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내 친구 조나단 선생님

by 리틀 골드문트

내 어학원 담임선생님이었던 조나단은 어쩐지 인간적으로 마음이 가는 사람이었다. 사실 조나단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는 내가 처음 어학원에 입학한 날, 내 이름을 부르는 대신 내가 입고 있던 티셔츠에 적힌 'REORG'로 나를 불렀다. 나는 그게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첫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한두 번 조나단의 수업을 듣고 나서는 그가 정말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조나단은 심슨가족의 호머 심슨을 닮았다. 부리부리한 눈 때문인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다소 어벙해(?) 보였지만 수업을 시작하면 분명하고 또박또박한 말투와 자신감 있는 제스처로 카리스마가 넘쳤다.


그가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가르치는 데 열정적이었다. 조나단은 스스로를 "난 어학원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저주에 걸린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그 어떤 선생님보다 수업을 열심히 가르쳤다. 최소 30살 이상, 조나단 자신보다 나이 많은 머리 희끗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이 반에서 조금이라도 더 미국의 문화를 이해시키고 영어 표현을 익힐 수 있도록 그는 수업 주제와 관련된 재미있는 미국 문화를 소개하며 연극을 하듯이 연기를 하기도 하고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의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성대모사를 정말 잘했는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박한 고퀄리티 재주에 모두가 미친 듯이 웃곤 했다.


조나단은 한창 미국의 대선 기간 학원 선생님 중 유일하게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미국 중서부 캔자스 출신의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수업 시간 때 트럼프와 해리스 중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는데 조나단을 제외한 선생님들은 해리스를 지지하고 있었고 조나단의 트럼프 사랑에 모두 고개를 젓곤 했다. (해리스는 뉴욕주에서 트럼프를 이겼다) 나는 조나단의 미국 보수주의 견해는 듣는 것이 흥미로웠다. 미국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고 조나단도 그중 한 명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만큼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했다. 나는 조나단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 있으면 가감 없이 내 의견을 얘기했고 그는 내 생각을 흥미로워했다.


조나단은 농담을 즐겨 했지만, 대부분은 시니컬한 농담이었기에 어딘지 모르게 괴팍한 인상을 풍겼다. 같은 반 친구들과 선생님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조나단 얘기가 나오면 "선생님은 웃기긴 하지만…."하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했다. 하지만 난 조나단의 시니컬한 농담이 정말 웃겨서 오늘은 또 어떤 농담을 할지 수업이 기대될 정도였고, 무엇보다 그가 표현만 그렇지 어떤 선생님들보다도 학생들을 아끼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반 친구들이 그를 '선생님'이라 부를 때 나는 처음부터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냥 자연스럽게 호칭이 그렇게 나왔는데 나중에 혼자 생각해 보니 무례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수업 쉬는 시간에 그에게 가서 혹시 내가 이름을 불러서 기분이 나쁘다면 알려달라고 말하니 그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며, 나를 친근하게 불러줘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수업 후 액티비티를 지도하는 일을 도맡아 하곤 했다. 액티비티는 15명 내외의 참여 학생들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관람하기', '바에서 언어 교환하기' 등과 같은 수업 외 특별활동이다. 언젠가 그에게 개인적으로 이 액티비티를 지도하며 얼마나 추가 비용을 받는지 사적인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정확한 액수를 말하진 않았지만, 그의 답변을 생각하면 그만큼의 추가 비용을 받자고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매주 1~2회씩 이 복잡한 맨해튼 거리에서 학생들을 인솔하여 무엇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바(Bar)'에서 하는 액티비티에 참여하기 위해 저녁 7시에 학원 앞에서 15명의 학생이 모인 적이 있다. 학원 근처일 줄 알았는데 지하철을 타고도 한참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조나단은 앞장서서 구글맵으로 길을 찾으며 학생들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를 체크했다. 타임스퀘어 주변은 시끄럽고 관광객이 너무 많은 데다가 학생들은 제각각 수다를 떨기에 바빴다.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나는 오늘 저녁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예상은 현실이 됐다. 조나단의 핸드폰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 이 거리에서 예민해졌던 그는, 수업에서 보여준 카리스마 있던 모습은 어디 가고 패닉에 빠진 것처럼 극도의 스트레스를 느끼는 듯했다. "난 큰일에는 별로 신경 안 써. 근데 이렇게 내가 하는 일이 엉망이 되는 건 정말 참을 수가 없어!"


불안이 끔찍이도 싫은 나는 누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해지려고 애쓴다. 이 상황이 들릴 리가 없는 저 뒤에 따라오는 학생들의 떠드는 소리가 길거리 노랫소리와 함께 요란했다. "왜 그래, 별것도 아닌데! 내가 찾아볼게, 어디라고?" 길 찾는 건 내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조나단 팔을 이끌고 학생들을 인솔했다. 나는 계속 농담을 했다. "뉴욕 여행 온 사람한테 가이드받는 기분이 어때?" 그는 웃었다.


우리는 바에 무사히 도착했고 언어 교환 액티비티를 재미있게 마쳤다. 액티비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도 나는 조나단과 함께 학생들을 인솔했다. 그는 내게 무척 고마워했고 좀 멋쩍어했다. 나는 그에게서 나의 완벽주의를 봤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그럴수록 열심히 완벽한 성벽을 쌓으려고 하지만 세상에 그런 건 없다.


학원에서는 매주 출석률, 참여도를 기준으로 '최고의 학생'을 뽑아 축하하는 시간을 갖는다. 조나단은 나를 추천했고, 나는 친구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축하받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어학원을 졸업하고 다른 친구와 함께 조나단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의 50여 년의 삶의 행적의 아주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변함없는 그의 시니컬한 농담을 들으며 이젠 그의 수업을 듣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그는 시니컬하지만 마음 여린 아저씨였고 내겐 최고의 선생님이었다. 문득 그의 농담이 그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