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온 이후로 오랜만에 느지막이 일어난 아침이었다. 숙소를 뉴저지로 바꾸고 나서 매일 맨해튼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야 했다. 직장인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맨해튼 종착역인 포트 오소리티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기에 맛있는 라테가 필요했다. 전부터 가고 싶었던 '퍼센트 아라비카' 미드타운점을 찾아갔다.
한국에서는 '응 커피'로 불리는 이 브랜드는 일본 교토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뻗어나간 글로벌 커피 브랜드다. 서울에도 매장이 있지만, 집에서 멀어 방문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내로라하는 브랜드들이 가득한 맨해튼에서야말로 이 커피를 마시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동안 라떼는 내게 직장인의 에너지를 부스팅 하는 연료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카페를 고르는 기준도 '적당히 맛있고 저렴한' 가성비였다. 아무리 맛있는 라떼라도 긴 회의와 업무에 밀리면 결국 식어빠진 카페인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여기는 유명한 브랜드가 모두 모여 있는 뉴욕 맨해튼이고 이곳에서 나는 라떼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마음적 여유도 충분한 여행자였다. 나는 기꺼이 라떼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카페 문을 열자, 진한 커피 향이 먼저 나를 반겼다. 그런 카페가 있다. 매장 크기는 작아도 첫인상이 따뜻하고 편안한 곳. 여기가 그랬다. 비싼 맨해튼 땅값을 고려하더라도 이 카페는 유독 아담한 편이었다. 중앙에 조리대가 있었고 그 주위로 벽을 따라 긴 의자가 배치돼 있었다. 은은한 노란 조명 아래, 커피 머신이 내는 소리와 조곤조곤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마치 라디오처럼 공간을 따뜻하게 채우고 있었다.
나는 생전 처음 본 메뉴인 '스페니시 라떼'를 주문했다. 가격은 $6.25로 한화로 약 9천 원. 음료를 받은 후 라떼 아트를 본 순간 확신했다. 이건 안 마셔봐도 맛있는 라떼였다.
한 모금 머금자 고소한 풍미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커피가 목을 타고 천천히 내려가 배를 따뜻하게 감쌌다. 한국에 돌아가서 이 카페를 일부러라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로한 채 라떼를 들고 카페를 나섰다. 늘 그렇듯 맨해튼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고, 나 역시 내 목적지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향해 발을 옮겼다.
카페에서 미술관까지는 도보로 43분. 센트럴파크를 따라 걷는 길이었다.
공기가 쌀쌀해진 탓에 트위드 재킷 위로 내가 좋아하는 청록색 머플러를 단단히 둘렀다. 왼손엔 따뜻한 라떼를 쥐고 오른손으론 구글 맵으로 동선을 확인하면서, 거리의 흐름을 따라가되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나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내 시선도 함께 스며들고 있었다. 익숙해진 여행지의 풍경 위로 덧입혀지는 새로운 행선지에 대한 기대감은, 여행자인 동시에 여행자가 아닌 것 같은, 묘한 경계에 서 있는 듯한 기분 좋은 감정이었다.
시끌벅적한 거리를 벗어나 센트럴파크 안으로 들어서니 소음은 잦아들고 고요가 찾아왔다. 햇살은 부드럽게 내려앉았고, 나는 어느새 센트럴파크의 어느 호숫가에 다다랐다. 호수 주변엔 초록색 벤치들이 놓여 있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들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엄마가 있었고, 강아지를 산책시켜주며 돌보는 사람인 '도그 워커'도 보였다.
나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은 채 공원을 둘러보고 있었나 보다. 벤치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가 나를 보더니 따라 웃으셨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과의 관계는 늘 애써야 하는 대상이었고 그 끝엔 대게 피로만이 남았다. 그런데 애쓰지 않고도 따뜻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구나. 혼자 웃으며 두리번대는 내 모습이 할아버지 눈엔 어떻게 비쳤을까?
