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언니가 우리 둘을 데리고 간 식당은 대형 쇼핑몰 안에 위치한 광둥식 중식당이었다. 사방이 붉은색으로 가득하고 중국 특유의 문양이 고급스럽게 장식된 곳이었다.
"어이구..."
자리에 앉자마자 앓는 소리가 나왔다. 드디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 우리는 이 웃긴 상황에 대해 세 나라의 언어로 쏟아냈다. 할 말이 많은데 마음이 급하니 영어보다는 각자의 모국어를 섞어가며 빠르게 떠들어댔다. 서윤언니와 짜쉬안 언니는 중국어로, 서윤언니와 나는 한국어로(서윤언니는 조선족이다.) 나와 짜쉬안 언니는 영어로.
한창 대화하고 있는데 서윤언니 핸드폰이 울렸다. 통화를 하는 언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이야?"
"아, 내가 홍콩에 예약해 둔 숙소 말이야. 직접 예약한 사람이 아니면 입실이 불가능하다고 하네... 돈도 이미 다 지불했는데."
홍콩에서 2박 3일 머물기로 한 숙소가, 예약자 본인이 아니라서 입실 불가하다는 호텔 측의 연락이었다. 씁쓸하게 웃으며 서윤 언니가 말했다.
“내일 홍콩 숙소는 다시 예약해야겠다.”
잠시 후, 언니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왔다. 두 번째 홍콩 방문 때, 풍자의 '또간집'에서 소개한 '죽가장'이라는 음식점에서 게튀김을 먹은 적이 있는데, 가격은 비싼데 음식은 너무 짜서 크게 실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게튀김은 짜지 않고 맛이 훌륭했다. 다른 음식들도 정갈하고 입에 잘 맞았다.
배가 불러오니 눈을 3초만 감고 있으면 그대로 잠들 것 같은 묵직한 피로가 몰려왔다. 우리는 일단 서윤 언니 집으로 가서 쉬기로 했다.
나는 서윤 언니를 통해 선전이라는 도시에 대해 처음 알게 됐지만, 선전은 중국에서 가장 핫한 도시이다. 2023년 기준 GDP가 상하이, 베이징 다음이었고, 이미 광저우와 홍콩을 앞지른 만큼 막강한 경제 도시다.
1979년,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어촌이던 이곳을 특별경제구로 지정하며 개발을 시작했다. 불과 40여 년 만에 인구 2천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로 성장했다. 지금의 선전에는 텐센트, 화웨이, BYD, DJI 등 중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모여 있다. 한국의 경제 성장 신화와 닮았다.
서윤언니는 내게 선전에 대해 '잠들지 않는 젊은 도시'라고 소개한 바 있다. 중국의 똑똑한 인재들이 선전에서 밤낮없이 일하고 있고 많은 젊은이들이, 서윤언니가 그러하듯 미혼이라고 했다.
선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도시의 슬로건, "Time is money, efficiency is life"가 선전의 빠른 발전을 대변한다. 다소 비인간적인 문구처럼 느껴질 수 있으나 과거에 한국 역시 그러했다. 지금은 여유를 찾긴 했다고 해도 대한민국 국민의 뿌리에는 성실과 근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쇼핑몰을 나오니 흡사 한국의 강남역과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젠틀몬스터와 같이 한국의 유명 브랜드부터 슈슈통처럼 각광받는 브랜드까지 잘 나가는 샵이 즐비했고 하늘을 찌를듯한 고층 빌딩들이 가득했다. 그 아래 제각기 스타일리시하게 멋을 낸 사람들이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금 선전의 모습이 중국의 현주소다.
문득 최근에 본 KBS 다큐멘터리, <인재전쟁 1부 : 공대에 미친 중국> 편이 떠올랐다. 총 2부작인 이 다큐멘터리의 다음 편은 <인재전쟁 2부 : 의대에 미친 한국> 편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요즘과 같은 기술 패권 시대에 중국 정부가 어떻게 공학, 기술 인재를 육성하는지를 보여주며 반면에 한국 인재들의 의대 쏠림 현상을 비교 분석한다.
한국이 더 이상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하기 전에 이공계 인재가 제대로 대우받는 환경으로의 개선, 기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을 촉구하는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다.
