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감각이 깨어난 시간들

by 리틀 골드문트

Inspiration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감'이란 뜻의 이 영어 단어는, 라틴어로 안으로(in) 숨을 넣어준다(spira)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단어를 배운 건 중학생 때였는데, 어린 나이에도 영감이란 생명력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미가 좋았다.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끔 하는 것은 단순히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깨달음을 느끼고 감각을 확장한다는 데 있다는 고고한 정신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나는 뉴욕에서의 시간이 영감으로 넘쳐나기를 바랐다. 내 감각의 날은 요 몇 년간 많이 무뎌져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의 패턴에 갇혀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루의 흐름이, 업무의 방향이, 생각의 구성이 지리한 패턴 속에서 의미 없이 배설되고 있었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멋진 곳이지만, '영감의 부스터샷'을 맞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미술관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뉴욕엔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넘쳐나지 않는가! 나는 매일 저녁, 미지의 도시에서 보물을 찾는 탐험가처럼, 뉴욕의 흥미로운 미술관을 검색하며 내일은 어디로 갈지 즐거운 고민을 하곤 했다.


뉴욕에 사는 지인은, 의외로 내가 방문한 갤러리를 가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내가 간 갤러리에 대해 얘기하면 그런 곳이 있었냐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마치 한강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 정작 한강을 자주 가지 않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뉴요커에게는 갤러리에 방문하는 것이 호사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무뎌진 날을 다시 반짝이게 만들기 위해, 뉴욕의 갤러리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고흐의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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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은 각각 뉴욕 현대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가장 몰리는 장소 중 하나이다. 고흐만큼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으며 소비되는 예술가가 또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었던 '스스로 귀를 잘랐다'는 비극적인 일화, 돈 맥클린(Don McLean)의 노래 '빈센트'에서 'Staryy, starry night"만 들어도 느껴지는 애잔함. 그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비극적인 예술가의 삶이 투영된 입체적인 이야기로 다가간다.


나는 <별이 빛나는 밤>의 밤하늘을 가득 채운 다채로운 푸른빛, 달과 별에서 번져 나오는 따뜻한 노란빛, 그리고 이를 감싸는 소용돌이치는 붓터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소용돌이는 그가 유난히 사랑했던 별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었을까, 아니면 사랑했지만 끝내 닿을 수 없었던 깊은 좌절과 불안이었을까?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간 뒤, 창밖 풍경에 상상력을 더해 완성했다는 이 그림. 괴로움을 껴안은 몰입으로, 찬란한 밤하늘을 그렸을 그의 심정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이러한 그의 과감한 색채가 돋보이는 인상주의적 회화는 처음부터 그의 화풍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어둡고 사실주의를 추구하며 그림을 그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밀집모자를 쓴 자화상>은 벽에 걸려 있는 그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전시장 중앙 즈음에 전시돼 있다. 그 이유는, 캔버스 바로 반대편에 <감자 먹는 사람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배경에 거칠게 묘사된 농민들의 얼굴과 손, 삶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스며든 이 초기 작품은, 몇 년 후 밝은 색채로 자신을 응시한 자화상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관람객은 이 두 그림을 번갈아 보며, 고흐가 시간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대상을 관찰하고자 했는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고흐 옆에는 루소가 있습니다만

