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콘, 디아비콘
뉴욕 맨해튼은 시선이 닿는 곳, 발걸음이 머무는 곳마다 흥미로운 자극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인간과 자본이 만들어낸 산물이기도 했다. 기분 좋은 자극에 아드레날린이 치솟았지만,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에너지 속에서 때때로 자연이 주는 쉼이 그리웠다. 한국에서는 보통 주말이면 공원이나 산을 찾곤 했다. 나무와 풀로 둘러싸인 길을 천천히 거닐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 주중에 쌓인 피로가 씻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 당일치기로 다녀올 만한 뉴욕 근교를 찾다가, 뉴욕 허드슨강 옆 작은 마을인 '비콘(Beacon)'과 그곳에 위치한 미술관 '디아비콘(Dia:Beacon)'을 알게 되었다. 이곳은 2003년, 과거의 공장을 개조해 만들어진 현대미술관으로, 설치미술로 유명한 곳이다.
디아비콘은 차로는 약 1시간 30분, 기차로는 약 1시간 5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뉴요커들 사이에서도 주말 당일치기 여행지로 인기가 많다. 평화로운 마을풍경과 미술관 건축의 감각적인 분위기 덕분에 방탄소년단의 RM이 이곳에서 솔로 음반 '인디고'의 라이브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만추의 허드슨강을 따라
뚜벅이 여행자인 나는 당일치기 기차 여행으로 비콘을 찾았다. 맨해튼에서 비콘까지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비콘행 기차표를 구입해 탑승하면 된다. 매표소에서는 왕복 기차표와 함께 디아비콘 입장권도 판매하니, 함께 구매하면 더욱 편리하다.
기차에는 지정 좌석이 없으므로 원하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 나는 어느 블로거의 팁을 따라 왼쪽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곳에 앉으면 비콘에 가는 내내 차창 너머로 길게 펼쳐진 허드슨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역으로 오는 길에 사 둔 라떼 한 잔을 손에 쥔 채, 나는 창밖 플랫폼을 바라보았다. 여행지에서 또 다른 여행을 앞둔 기분이 좋았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는 맨해튼의 빽빽한 빌딩 숲을 벗어나 허드슨강 옆을 달렸다. 늦가을, 채도가 낮은 허드슨강의 풍경은 적막하고도 스산했다. 간간이 작은 역들과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앉은 세 자리로 된 긴 좌석에는 정차역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앉았다가 떠났다. 어떤 남자는 정신없이 샌드위치를 먹었고, 또 다른 남자는 몸을 구부린 채 스마트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처음엔 스몰토크를 해볼까 싶었지만, 흐린 날씨 탓인지 마음이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회색빛 하늘과 잔잔한 강물, 그리고 바짝 마른 단풍마저도 떠나보내는 중인 앙상한 나무들이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외롭게 느껴지는 고독은 아니었기에 싫지만은 않았다. 앞 좌석에서는 대여섯 명의 미국인 중년 여성들이 계 모임이라도 온 듯 떠들썩하게 대화하고 있었다. 아줌마들의 수다를 제외하면, 객실은 고요에 가까웠다. 나는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이 순간을 온전히 담아두기 위해 창밖의 풍경을 눈으로 열심히 붙잡고 있었다.
미국 아줌마들이 점점 더 시끄러워지자, 비콘역에 거의 다다랐음을 눈치챘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여성이 "곧 내릴 준비를 해라"라고 하며, "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야 한다"라고 일행을 이끌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저분들만 따라가면 되겠다!'
