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햄버거 티셔츠 우정

by 리틀 골드문트


클래스 메이트, 찌아쉬안 언니

어학원 같은 반이었던 찌아쉬안 언니는 나와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들은 클래스 메이트였다. 한국에 두 번이나 놀러 올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같은 기혼자 입장에서 혼자 뉴욕에 오겠다고 했을 때 남편 반응이 궁금해서 물어보자, "아이들은 내가 잘 돌볼 테니까 잘 다녀오라고 하던데?"라고 말했다. 언니는 고등학생과 중학생 두 아들과 스윗한 남편을 뒀다.


찌아쉬안 언니와 나는 수업도, 발표도, 숙제도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라는 점에서 영어 공부를 대하는 학습 태도가 비슷했다. 우리는 수업 중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누구보다 열심히 필기했고 (사실 어학원 수업료가 비싸서 더 열심히 했다!) 특히 반에서는 '문법 천재'로 통했다.

언니와 나는 영어 말하기보다 문법이 더 익숙한, 문법 중심의 공교육을 열심히 따랐던 학생들이었다. 가끔 선생님이 문법 문제를 내실 때면, 우리만 알고 대답할 때가 있었는데, 그런 순간마다 우리가 비슷한 영어 교육 시스템을 거쳐왔다는 생각에 신기했다. 다른 시대에,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이렇게 닮은 점이 많은 우리 모습이 재미있었다.


때때로 저녁에 숙소에서 인스타그램 DM으로 언니와 숙제에 관해 얘기하거나, 다음 날 학원에서 만나 서로 해온 숙제를 비교해 볼 때면 영락없이 우리가 중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언니는 대만 가오슝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나처럼 영어를 본토에서 배우기 위해 한 달간 시간을 내 뉴욕에 왔다. 학생들에게 더 좋은 수업을 해주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언니의 모습이 참 멋있었다.

작은 체구에 큰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언니를 보고 있으면,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뒤늦게 공부를 다시 시작했던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더욱 마음이 갔다.


언니는 때때로 익숙한 유교 국가의 엄마처럼 나를 챙겼다. 날씨가 쌀쌀한 날에는 왜 이렇게 춥게 입었냐며 걱정했고, 미국은 위험하니 늦게 돌아다니지 말라며 신신당부했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를, 마치 10대 소녀 대하듯 걱정해 주는 언니가 무척 귀여웠다.



어학원에는 가끔 'OO Day'라는 이벤트가 열렸다. 학생들과 선생님이 기념일에 맞는 복장을 입고 오는 날인데, 마침 'Twin Day'(친구와 같은 옷을 입는 날)와 어학원의 대표 색인 오렌지색 옷을 입는 'Orange Day'를 앞두고 있었다.

수업 쉬는 시간에 찌아쉬안 언니가 물었다.

"너 트윈데이랑 오렌지데이 어떻게 할거니?"

"....?"


알고 보니 언니는 고국에서 일할 때도 핼러윈 데이에 직접 소름 끼치는 마녀 분장을 할 정도로 꾸미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뉴욕의 핼러윈 데이 때 대만에서 메이크업 세트를 가져오지 않을 걸 두고두고 후회할 정도였다.)


사실 이벤트에 별생각이 없었던 나는 언니의 진지함에 기가 눌려(?) 결국 그날 수업이 끝난 후 함께 입을 커플 아이템을 찾아다니게 됐다.


우리는 한국의 '다이소'와 비슷하게 다양한 제품을 5달러 이하로 판매하는 'Five Below'에 갔다. 매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주황색 배경에 귀여운 햄버거 세트가 그려진 티셔츠를 발견한 나는 언니에게 소리쳤다.

"This is it!"


다음 날, 우리는 그 티셔츠를 입고 학원에 갔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입지 않았을 유치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의 티셔츠를 입는 기분이 꽤 신선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티셔츠가 너무 귀엽다며, 어디서 샀냐고 반응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친구와 커플 아이템을 해본 게 얼마 만인지!