나는 선전의 시내를 바라보며, 다큐멘터리가 말했던 현실을 절감했다. 이 넓은 땅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젊은 인재들이 중국의 든든한 국력이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소름이 돋았다.
거리엔 배달하는 오토바이와 사람들, 차들이 혼돈 속에서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서윤언니가 말했다. "선전에선 걷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 배달원들도 뛰어다녀야 하는 게 선전이야."
우리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서윤언니 집에 도착했다. 서윤언니 집은 방 2개에 화장실 1개, 부엌과 거실이 별도로 있는, 혼자 살기 딱 좋은 곳이었다.
"이 집 산 거야, 아님 빌린 거야?" 집을 보며 냅다 소유 여부부터 묻는 짜쉬안 언니를 보며 웃음이 났다.
나는 거실에 가방을 내려두고 바닥에 털썩 앉았다. 곡소리가 났다. 서윤 언니도 우리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발 빠르게 움직이느라 지쳐있었다. 밖은 어두워졌고, 우리는 일단 씻고 보자고 했다.
서윤언니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사이, 짜쉬안 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언니가 전화를 받는데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졌다. 통화하는 목소리가 급했다.
"무슨 일 생겼어?"
"아.. 남편한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머리를 부딪히셨대. 상태가 안 좋아서 응급실에 가셨대."
"어머, 응급실?"
"응.. 남편이 지금 응급실에 같이 있는데... 아무래도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미안해, 너 괜찮겠니?"
"난 괜찮아!"
샤워를 마치고 온 서윤언니와 짜쉬안 언니가 중국어로 상황을 나누었다. 서윤언니가 나를 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선전에서 대만 가는 비행기는 없고, 있어도 가격이 비싸. 그래서 짜쉬안은 내일 아침에 홍콩에서 대만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기로 했어. 선전에서 홍콩 공항까지 바로 가는 배가 있거든. 내일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서 짜쉬안을 바래다주고 올게."
그리고 언니는 물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사실 이번 여행은 내가 너희 둘을 초대한 것과 다름이 없잖아. 그런데 난 통행증이 없고, 짜쉬안은 내일 대만에 가게 됐고.. 네가 원하면 내일 홍콩에 가도 되지만, 너 혼자 홍콩으로 보내는 건 내 마음이 너무 불안해. 괜찮으면 이번 여행은 여기서 머물며 선전을 구경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니?"
사실 홍콩에서 찍고 싶은 영상과 사진이 많았다. 독립서점에 가보고 싶었고 전시회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혼자 온 여행이었으면 몰라도, 셋이 함께하자고 시작한 여행에서 나 혼자되는 건 좀 다른 문제였다. 나 혼자 홍콩에서 재미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언니. 나도 이곳이 마음에 들고, 언니와 있는 게 더 중요하니까 선전에 있다가 돌아갈게."
"좋아, 네게 보여주고 싶은 곳이 많아!"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꺼지지 않은 선전의 밤거리를 한 바퀴 돌고 편의점에 들러 주전부리를 구매했다. 과자를 펼쳐놓고 수다를 잠시 떨다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짜쉬안 언니는 침대에, 서윤언니와 나는 거실에서 잤다.
언니 거실에는 전기장판이 있었는데, 전기장판을 1도로 맞춰두고 에어컨을 쐬며 잤다. 이건 아시아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지 못할.. 아니다, 같은 한국이어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 거다. 난 바닥은 뜨뜻하고 공기는 시원한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피곤했는데도 언니와 나는 인생살이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늦게 잠들었다.
인기척에 눈을 뜨니 짜쉬안 언니가 가방을 싸고 있었다. 우리 모두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이렇게 큰 캐리어를 가져와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네."
"그러게 말이야. 먼저 가서 미안해."
새벽에도 남편과 통화를 하며 아버지의 상황을 살피던 언니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오후 언니는 아버지와 함께 우리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마저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전해왔다. 언니는 대만에서 가져온 온갖 과자들을 전해주고 갔다. 언니는 마음이 참 따뜻하고 바른 사람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내게는 이제 선전에서의 여행 하루가 남았다.
이제 별일 없겠거니 했는데, 아뿔싸, 내가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