곧 기차가 멈추었고, 플랫폼에 발을 내딛자 아주 오랜만에 아무 냄새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공기를 맡을 수 있었다. 대마, 소변, 하수구, 쓰레기 냄새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공기의 냄새. 맨해튼에 고작 몇 주 있었을 뿐인데도 무색무취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낯선 설치미술 앞에서
비콘에 가는 내내 우중충하던 하늘은 거짓말같이 비콘역에 내리자 맑게 갰다. 비콘역에 내린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주차된 차 몇 대, 잔잔한 허드슨강, 그리고 새파란 하늘.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침묵을 느꼈다. 구글 지도를 켜는 것도 귀찮아진 나는 저 멀리 역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따라갔다. 먼발치에서 그들을 따라 십 분쯤 걸었을까, 커다란 'Dia:' 표지판이 나타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나무숲 사이로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디아비콘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면, ‘Dia’라고 적힌 작은 철제 클립을 준다. 어디에 꽂아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가죽 외투 단춧구멍에 끼워보니 딱 맞았다.
이곳은 원래 1920년대 과자 상자를 만들던 공장이었다고 한다. 천장이 높고 공간이 거대한 이유였다. 크기가 큰 설치미술을 전시하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장소가 있을까 싶었다.
미술관 내부는 넓고 하얗고 조용했다.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은 전시실 안내원들의 눈에 띄었다. 대부분 어려 보였는데, 입은 옷차림이, 그날 가죽 재킷에 짙은 회색 옷을 입은 내 차림과 비슷해서 내가 이곳에서 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전시된 작품의 형태는 실로 다양했다. 어떤 공간에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하얀 캔버스 수십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또 다른 공간에는 깊고 어두운 구멍이 블랙홀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폐타이어 조각이 바닥을 가득 메운 작품이 있는가 하면, 깨진 유리 조각들 위에 자갈이 흩뿌려진 작품도 있었다.
설치미술이 아직 낯선 나는, 일단 이곳의 작품들을 온전히 느껴보기로 했다. 각도에 따라 빛과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작품들을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벽에 놓인 설명문을 천천히 읽으며 곱씹기도 했다. 하지만 설명문은 최대한 멀리하려고 했다. 작가의 의도도 중요하겠지만, 작품보다 작가에게 압도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작품을 감상하는 어떤 순간에는 회의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려진 폐타이어 조각과 깨진 유리 조각, 커다란 거울, 흙무더기와 같은 설치물들이 정말 '작품'이라 불릴 수 있는 걸까? 수단의 기능을 잃고 인위적으로 정돈된 형태보다, 기능을 발휘하거나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습이 더 가치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엄마와 딸, 그 모순적인 관계에 대하여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단연 루이스 부르주아의 <웅크리고 있는 거미>였다. 본래도 섬뜩한 곤충이지만, 그것을 100배로 키워놓으니 더욱 기괴하고 소름이 돋았다. 마치 90년대 미국 영화 속 거대 괴물이 눈앞에 나타난 듯한 느낌이랄까. 함께 작품을 감상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징그럽다(creepy)", "기분 나빠(gross)" 같은 말이 들렸다.
전시를 마친 후, 미술관 카페와 연결된 서점에서 우연히 루이스 부르주아의 책을 발견했다. 몇 장을 넘겨보다 보니 그녀의 삶을 조금이나 이해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부르주아는 <웅크리고 있는 거미>뿐만 아니라, 9미터가 넘는 압도적인 크기의 청동 조각 <마망(엄마)>으로도 유명하다. 거미 배에 알을 품고 있는 이 작품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그녀가 예술을 통해 전하려 했던 깊은 내면을 상징한다.
<마망>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부르주아에게 거미는 헌신적이고 지적인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녀는 가족의 불행 속에서도 자식을 지켜냈던 어머니를, 생명을 창조하고 보호하는 존재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길게 뻗은 가느다란 다리는 보호자의 힘이자 연약한 여성으로서의 불안을 내포하고 있다. 견고해 보이지만 언제든 부서질 것만 같은 불안정함. 그것이 그녀가 엄마에게 느낀 양가적인 감정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엄마와 딸의 관계란 본질적으로 모순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나온 딸에게 엄마는 나의 전부이자 닮고 싶은 존재지만, 성장하면서 그와 전혀 다른 삶을 갈망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게서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자신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을 발견할 땐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존경과 무시, 사랑과 증오를 오가면서도 결코 끊을 수 없는 관계. 그래서 문학과 예술에서 ‘엄마와 딸’이라는 주제는 끊임없이 탐구되는 것 아닐까.