Five Below에서 건진 우리의 커플템


월마트 나들이

언니는 학원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고 있는 나와 달리, 열차로 1시간이나 걸리는 브루클린의 홈스테이에서 통학하고 있었다. 하루는 별다른 일정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언니한테 오늘 뭐 할 거냐고 물으니, 홈스테이 엄마와 함께 차를 월마트에 장을 보러 간다고 했다. 언니는 귀국을 몇일 앞두고 친구와 가족에게 줄 기념품을 산다고 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월마트에 간다니! 월마트는 맨해튼에는 없고 뉴저지나 퀸즈에 있어서 차가 없으면 가기 어려운 곳이다. 나도 따라가겠다고 하자, 언니는 홈스테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학원 친구를 데려가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고 엄마는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우리는 잘됐다며 웃었다.


언니가 사는 홈스테이는 깔끔하고 아늑했다. 내가 살고 있는 맨해튼 중심의 오래되고 낡은 기숙사와는 확연히 달랐다. 언니의 홈스테이 엄마는 브루클린 토박이인 흑인이셨는데, 내가 South Korea에서 왔다고 하자 "왜 South를 붙이니?"라고 물어보실 정도로 한국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으셨다.



미국 영화에서나 봤던 쾌활한 흑인 할머니가 바로 홈스테이 엄마였다


홈스테이 엄마는 흑인 특유의 쾌활한 분위기를 지닌 분이셨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실 것 같은 기분에 나는 뒷자리에서 뉴욕에서 겪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냈다. 기숙사에서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는 것과 기숙사 시설이 얼마나 열악한지에 대해 신세 한탄을 했고 홈스테이 엄마는 어떻게 그런 곳이 있다니 믿을 수 없다고 하시며 함께 화를 내주셨다. 내가 맨해튼은 물도 너무 비싸고 물가가 너무 높다고 말하자 월마트에서 생수 2개를 사서 내게 주시기도 했다.


당시 나는 어학원 기숙사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이후에 머물 곳을 찾는 중이었다. 홈스테이 엄마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하면 언제든 이곳으로 오라고 여러 번 말씀해 주셨는데, 그 따뜻한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다.


브루클린에서도 한 시간을 달려서 온 월마트


차로 한 시간을 달려 월마트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도 창고형 마트가 많지만, 월마트의 규모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세상의 모든 물건이 이곳에 다 있는 것 같았다. 과자, 초콜릿 종류는 수십 가지였고, 샐러드 박스부터 각종 실내 장식물, 옷, 영양제까지 없는 게 없었다. 게다가 맨해튼에 있는 마트보다 물건 가격이 절반정도 저렴했다.


우리는 카트를 끌며 기념으로 살만한 것들이 있는지 분주히 구경했다. 홈스테이 엄마는 우리가 충분히 물건을 구경하고 살 수 있도록 기다려 주셨다.


나중에 언니에게 들으니, 사실 우리를 위해서 일부러 시간 내어 월마트에 데려다 주신 거라고. 비록 한국에 대한 정보는 없으셨지만, 편견 없이 따뜻하게 대해주신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없는 게 없는 미국의 대형마트. 두툼한 고기가 $6.29 밖에 안한다


우리는 월마트에서 1차 쇼핑을 마친 후 2차로 코스트코에 갔다. 코스트코는 한국에도 있지만 본토의 코스트코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고기 종류가 정말 다양했고, 고기가 저렴한 나라답게 두툼한 고기가 6달러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홈스테이 엄마는 우리에게 필요한 물건이 있는지 물어보시며, 우리가 못 찾는 것들은 함께 찾아주셨다.


