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기다리면 되는 건데
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늘 그렇듯 별로 살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카트는 채소와 고기, 각종 식료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몇 개 사지 않았다면 셀프 계산대를 이용해 빠르게 마트를 나올 수 있었겠지만, 무거워진 카트를 끌고 계산대의 긴 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계산대에 물건을 하나둘 올려놓고 결제가 끝나길 기다리는데, 내 뒤에 서 있던 다음 순서의 사람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손에 카드를 들고 마치 자기 차례가 된 것처럼 계산대 근처를 서성였다. 내 계산이 끝나지도 않고, 본인 물건은 아직 계산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순간 '또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마디 할까 싶었지만 괜한 에너지 써서 뭐하랴 싶어 인상만 찌푸린 채 마트를 나섰다.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며칠 전 다른 마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내가 계산대에서 계산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내 다음 순서인 아저씨가 내 옆에 와서 지폐를 꺼내 들며 본인의 물건부터 계산하려고 했다. 나는 황당해서 아저씨를 쳐다봤고, 계산원은 "이 분부터 계산하고 해 드릴게요." 하고 좋은 말로 타일렀다.
마트에서 나와 차에 타자마자 남편에게 씩씩거리며 말했다. 몇 번의 누적된 이 불쾌한 경험들로 오늘은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질서라는 게 없어! 그렇게 해서 빨리 계산되는 것도 아니잖아? 빨리 계산하고 싶은 건 다들 마찬가지 아니야? 그 몇 초를 못 참아서 왜 저러는 건데?"
내 분노에 공감하던 남편은 자신의 팀원 중 한 명도 비슷한 일로 마트에서 한 아주머니와 크게 싸운 적이 있다고 했다. 본인의 차례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먼저 계산하려고 하길래 그 행동을 지적했더니,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욕을 하길래 싸움이 커졌다고.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고민에 빠졌다.
뉴욕에서 만난 존중과 배려
뉴욕에서 지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질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엄격하다는 점이었다. 뉴욕에서 처음 CVS(Consumer Value Store : 편의점과 약국을 결합한 상점)에서 물건을 사던 날의 일이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는데, 계산대는 의류 매장처럼 여러 명의 계산원이 있고 손님은 한 줄 서기로 대기하는 시스템이었다.
보통 한국에서는 한 줄 서기를 하다가 빈 계산대가 보이면 바로 가서 계산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도 자연스럽게 계산이 막 끝난 계산대로 가서 물건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계산원은 그런 나를 잠깐 보더니 계산을 시작하지 않고 쇼핑백 정리를 시작하는 게 아닌가.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멀뚱히 서 있다가, 1분쯤 지나서야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Okay, I'm ready."
그제야 나는 아차 싶었다. 뉴욕에서는 빈 계산대가 있다고 해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계산원이 준비가 되었음을 신호(눈 맞춤이나 손 들기)로 알려야 비로소 계산대로 갈 수 있고 계산할 수 있다는 질서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계산원이 단순히 밀려드는 손님을 정신없이 처리하는 역할이 아니라, 준비된 상태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정중히 응대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었다. 마찬가지로 손님도 계산원의 준비를 기다리며 존중과 배려를 실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뉴저지에 있는 숙소에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뉴저지와 뉴욕 맨해튼을 오갈 때 우리나라의 시외버스와 비슷한 교통수단인 NJ Transit 버스를 탔다. 뉴저지에 거주하면서 뉴욕에 있는 회사로 통근하는 사람들과 나와 같은 여행객이 자주 이용하는 수단이기에, 고속버스만 한 크기의 그 버스는 대부분 만석이었다.
이 버스의 특징은 뉴저지에서 승객들을 태우고 뉴욕 맨해튼의 'Port Authority Bus Terminal'이라는 정류장에만 정차한다는 점이었다. 그곳에서 내릴 때 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질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고 문이 열리면, 그제야 앞줄의 사람들부터 차례로 내리기 시작하고, 뒤에 앉은 사람들은 앞줄의 사람이 내리기 전까지 일어나지도, 먼저 내리지도 않았다. 숙소에 머물렀던 9일간 매일 이 버스를 타고 왕복했지만, 단 한 번도 먼저 내리려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어느 영상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 왔다는 걸 가장 먼저 깨닫는 순간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이다. 아직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지도 않았는데 승무원이 안내방송을 하기도 전에 다들 일어나서 짐을 내리고 먼저 나가려고 일어선다."
어디 그것뿐이랴. 나는 지하철에서도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 아침 출근 시간, 만원 지하철에서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역이 도착하기도 전에 내리겠다며 다짜고짜 앞에 있는 나를 밀어내는 사람이었다. 비켜줄 공간도 없는데 밀면 나 역시 앞사람을 밀게 되고 억울하게 눈총을 받는다. 정차역에 도착하면 차례대로 내리고 타면 되는데 말이다. 이렇게 다짜고짜 미르는 통에 말싸움이 나는 경우도 여러 번 봤다. 꽉 막힌 답답한 지하철 안에서 싸우는 고성을 들을 때면 기운이 쫙 빠져버리곤 했다.
통근 지하철이 아니더라도, 역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리겠다며 내 옆구리를 찌르는(손으로 쿡쿡 찌른다. 정말이다.) 나이 지긋한 아줌마들도 자주 겪었다. 누군가 어깨를 치고 지나가거나, 때로는 내 발을 밟을 때조차 사과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공중질서를 잘 지키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 타인에게 100% 피해 주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조심하고 배려하면서 공동체 의식을 발휘하며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뉴욕의 지하철에서는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부딪히면 남녀노소 상관없이 'Sorry!'라고 말한다. 그런 배려를 보고 경험하며, 나는 뉴욕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얼마나 존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바쁜 생활 속 타인에 대한 존중은 카페에서도 볼 수 있었다. 미국의 카페는 한국보다 커피 선택 옵션이 훨씬 다양하다. 평범한 카페라떼 하나를 주문할 때도 일반 우유, 저지방 우유, 무지방 우유, 아몬드 우유, 두유 등 여러 가지 옵션 중에서 선택할 수 있고, 바닐라, 헤이즐넛 등 다양한 시럽을 추가할 수도 있다. 이렇다 보니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데에도 사람에 따라 주문이 길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아침에 어학원에 가기 전에 들른 회사 건물 내 커피숍에서, 누구 하나 긴 주문을 불평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무리 바쁜 출근 시간대여도, 점심 직후의 혼잡한 시간대에도, 긴 줄을 기다리고 있어도 사람들은 차분하게 앞사람 주문을 기다렸다. 속으론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표현하는 걸 본 적은 없다. 한국이었으면 눈치를 받았을 상황에서도, 이곳에서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의 여유가 느껴졌다. 개인주의 미국에서는 개인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지키려는 강한 의식이 자리하고 있는 듯했다.
무엇이든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는 '빨리빨리' 문화와 그 안에서 형성된 타인에 대한 무심함. 이 문화는 오늘날 눈부신 성장과 함께 이기적인 한국 사회를 만들어냈다. 타인을 존중하기보다는 자신의 몇 초가 중요하고, 자신이 무심코 한 행동이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공감이 결여된 각박한 사회.
외국인의 눈에 한국은 '카페에서 물건을 놓고 화장실에 가도 안전한 나라', '지하철에 물건을 두고 내려도 되찾을 수 있는 나라'로, 그 어느 곳보다 사회적 신뢰가 높고 질서 있는 나라로 여겨진다. 이토록 자랑할만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리빨리'의 속도 앞에서는 무너지는 질서와 배려가 안타깝다.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느린 행동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빠르게 나아갈 수 있는 현명한 방법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