센트럴파크를 빠져나오자, 익숙한 나선형 구조의 구겐하임 미술관이 시야에 들어왔다. 국내 한 대기업이 이곳에서 파티를 열었다는 소식이나, 영화 속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던 그 유명한 미술관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실 나는 뉴욕에 오기 전부터, 그 어떤 미술관보다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가장 궁금했다. 그래서 구겐하임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은 뉴욕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나는 뉴욕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뉴욕의 명소들을 저렴하게 방문할 수 있는 '뉴욕 시티 패스'를 구매했는데, 방문 가능한 곳 중에는 구겐하임 미술관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방문하기 전날, 미술관 일부가 공사 중이라는 사실 알게 됐다. 공사 중에도 관람은 가능했지만, 먼 길을 온 만큼 온전히 둘러보고 싶었다. 결국, 씨티패스를 이용한 무료 입장을 포기하고, 공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다시 입장권을 구매해 방문한 날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는 '조화와 불협화음: 파리의 오르피즘 1910~1930'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생소한 주제였다.
'오르피즘(Orphism)'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음악가 '오프페우스'에서 유래했다. 1910년대 초에 등장한 입체파(큐비즘)에서 파생된 오르피즘은 당시 프랑스에 혁신을 가져온 교통, 통신 수단, 전기 조명 그리고 그에 따른 도시의 변화를 색깔, 형태, 움직임 등 추상적인 감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나선형 구조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전시된 작품을 감상했다. 하지만 이날따라 유난히 작품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낯선 주제를 이해해보고자 전시 설명을 꼼꼼히 읽고, 몇몇 작품은 검색도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전시 주제를 잘 몰라도 자연스럽게 작품들 속에 스며드는 순간이 있는데, 이 날은 좀처럼 나와 작품과의 관계가 비껴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전시 공간은 생각보다 작품 관람에 방해가 되었다. 완만한 경사였지만, 계속 올라가야 한다는 미묘한 압박감에 작품 앞에서 원하는 만큼 오래도록 머물 수 없었고, 작품을 보는 내 시선과 올라가는 내 발걸음이 따로 노는 기분이었다.
고흐의 <터널이 있는 도로길>이나 파블로 피카소의 <갈렛의 방앗간> 앞에서는 작품을 흥미롭게 감상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미술관에서 느꼈던 깊은 몰입감은 생기지 않았다. 집중하고 싶은데 좀체 몰입되지 않는 답답함에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오르피즘 외에도 미술관에는 다양한 현대미술을 전시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훌륭한 작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좁은 전시 공간 때문이었을까?공간과 작품이 단절돼 보였다.
불편한 것은 전시 뿐만이 아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에 비해 화장실도 많지 않았는데, 심지어 들어간 화장실의 변기 위치가 기둥 바로 앞에 있어 굉장히 난감했다. 몸집이 작은 나조차도 앉기 힘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나는 화장실을 나와서, 전시된 작품들을 빠르게 지나쳐서 가장 높은 층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전부터 사고 싶은 스타일의 옷이 있어서 기회를 벼르다 쇼핑을 하러 나갔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내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지 못한 기분이 그때 느꼈던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채워지지 않은 영감의 자리에 헛헛해하며 나는 삼삼오오 작품을 관람중인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 어느 작품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나는 이 아름다운 건물도, 내 옆에 앉은 어느 커플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경비원이 내게 "곧 마감할 시간입니다"라고 말했다. 내려다보니 사람들이 미술관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는 부랴부랴 내려갔다. 이럴수가, 필수 코스인 기념품샵도 가지 못했잖아!
나는 기념품 샵을 아쉽게 쳐다보며 구겐하임 미술관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미술관에 들어갈때처럼 여전히 날씨는 맑았다. 아까 전만 해도 설레는 마음으로 걸었던 센트럴파크가 더 이상 즐겁지도 않고, 뉴저지에 있는 숙소에 돌아갈 길이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무엇을 보고 나왔을까. 실망했다기보단 허전했다. 물론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고대하던 전시가 별로일 때가 있고, 기대 없이 본 전시가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날도 있다. 어쩌면, 오늘의 감동은 아침메 마셨던 커피와 센트럴파크의 햇살에서 이미 모두 써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래 바라본 대상에게, 우리는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과한 감정을 쏟을 때가 있다. 구겐하임은 내게 그런 존재였나보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아무 기대 없이 방문하고 싶다. 그때는 이 미술관이 어떤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어올지, 다시 한번 들어볼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