뉴욕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은 코스트코 $1 조각피자였다


배가 출출해진 나는 코스트코에서 단돈 1달러에 파는 피자 조각을 사 먹었는데 웬걸! 내 두 손보다도 더 큰 이 조각 피자는 정말 맛있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good!"을 연발하는 나를 보며 홈스테이 엄마는 "얘 정말 웃긴 애다"라며 웃음을 터뜨리셨다.


날씨가 어둑해지자 찌아쉬안 언니는 먼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퀸즈에서 브루클린까지 차로 1시간, 브루클린에서 맨해튼까지 열차로 1시간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언니는 홈스테이 엄마에게 브루클린역까지 나를 데려다줘야 한다고 계속 상기시켰다. 그리고 브루클린역에서 나를 내려준 뒤, 숙소에 도착하면 꼭 메시지를 보내라고 신신당부했다.


언니가 보내온 소포

언니는 며칠 뒤 대만으로 돌아갔다.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고 소식가인 데다, 열정에 비해 에너지가 많지 않은 언니에게 뉴욕에서의 한 달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고 기뻐하는 언니였지만, 돌아간 후에도 뉴욕에 있는 내게 계속 연락하며 그곳에서의 일상을 공유해 달라고, "네가 너무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언니는 일터로 돌아가 뉴욕에서의 경험을 직장 동료들에게 발표했다고 했다. 그 발표 자료에는 내 사진이 많이 있다고 했다. 한국 소식에도 관심이 많은 언니는 한국에서 안 좋은 뉴스가 있을 때마다 내게 안부를 묻기도 했다.


언니를 만나서였을까? 나는 뉴욕에서 돌아온 후 남편과 함께 대만 타이베이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언니는 가오슝에 살고 있고, 우리는 2박 3일 짧은 일정으로 왔기에 언니를 만날 순 없었지만, 언니는 내가 대만에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나는 언니에게 대만에 대한 인상과 음식, 여행지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했고 언니는 이런저런 유용한 정보들을 공유해 주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언니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주고 싶은데 주소 좀 알려줘"라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현관문 벨소리가 울려서 나가보니 우체국 아저씨가 큰 상자를 들고 계셨다. 불현듯 언니가 보냈다던 소포가 생각났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들을 잊지 않고 모두 챙겨준 언니
중학생 소녀같이 쓴 'Miss u x ∞' 표현이 귀엽기도, 감동적이기도 했다


언니가 작은 소포를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큰 라면 상자가 와서 깜짝 놀랐다. 박스를 열어보니, 내가 2박 3일 대만 여행 중에 맛있다고 말했던 과자들과 아직 먹어보지 못한 유명한 대만 과자들이 들어 있었다.


그 과자들 사이에 대만 마그넷이 5개가 지퍼백에 따로 보관돼 있었는데, 해외여행 갈 때마다 마그넷을 사 모으는 내 취미를 기억해 준 선물이었다. 그중에는 대만 여행 중 갔던 지우펀의 그림이 담긴 마그넷도 있었다. 마그넷을 지퍼백에 따로 구분해 정리해 둔 주부 9단 언니의 꼼꼼한 손길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It was a wonderful fate that allowed me to meet you. It's really my pleasure. You said you like Taiwanese cookies, so I collected a variety of flavors for you. Hope you like them! I brought some magnets from Taiwan. I hope they become part of your collection.

(널 만난 건 멋진 인연이었어. 정말로 내 기쁨이야. 네가 대만 과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여러 가지 맛의 과자를 모아봤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 대만 마그넷도 몇 개 샀어. 너의 컬렉션의 일부가 되길 바라.)


언니가 중학생 소녀같이 아기자기하게 써 내려간 크리스마스 카드와 나를 생각하며 준비한 감동적인 선물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받은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에 나는 조금 울컥하고 말았다.


언니에게 이렇게 큰 상자를 보낼지 몰랐다고, 정말 고맙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올여름, 우리의 햄버거 세트 티셔츠를 입고 언니를 만나러 가오슝으로 가볼까? 언니가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