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느낌적인 느낌 : MJ 더 뮤지컬

by 리틀 골드문트

유려하지만 절도 있는 동작

박력 있으면서도 섬세한 손짓

리드미컬한 엣지

강렬하지만, 정교한 구성


나는 마이클 잭슨의 무대를 보면 언어의 한계가 느껴진다. 아니다, 설명은 불가능하다. 느낌적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한담. 마이클 잭슨이 나오는 영상을 수십 번 봤는데도, 그의 노래와 춤을 이미 잘 알고 있는데도, 왜 볼 때마다 마이클 잭슨의 무대는 처음 보는 것처럼 소름이 돋을까?


중학교 2학년 때 마이클 잭슨의 영상을 처음 제대로 접했다. 영어 선생님께서 'Thriller' 뮤직비디오를 보여주셨는데, 공동묘지의 음산한 배경과 기괴한 좀비들, 그 모든 것이 생전 본 적 없는 형태의 공포였다. 새로운 세계에 눈뜬 듯, 나는 머리가 쭈뼛했다. 한동안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MP3에 저장해서 듣곤 했다.


나는 <시카고>를 재미있게 보고 나서 뮤지컬을 하나 더 보고 싶었다.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은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모여있는데, 마침 내가 다니던 어학원이 타임스퀘어 근처에 있었다. 나는 어학원을 오가며 브로드웨이 극장에 걸린 뮤지컬 포스터를 살펴 보았지만, 뭔가 끌리는 작품이 없었다. 그러다 뮤지컬 예매 앱, '투데이틱스'에서 상영 중인 브로드웨이 작품을 보던 중 <MJ 더 뮤지컬>을 발견했다. 마이클 잭슨 뮤지컬이라니, 선택에 고민이 필요 없었다.


어학원에서 마이클 잭슨 뮤지컬을 보러 갈 거라고 말하니 같은 반의 프랑스인 아저씨 크리스토프는 며칠 전에 봤다며 강력 추천했다. 수업이 끝난 뒤 공연을 상영하는 사이먼 극장으로 향했다. 학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티켓 부스에서 좌석을 고르면서, <시카고> 때처럼 비싸지 않으면서도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를 선택했다. 2층 두 번째 줄이었다.



며칠 뒤 저녁 7시 공연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공연장은 이미 길게 늘어선 관객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다. 내 모습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자 높은 천장과 웅장한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카고> 공연장의 2배쯤 되어 보이는 규모였다. 자리를 찾아 앉으니 무대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사람들의 들썩이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공연장을 메웠다. 나는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의 이 시간이 좋다. 모두가 같은 설렘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 각자의 욕망이 얽혀 흐르는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이 순간만큼은 우리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MJ 더 뮤지컬>은 2022년 2월 1일 초연된 이후 브로드웨이에서 주목받는 뮤지컬 중 하나이다. 뉴욕뿐만 아니라 런던, 함부르크, 시드니에서도 공연되고 있다. 뮤지컬은 1992년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 World Tour’ 리허설 현장에서 시작된다. 리허설 중인 마이클 잭슨을 인터뷰하기 위해 기자와 카메라맨이 등장하고, 마이클 잭슨은 인터뷰를 하며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 시절부터 시작된 어린 시절과 그 이후의 여정을 회상한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잭슨 파이브 이후 솔로 가수로 성장하며 겪은 외모 콤플렉스와 불안, 자신을 둘러싼 가십으로 인한 고통과 평화에 대한 신념까지, 그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았다.


어린 시절 회상 부분에서는, 완벽한 가수로 만들기 위해 그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던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과 그에게 힘이 돼줬던 엄마의 모습이 묘사된다. 마이클 잭슨과 엄마가 함께 부르는 노래 ‘I'll Be There'를 듣고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내가 뉴욕에 올 수 있도록 나를 이해해 주고 지지해 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 Michael Jackson & The Jacksons - I'll Be There (Live at Motown 25)


마이클 잭슨을 꼭 닮은 뮤지컬 배우는 그의 춤과 더불어 완벽한 연기를 선보였다. 'Beat It', 'Billie Jean'과 같은 마이클 잭슨의 전설적인 곡들이 울려 퍼질 때마다, 객석은 환호와 열기로 들끓었다. 특히 배우가 문워크를 선보이는 순간, 우리는 뜨겁게 열광했다. 그의 세련된 몸짓과 리드미컬한 박자에 집중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까딱이고 어깨가 들썩이고, 발끝이 리듬에 따라 움직였다.


배우는 공연 2부에서 하얀색 티셔츠 위에 파란색 셔츠를 겹쳐 입었는데, 공연이 끝날 때쯤엔 파란색 셔츠가 온통 땀투성이었다. 현란한 퍼포먼스와 합쳐진 배우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보다 더 감동적일 수 없었다.


> Beat It | MJ the Musical (뮤지컬 실황)


춤과 노래를 배울 때마다 나는 내 몸 하나조차 자유롭게 다룰 줄 모르는 인간임을 절감하곤 한다. 겉보기엔 쉬워 보이는 동작도 내가 하면 어딘가 흐느적거리는 모양새가 된다. 흔히 말하는 '느낌'이란 건 수백 번의 반복 끝에야 비로소 완성되는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나는 내 몸의 주인도, 내 정신의 주인도 아닌, 행위의 주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클 잭슨은 무대 위에서 자기 자신의 진정한 주인처럼 보인다. 그의 발걸음 하나, 손짓 하나에는 주저함이 없고, 그가 표현하는 모든 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본능처럼 보인다. 그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수고가 숨겨져 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을 감쪽같이 감추고, 무대 위에서 전지전능한 존재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런 ‘완벽한 주인’의 모습이 사람들의 시기를 불러일으켰던 걸까? 그에겐 유독 가십과 소문이 많았다. 그러나 그조차 결국은 인간이었고, 겨우 50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


공연은 2시간 30분이었지만, 그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공연 끝나고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나는 공연장을 쉬이 떠나지 못하고 이리저리 사진을 찍으며 머물렀다. 공연장을 떠나지 못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공연의 여운을 정리하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그때의 나처럼, 나는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들으며 숙소로 향했다. 그날만큼은 깜깜한 뉴욕 하늘 아래 빛나는 맨해튼 타임스퀘어조차 마이클 잭슨의 음악처럼 화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