모마의 <별이 빛나는 밤> 바로 옆에는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가 걸려 있었다. 모두가 <별이 빛나는 밤>을 사진 찍느라 분주한 사이, 상대적으로 소외된 이 작품이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어느 자리에서건,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소외된 대상을 눈여겨보게 된다. 과거의 경험이 내게 남긴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림에는 달이 뜬 사막에서 악기와 항아리를 곁에 둔 채 잠든 집시 여인과,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는 듯한 사자가 있다. 모름지기 사람을 공격하는 게 맹수의 본능이거늘, 사자의 모습이 마치 주인을 섬기는 충견 같기도 하다. 이 어색한 조합에 고개를 갸웃하게 될 작품이지만, 은은하고 깨끗한 색감으로 표현한 고요한 밤의 분위기 때문인지, 정작 관객의 눈을 쉬이 사로잡지는 못했다. 게다가 바로 옆에는 강렬한 색감과 거친 붓터치로 소용돌이치는 <별이 빛나는 밤>이 자리하고 있다. 비운의 자리를 차지한 이 작품은, 잘나가는 퀸카를 친구로 둔 하이틴 영화 속 비련의 소녀처럼, 당최 눈길이 가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 크기는 고흐의 것보다 2배나 크다. 루소에게 과몰입하다 보니 괜시리 모마의 큐레이션이 너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혹시 나처럼 예술에 문외한이거나, 모마에서 고흐의 작품만 보고 지나친 이들을 위해 앙리 루소에 관해 알아본 정보를 간략하게 언급하고 싶다. 그는 파리 세관원으로 일하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뚝심 있는 인물이었다. 루소는 기존 회화에서 강조하는 원근법을 무시하고, 단순하고 평면적인 화풍을 고수했는데, 이로 인해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다"는 조롱을 받았다. 하지만 이 독특한 화풍은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이후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는 선구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는 자신만의 화풍을 개척했으나, 살아생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후대에 재조명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고흐와 공통점을 갖는다. 공무원으로 일했으니 고흐만큼 궁핍하지는 않았지만, 그림이 잘 팔리지 않아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우울증과 정신적 결핍에 시달렸던 고흐와 달리 꽤 낙천적인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낙천적인 삶을 가능케 한 그의 유한 성격은 <잠자는 집시>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평온하기까지 보이는 이 작품을 조금만 시간을 들여 살펴보면 <별이 빛나는 밤에> 못지않게 고독한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사막 한가운데서, 손에 나무 지팡이를 쥔 채로 이른바 '떡실신'한 집시의 얼굴은 참 지쳐 보인다.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연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항아리를 들고 음식을 구걸하는 나그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옆의 그녀만 한 크기의 사자가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은, 먹잇감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을 연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늘에 진심과 정성이 닿아, 인간을 살려둔 어느 전래동화의 호랑이처럼, 루소는 자신도 언젠가 예술가로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사자에게 담아낸 것은 아닐까.


이상의 별, 희망의 달

고흐와 루소 모두 밤하늘을 소재로 했지만, 밤하늘을 통해 드러낸 그들의 표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고흐가 사랑했던 별은 대게 '영원'을 상징한다. 항상 같은 자리에서 빛나기에 숭고하며 이상적이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내면의 고통을 겪는 고흐에게, 저 하늘 위의 별은 닿고 싶은 구원자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밤하늘은, 달보다는'별'이 빛나는 공간이었고, 영원한 이상을 좇던 그는 짧은 생을 마감하고 그렇게 별이 되었다.


반면, 달은 '변화'를 상징한다. 차오르고 기울며 자신의 모습을 바꾸어간다. 커다란 보름달이 되면 밤하늘을 환하게 비추지만, 초승달이 되면, 별보다도 희미한 빛을 낸다. 별처럼 늘 반짝반짝 빛나지도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지도 않다. 하지만 희미한 달은 다시 차오를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영원한 빛은 아니지만, 다시 떠오를 수 있다는 긍정을 품고 있기도 하다.

루소의 그림 속 집시 여인이 비록 고단해 보일지라도 비극적이지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를 비추는 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바라보는 사자의 눈동자가 달을 닮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별 하나 없는 어두운 밤하늘이지만, 달이 있기에 그 어둠이 두렵지만은 않다.


문 文 Moon

고흐에게 밤하늘은 이상적인 별이 있는 영원과도 같았고, 루소에게 밤하늘은 변화하는 달을 품은 희망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밤하늘은 무엇일까.


내게 밤하늘은 주로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들이었다. 나답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지친 내 마음을 달랬던 시간. 차마 내치지 못하고 바보같이 받아들이고야 만 타인의 시선과 말들을 열심히 닦아내던 시간. 발끝까지 차갑게 저려오는 비수를 떼어내지 못해 때때로 서럽게 울었던 시간. 숱한 결심과 망설임이 교차하던 시간. 그래도 가장 나답게 울고 결심하고 망설이고 사이사이 웃었던 시간.