부르주아는 자신의 내면을 예술로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작품이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어서가 아닐 것이다. 그녀의 거미 조각 앞에 선 사람들은 누구나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발견하고, 때로는 치유받기도 한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향한 애틋함, 상처, 그리고 사랑. 그 모든 감정이 부르주아의 거미 속에 얽혀 있다.
제발 물건을 만지세요!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벌써 2시간이 흘러 있었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팠다. 미술관을 나오니 하늘에 해가 쨍하고 떠 있었다. 나는 식당들이 모여 있다는 비콘의 메인 스트리트를 걷다가, 반가운 중국 식당에서 볶음면을 먹고 시내를 구경했다. 길을 따라 소품샵, 카페, 도넛 가게, 빵집이 아기자기하게 있었는데, 거리도 깨끗하고 고즈넉한 이 동네의 분위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한 골동품 가게가 눈에 띄었다 들어갔다. 지구본, 접시, 컵, 액세서리, 엽서 등 최소 수십 년의 나이는 먹었을 것 같은 다양한 골동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가게 구석의 책상에서 주인아저씨가 신문을 보며 앉아 계셨다.
평화로운 이 마을에서 맛있는 점심도 먹었겠다, 이곳에 올 때의 어딘지 모르게 축 처진 마음은 탁구공같이 동글동글한 가벼운 형태로 변해 있었다. 흥미롭게 골동품을 구경하다가 진열대에 적혀 있던 ’Please Touch The Merchandise! (제발 물건을 만지세요!)’라는 문구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아저씨에게 그 문구가 너무 재미있다고 말을 걸었다.
아저씨는 내 말에 신문에서 눈을 뗀 채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셨고, 우리는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아저씨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고, 나는 한국에서 왔으며, 맨해튼에서 한달살이하고 있는데 오늘은 디아비콘이 궁금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아저씨는 맨해튼의 한 출판사에서 평생 일하다가 이제 이곳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아저씨도 나도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고, 아저씨는 수첩에 그 책 제목을 적으며 꼭 읽어보겠다고 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와중에 이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소녀가 가게에 들어와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하고, 어떤 전단을 가게에 붙여도 되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익숙한 듯 그러라고 호탕하게 말씀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대학교 연극부 동아리를 활동 시절, 학교 주변 가게를 돌며 사장님들께 연극 전단을 붙여도 되냐고 물어봤던 과거의 내 모습이 아스라이 떠올랐다. 그래, 시간이 많이 흘렀지.
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맨해튼행 기차 시간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못다 한 대화가 아쉬웠지만, 아저씨께 인사드리자 아저씨는 다음에 오면 꼭 다시 들르라며 작별인사를 건넸다.
다시,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맨해튼으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 나는 허드슨강을 보기 위해 오른쪽 자리에 앉았다. 올 때는 회색빛 적막 속에서 쓸쓸하게 흐르던 강이, 돌아가는 길엔 저무는 햇살을 머금고 금빛으로 따뜻하게 일렁였다.
허드슨강을 물들이는 해 질 녘 풍경을 바라보며, 디아비콘에서 만난 자유로운 예술 작품들과 비콘 마을에서 만난 골동품 가게 아저씨, 친절했던 액세서리 가게 사장님과 중국집 사장님을 떠올렸다. 진짜 예술은, 미술관 안에서가 아닌 미술관 밖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 속에, 시내를 거닐며 느꼈던 하늘과 바람 속에, 우연히 마주친 시선 속에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내가 느낀 감정은 지금도 마음 깊은 곳에서 천천히 반짝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