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까짓 교환학생일 뿐이다. 우리 집 형편이 교환학생을 보내줄 만큼 넉넉하진 않았어도 대학교 등록금 걱정 없이 서울에서 대학교를 통학하며 편안하게 살지 않았는가? 학자금 대출 없이 대학을 졸업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마음 한 켠에 떠오를 때마다 나는 냉정하게 그 생각들을 떨쳐내고자 부단히도 애를 썼다. 지나간 과거를 자꾸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나는 이것을 진심으로 한심하다고 생각했기에 주변 친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상담을 받으며 상담 선생님께 이 주제에 대해 꺼냈을 때,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내 삶을 흔들고 있는지 이해하시곤 나를 안타까워하셨다.
"00씨는 참 현실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에요. 본인은 그때 교환학생을 가지 못하고 나서 본인이 원했던 것처럼 미국에서 삶을 개척하지 못했고 그래서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고 했지만, 사람이 갑자기 한순간에,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삶의 방향을 트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무모한 일이에요. 00씨는 그때그때 현실에 맞게 정말 최선을 다 했고 주변의 인정도 받았고 그래서 누구의 도움 없이 여기까지 이루었잖아요. 그게 얼마나 현명한 일이에요?"
한 번씩 죽기 직전의 노년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가장 두려울 게 뭘까 생각한다. 갑자기 죽는 것이 아니라면, 웬만큼 인생을 살았기에 죽음 그 자체에 대한 공포는 크지 않을 것 같다. 다만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다 하고 떠난다'라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그때 더 해볼걸'이라고 후회한다면?
인생의 난제는 결국 '할까 말까'선택의 기로에서 기인한다. 이 대학을 갈까 말까, 이 전공을 할까 말까, 이 직장을 갈까 말까, 결혼을 할까 말까, 이 물건을 살까 말까. 이사를 갈까 말까.
짧은 인생을 살아보니,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처럼 순간의 내 선택이 인생을 가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해서 산 값비싼 물건이 몇 번 쓰지도 않았는데 흥미를 잃게 되는 경우가 있고 내 자유를 다 앗아갈 것만 같았던 결혼이라는 제도가 꽤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짧게나마 스스로에게 교환학생이 되는 순간을 선물하기로 선택했다. 워라밸과 고액연봉이 보장되는 대기업을 그만두는 것이 내 커리어에 영향을 주겠지만 그렇다고 내 경력이 박살 나거나 인생이 망가지지 않을 거란걸 안다.
밥벌이를 지켜야 할 이유는 많다. 한국은 매년 경제위기라 했고 매년 올해가 가장 위험한 경제난이다. 실제로 그게 맞을 수도 있다. 다만 경제지표에 없는 '수명'이라는 게 내게 있고 이 제한된 명줄 안에서 경제 지표처럼 미래를 예측할 수도 없이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이제 나는 어느 위대한 철학자의 위대한 철학 사상보다 경험에 기반한 나만의 개똥철학을 믿고, 추상적인 영어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영어 소통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과거의 아쉬움과 후회는 지금의 내가 해결해주자. 나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