내 이름 석 자 중 하나인 '문(文)'. 해외에서는 내 이름을 ‘Moon’이라 소개하곤 한다. 나에게 달은 모든 걸 뚜렷하게 드러내게 하는 태양과 다르게, 나를 나답게 만들고 나다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희망이다. 희망은 모양은 늘 달랐다. 갈피를 잡지 못해서 방황하기도 하고 환한 보름달처럼 잔뜩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모양이야 아무렴 어때, 희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달을 보려고 창 밖을 보니 달이 보이지 않는다. 나도 고흐처럼, 내 마음의 달을 간직하련다.



전시 끝에서 만난 것들


MoMA라는 브랜드

재작년 봄이었던가, 옷에 큰 관심이 없는 남편이 해외 직구로 옷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국내 쇼핑몰도 아닌 해외 직배송이라니, 대체 어떤 옷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몇 주 뒤, 마침내 도착한 택배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회색 후디가 들어 있었다. 회색 후디에 가슴에 MoMA 로고가 새겨진, 무척 평범한 옷이었다. "이거 왜 샀어?"라고 묻자, 남편은 자신이 팔로우하는 또래의 인스타그래머가 이 후디를 입은 모습을 보고 멋있어 따라 샀다고 했다. "근데 모마가 뉴욕 현대미술관인 거 알고 산 거야?" "아니, 첨엔 몰랐고 사고 나서 알았지"


그 후 이 곳 모마에서, 남편이 샀던 그 후디를 발견했다. 모마 지하 1층 기념품샵에는 후디뿐만 아니라 모자, 양말, 라글란 티셔츠, 스웻셔츠까지, 다양한 종류의 의류가 형형색색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 옷뿐이랴, 흔히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전시 작품을 활용한 일반적인 굿즈 외에도 각종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그야말로 눈이 돌아갔다.


그중에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에코백이었다. 예쁘긴 참 예쁜데, 천의 두께가 너무나 얇아 물건을 몇 개만 담아도 금방 찢어질 것 같은 실용성 제로의 에코백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실용성을 논하기엔 좀 교양이 떨어지지 않는가! 천 위에 프린팅 된 어느 예술가의 명언은, 이제 막 미술 전시를 흡족하게 마치고 온 사람의 말랑말랑해진 가슴을 그 어느 때보다 깊게 파고들어 감동을 선사함으로써, 절로 지갑을 열게 하는 고난도의 심리적 마술을 부렸다. 그뿐이 아니다. 전 세계 대표 미술관 중 하나가 아니랄까 봐 캔버스 천과 레터링의 색깔 조합이 미쳐버렸다. 다양한 컬러로 전시된 에코백 앞에서 하나하나씩 직접 매 본 내 모습을 상상하며 모두 다 사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눌렀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여름에 포인트로 들면 좋을 두 개를 골랐다.


뉴욕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인류 역사 속 걸작들을 직접 보고자 하는 전 세계의 방문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개관하기도 전에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 있고, 모마에 전시된 인기작품 중 하나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사람들 뒤통수 없이 온전히 사진에 담으려면 오픈런을 해야 할 정도이다. 모마는 2022년~23년 한 해 약 270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전시된 작품만으로도 방문객이 줄을 잇는 뉴욕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누가 세계 최강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랄까 봐 굿즈 사업을 또 기가 막히게 잘하는 모습을 보면 내 나라의 미술관, 박물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의 여운을 간직한다는 것

요 몇 년 사이 한국의 미술관, 박물관에서도 굿즈 사업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22년 자체 브랜드 '뮷즈(뮤지엄+굿즈)'를 론칭한 이후, 우리나라 문화재를 기반한 굿즈의 수준이 한층 정교해지고 세련돼졌음을 실감한다. 홈페이지에서 굿즈들을 구경할 때마다 이른바 '국뽕'이 차오를 정도로 정말 멋져서,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고자 하는 내 결심이, 소장하고 싶은 사사로운 욕구로 마구 흔들린다. 반가사유상 굿즈는 한때 'MZ세들의 아이템'으로 SNS 피드를 장악했고, 나는 몇 달 전부터 석굴암 조명 굿즈를 구매하고 싶었지만 원하는 옵션이 번번이 품절되어 구매하지 못했다.


