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점에서 선으로 : 집의 서사

by 리틀 골드문트

의식'주'라는 점

예전엔 이해할 수 없었다. 계절마다 가구 배치를 바꾸고, 인테리어 소품을 하나하나 고르며 집을 가꿔나가는 사람들을. 전셋집에까지 큰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하고,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공간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대단해 보여도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사실 나는 줄곧 관심의 방향을 '밖'에 두고 있었던 것 같다. 사회에서의 역할, 타인의 시선, 일과 성취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이후, 주중의 집은 그저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는 '점' 같은 공간에 불과했고, 주말의 집 역시 단지 하루를 조금 더 늦게 시작하고 끝내는 장소일 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집이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이 머무는 '선'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만든 박물관이 있다. 바로 쿠퍼 휴이트 스미스소니언 디자인 박물관(이하 쿠퍼 휴이트)이다.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박물관으로, 약 300년에 걸쳐 21만 점 이상의 다양한 디자인 소장품을 관리하는 곳이다.


원래는 미국의 철강 재벌인 앤드루 카네기가 살았던 고급 맨션이었다. 미국 최초로 철골 구조로 지어진 개인 주택이었으며,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리고 무려 64개의 방이 있었다고 하니,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방이 세 개인 것에 충분히 만족하는 나로서는 그 규모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 맨션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오늘날 박물관이 되었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니 짙은 갈색 원목으로 마감된 벽과 천장, 노란 호박을 닮은 샹들리에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풍스러운 집이란 이런 곳을 말하는 거구나' 하고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촌스럽게 너무 티 나지 않도록 표정을 관리했다. 이 공간과 잘 어우러지게 디자인된 카운터에서 입장권을 구매하며, 내게 표를 건네는 직원이 부러워졌다. 이토록 고요하고 품위 있는 공간에서 일할 수 있다면, 월급이 좀 낮더라도 감사히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시는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었다. 1층은 'Going Home', 2층은 'Seeking Home', 3층은 'Building Home'. 낯선 이 전시를, 주제를 따라 천천히 움직여보기로 했다.




1. Going Home : 방, 그리고 집

'Going Home'이 전시 중인 1층에는 응접실, 거실, 서재, 오락실 등이 각 테마에 따라 전시돼 있었다. 거실이 있는 곳에는 미국 바로톤 가수인 다보운 타인스가 성장했던 버지니아 오를리언에 있는 조부모의 집이 재현돼 있었다. 어느 미국 영화에서 보았던 따뜻하고 포근한, 이상적인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전시 공간에는 할머니의 허밍과 첼로 현의 진동 소리가 들렸다. 집 밖엔 울창한 나무와 싱그러운 풀이 가득하고, 그 사이로 햇살이 내리쬐는 것만 같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버지니아의 어느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타인스에게 이곳의 기억은, 바쁜 예술가의 삶 속에서 그를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집이라는 공간은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깊은 안식을 준다. 돌아보면, 내게 안식을 준 건 엄밀히 집이라기 보단 '내 방'이었다. 엄마, 아빠는 방에만 머무는 딸에게 때때로 거실로 나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자 하셨지만, 나는 내 방이 편하고 좋았다. 내 체취가 밴 푹신한 침대에 누워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쓰며 더 큰 세계를 생각하고 상상하는 시간이 유일한 쉼이자 자유였다. 내 방을 나서면 식탁에, 거실에 밴 고정관념과 맞서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몇 년 전 독립하며 이제 내 방은 사라지고, '집'만이 남았다. 부모님의 집, 독립한 내 집. 방을 떠나버린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걸까?



2. Seeking Home : 담뱃잎의 냄새

2층 'Seeking home'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코를 찌르는 고약한 냄새에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전시실에 서 계시던 백발의 할아버지 직원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실제로 말린 담뱃잎이랍니다."


이 냄새를 맡으며 종일 일하고 계신 할아버지께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당신 모두가 잊지 않게 하기 위해(So That You All Won't forget)' 제목의 이 전시는, 디자이너 커리 제이 해킷이 자신의 가족 농장 근처에서 가져온 말린 담뱃잎으로 만든 방이었다. 그는 이 공간을 통해 미국 남부 시골 버지니아에서 살아가는 흑인으로서 겪은 기억을 표현했다.


담배는 보통 '중독', '해로움' 등 담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함께 미국 역사에서는 '흑인 노동착취'와 얽혀 있는 작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킷에게 담배는 가슴 아픈 역사인 동시에 그의 가족을 살아가게끔 하는 수단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도 매력적인 담배의 향기 뒤에서는 이렇게 고단한 담뱃잎의 냄새가 숨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방을 보며 문득 커피가 생각났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커피 없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커피의 향과 맛에 중독돼 있다. 하지만 그 향기로운 커피콩에는 매일의 생계를 걸고 일하는 커피 농부와 노동자의 절박함이 깃들어있기도 하다. 눈물과 땀으로 생산된 것이, 향기와 매력으로 소비되는 행태에 모순을 느끼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은 채, 다음 전시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올랐다.


3. Building Home : 존재의 선언

요즘 전 세계 곳곳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기상이변으로 인한 화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화재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까맣게 타버린 집들과, 우리의 문화유산 잔해가 남았다.

올해 발생한 대규모 LA 화재 이후 한순간에 집을 잃은 어느 노인의 인터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나는 내 역사를 다 잃었어요. 하지만 다시 일어설 겁니다."

다시 일어선다는 그 말은, 단순히 집을 복구하겠다는 뜻이 아닌, 집과 함께 사라져버린 기억, 잃어버린 소중한 순간, 자신이 있던 자리를 재건하겠다는 존재의 선언처럼 느껴졌다.

이런 맥락에서, '묻힌 집을 되살리다(Exhuming Home)'라는 제목의 전시 공간은, 지워지고 잊혀진 집의 기억을 어떻게 복원할 수 있는가를 논하는 곳이었다. 디자이너 로널드 라엘은 1855년, 멕시코-미국 전쟁에 참여했던 전직 미군이 만든 어도비(흙벽돌) 주택을 보존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 집은 한때 그의 거주지이자, 원주민을 노동자로 관리하던 미국 정부 기관이었다. 라엘은 이 기관이 땅속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그 흙을 다시 파내어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에 원주민의 흔적, 과거의 기록을 새겨넣었다. 흙벽돌에는 유리병과 동물 뼈, 녹슨 포크 등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이 함께 섞여 있다.

원주민을 부리던 사람들의 집은 이제 원주민을 위한 집이 되어 쿠퍼 휴이트에서 이렇게 존재를 외치고 있다. 이 집은 더 이상 과거의 권력을 상징하지 않는다. 과거에 지워진 이름을 위해 다시 일어섰다.



전시를 보던 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글귀가 있어서 사진에 담았다.


Home is where we are allowed to dream.

집은 우리가 꿈꾸는 것이 허락되는 공간이다.


나는 내 집에서 어떻게 나만의 선을 그려갈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집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힘들다. 다만, 내가 알게 된 것은 집이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시간을 통과하며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그려나가는 선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삶이 흐르고, 계절이 바뀌고, 내가 변화할수록 내 집도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며 나를 품어주겠지. 그리고 그 선 끝에서, 나는 결국 나만의 집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