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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28. 2023

은퇴

볼프강 프로징거, 청미, 2021

지난주부턴가 카페에서 글을 쓰는데 눈이 침침했다. 아이패드 화면 속 글씨가 선명하지 않다.

나이 들면 시력이 고정된다는데 예외적으로 눈이 더 나빠진 걸까. 안경을 들여다보니 코받침이 말도 안 되게 틀어져 있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콧잔등이 더 아프다 싶었다. 이참에 새로 하나 맞춰야겠다.

 

안경점에 갔더니 안경사가 깜짝 놀란다.

“많이 불편하셨겠는데요? 가까이 있는 건 어떻게 보셨어요?”

“책 읽을 땐 안경을 안 쓰고 봤죠.”

다초점 안경을 권하는 듯했지만 좀 더 버텨 보겠다고 했다. 지금도 사실 큰 불편은 없다. 안경이 무거워 콧잔등이 아픈 게 문제일 뿐.

코받침이 없는 뿔테 안경을 고를까 했는데 티타늄 테를 권한다. 놀라울 정도로 가볍다. 가격은 저가테의 2.5배.

“백수에겐 너무 비싸네요.”

“아직 일하실 나이 같은데….”

“벌써 퇴직했어요.”

다른 안경테를 골라 써봤지만 이미 티타늄의 가벼움을 체험한 터라 마음이 가지 않았다. 잠시 이번달 생활비를 생각했지만 기존 안경테의 불편함이 컸던지라 그냥 지르기로 했다.


그나저나 안경 하나 맞추는데 퇴직 얘기는 왜 한 걸까. 뭐 몇만 원 깎기는 했다. 렌즈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주기로 하고.  

그래도 구질구질하다. 퇴직 이후의 삶은 이렇다.




“물론 이제는 젊지 않다. 그러나 늙지도 않았다. 그저 삶의 한복판에 섰을 뿐이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은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수식어 하나 없는 ‘은퇴’라는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건 뭘까. 작가는 독일 저널리스트인 볼프강 프로징거(Wolfgang Prosinger).


글은 주인공 ‘헤커’가 퇴직을 앞두고 연금 신청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직 더 일할 수 있는데 은퇴하는 날이 다가온다. 오랜만에 만난 신문사 선배들은 죄다 ‘예전에’, ‘그때는’, ‘옛날에는’ 하며  과거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저렇게 늙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준비하게, 토마스. 무조건 준비해야 해. 계획을 세워. 아니면 나처럼 되고 말 거야.”

가까운 선배가 조언했지만 대책 없이 ‘그날’이 다가온다.


사무실에 쌓아둔 책과, 추억이 담긴 물건들로 빼곡한 책상 서랍을 정리하느라 헤커는 밤늦도록 사무실에 머문다.


내가 퇴직하던 때가 떠올랐다. 나도 이랬다. 내가 쓰던 컴퓨터를 포맷하면 간단할 일을 후배에게 남겨줄 파일, 내가 보관할 파일을 분류하느라 많은 날들을 보냈다.  

그뿐이 아니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퇴직하는 사람들은 작은 상자에 간단히 문구류만 챙겨 나오던데, 내가 챙겨갈 짐보따리가 한가득이었다. 하다못해 목 안마기까지 사무실에 뒀으니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만 한 게 아니라 아예 살다시피 했구나”

헤커의 고백은 내 얘기였다.


은퇴 파티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마지막 날은 가는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시간일 뿐이라고 생각한 헤커에게 친구는 ‘의식’이 중요하다고 설득한다. “매듭, 추억, 새롭게 회복할 바탕이 되어주는 것이 인간 사회의 의식”이니 남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참으라고.

훈훈한 은퇴식을 마치고 헤커는 아내와 긴 여행을 다녀온다. 며칠 집에서 짐 정리를 하고 아내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도 행복했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무기력이 헤커를 덮쳤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자신을 소파에 눌러 앉히는 것 같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참다못한 아내마저 집을 떠나버린 어느 날, 헤커는 어릴 적 단짝이었던 친구의 부음을 접한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자신을 돌아봤다. 퇴직이 심판인 듯, 이제 남은 건 죽음뿐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던 두려움을 걷어냈더니 감사함이 느껴졌다.


“지금 헤커는 살아 있음을, 자신의 인생을 부담이 아닌 가능성으로 느꼈다. 이 인생이 왜소해지고 제한되었으며 의미를 잃었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인생이다.”


그리고 고백한다. 외로움을 과소평가했다고. 은퇴 생활 초기만 해도 누군가를 만나고,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산책하는 것을 상상했는데, 지인들은 일하느라 헤커와 만나줄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은 그 일이 끝남과 동시에 인간관계도 단절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때문이리라.

나도 그랬다. 일로 만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끊어졌을 때, 내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었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그들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책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헤커는 그동안 애써 무시했던 소소한 일들을 시작한다. 규칙적인 취미 생활을 위해 합창단에 나가기로 하고, 딸이 주선해 준 일을 시작하기로 한다. 아내가 가고파 하는 미국 횡단여행의 종잣돈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진다.




안타깝게도 저자는 2016년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은퇴>라는 책을 출간한 게 2014년이니 그(물론 작가는 헤커가 곧 자신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가 낯설어했던 은퇴 이후의 삶을 오래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맞닥뜨린 은퇴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림으로써 마지막까지 저널리스트다운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제목들을 설명하는 카피는 또 얼마나 멋지던지. 천상 ‘쓰는 사람’답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다가 퇴직 이후 내가 보낸 날들이 떠올랐다. 코로나로 갇혀 있다시피 했던 그때, 난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지루해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제일 먼저 시시껄렁한 하루를 세밀하게 기록하는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쉬 날아갈 것 같은 가벼운 일상들을 어떻게든 꽉 채우고 싶었다. 산책을 시작했고,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들을 꺼내 읽었다. 원 없이 OTT 플랫폼을 들락거리며 시리즈물을 몰아봤다. 지금은 많이 게을러졌지만 참 잘했다 싶다.

물론 여전히 ‘퇴직’이 ‘은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진 않지만 조바심내며 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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