굿즈는 엔터테인먼트, 패션, 라인선스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소비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요즘 나는 예술 분야에서 굿즈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피부로 경험하고 있고, 이 사업이 발전하는 모습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굿즈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예술품을 가장 근접한 형태로 사사롭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이다. 나는 전시실에서 기억하고 싶은 예술품의 사진을 찍는 편이긴 하지만,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는, 이미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책에서 본 이 예술품의 사진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은 미술관의 조명이나 작품 보호판 등으로 인해 작품의 진정성을 훼손한 모습을 남길뿐이다.


미술관에서 내가 그 작품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동은 이미 책이나 TV에서 봤던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실제로 그 작품을 내 눈으로 보고, 내 감각으로 경험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실재감이다. 작품의 실제 크기, 색채의 깊이, 질감, 붓 터치와 같은 세밀한 디테일을 직접 경험하는 데에서 느끼는 신선한 자극이고 그로 인한 몰입의 즐거움이다. 따라서 그 작품을 다시 사진으로 찍는 것은 내가 경험했던 실재감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고, 이는 결국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의 순간을 잊어버리게 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여, 작품의 실재감, 예상과 달랐던 감각적 경험, 그리고 예술적 감동이 결합된 이 특별한 감동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최선의 행동은, 전시가 끝난 후 그 미술관의 굿즈를 구매하는 것이 된다. 굿즈 자체가 이미 그 장소를 기념하는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과 영감의 일부를 봉인하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나는 에코백과 같이 실생활에서 자주 쓸 수 있는 굿즈를 좋아한다. 실용적인 굿즈는 나의 일상과 어우러져 나만의 개성을 더해주며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특별한 아이템이 된다.


굿즈가 여는 예술의 두 번째 문

미술관 입장에서도 굿즈 판매는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우리나라 미술관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시의 주제가 일부 유명한 거장들로 편향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워드 호퍼, 구스타프 클림트, 파블로 피카소는 꾸준히 전시 주제로 다뤄지는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이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전시 예술의 범위가 한정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많다. 물론, 지속적으로 방문객을 유입해야 하는 미술관의 고충을 생각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스타 거장들을 자주 다룰 수밖에 없는 것도 십분 이해한다. 나는 국립 미술관과 박물관의 예산 운영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일정 수준의 방문자와 수익을 확보해야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국내 예산 정책도 한몫할 것이다.


이때 굿즈는 예술 업계의 한쪽으로 편향될 수 있는 전시 방향과 구조적 문제에 숨통을 트이게 하고, 수익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며, 미술관과 박물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남편이 멋있어서 뜻도 모르고 구매한 모마의 후디처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홈페이지에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를 구매했던 나처럼, 굿즈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꼭 방문해야 하는 '한정된 장소'의 개념에서 벗어나, 방문하지 않아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예술을 자유롭게 경험하게 된다.


어느 예술가의 격려

나는 굿즈를 구경하다 이번엔 스티커 앞에 멈춰 섰다. 알록달록한 컬러를 입은 스티커에는 미국의 전설적인 예술가들의 명언이 쓰여 있었다. 예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어느 풋풋한 청년의 노트북에 붙어있을 것만 같이 귀여운 색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문장은 조용하고 깊은 울림을 주었다. 한국에 돌아간 후, 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을 때, 다시 꺼내어보고 싶은 격려 두 문장을 마음에 품었다.


"I just decided when someone says you can't do something, do more of it."

누군가 내게 안된다고 말하면, 나는 더 많이 해내기로 마음먹었다.

"You are no longer the same after experiencing art."

예술을 경함 후에는, 더 이상 예전의 너로 돌아갈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