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있는 올케가 손녀 R의 영상을 보내왔다. ‘마더스 데이’라고 유치원에서 작은 발표회를 한 모양이다.
R은 나랑 한번 만난 적 있다고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야무지게 고모할머니(이 아이에게 난 이미 할머니다)라고 말 걸어준다. 그 또래답지 않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예상대로 R은 거의 독무대처럼 노래한다. 율동도 완벽하다. 당연히 핸드폰 카메라도 의식하고 있는 듯하다. 잘하고 싶고, 돋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이 가득해 보인다. 벌써부터 끼가 흘러넘친다.
한편, 뒷줄에 있는 한 아이는 계속 손을 비비 꼬며 아무런 동작도 따라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서일까, 아님 그저 하기 싫어서일까. 오지랖이지만 그 아이에게 마음이 쓰인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나는 R과 ‘뒷줄의 아이’ 중간쯤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긴 하지만 굳이 나서려 하지는 않는 아이. 있는 듯 없는 듯 별다른 존재감이 없는 아이. 난 그런 아이였다.
내가 유치원에 입학한 건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였다. 아마도 여섯 살 봄날이었을 것이다.
어디에서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엄마는 나를 초등학교에 일찍 보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동네에서 어느 유치원이 좋다더라 얘기를 먼저 들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 무료하게 뒹굴대던 어느 날, 엄마가 갑자기 유치원에 가보잔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입학한 뒤였던 것 같다. 어린 걸음에 족히 15분은 걸렸던 것 같은데, 처음 마주한 유치원은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원장 수녀님은 또 어찌나 인자해 보이시던지, 조용한 음성으로 물으면 아무 얘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유치원생이 되었다.
유치원에 대한 첫 번째 기억은 달콤함이다. 집에서 먹어본 적 없는 우유(아마도 뜨거운 물에 탄 탈지분유였으리라)가 너무 맛있었다. 매일 간식 시간을 기다렸다. 플라스틱 컵이 아니라 작은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우유. 그래서 뭔가 어른이 된 것 같은,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유 옆에 놓인 카스텔라가 너무 맛있어 보여 나도 모르게 손이 갔던 모양이다. 한 친구가 기도하지 않고 먹었다고 선생님한테 이르는 바람에 행복한 기분은 순식간에 날아갔다. 마치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꼭 그런 애가 있다. 고자질하는…. 아무튼 완전 내향형이었던 나는 무척 쫄았던 것 같다. 그날의 싸한 분위기가 지금도 느껴지는 듯하니 말이다.
유치원에선 매일 강당에 모아 놓고 바른생활 교육도 했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반드시 손을 깨끗하게 씻어야 한다, 돌아다니면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 버스 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서는 절대 안 된다 등등. ‘안 된다’가 얼마나 큰 강조인지, 선생님의 커다란 동작과 큰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 그림을 골라 O X 놀이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런데 살짝 지루했던 것도 같다. 딴생각을 했던가. 저 멀리 보이는 선생님 얼굴이 이상하게 겹쳐 보였다. 그때부터 난시 증세가 있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안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근시와 난시 진단을 받았다.
유치원에선 꼭 낮잠을 재웠다. 유치원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말이다. 우리들은 더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각자 사물함에서 작은 이불을 꺼내 와 잠을 청해야 했다. 푹 잤다고 느낀 날도 있었고, 자는 척 눈만 감은 날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소꿉놀이 같은 그 시간도 좋았다. 자장가 음악이 흘러나오고 선생님이 돌아다니며 어서 자라고 채근하는 모습을 실눈을 뜨며 확인하곤 했다.
슬픈 기억은 산타를 만났을 때였다. 크리스마스가 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던가. 유치원에선 “울면 안 돼~” 노래를 얼마나 자주 부르게 했던가.
드디어 산타 할아버지가 오시는 날. 나보다 먼저 선물을 받은 친구들의 뿌듯한 얼굴을 보며 기대감은 자꾸만 높아져 갔다. 산타 할아버지의 칭찬에 볼까지 빨개지는 아이들 표정을 보며 두근두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 다른 친구들 선물은 하나같이 크던데, 내껀 너무 작다. 산타 할아버지의 말씀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아마도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으라는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집까지 허둥지둥 뛰어왔을 것이다. 산타 선물은 ‘사브레’ 과자였다. 대실망. 슬펐다. 산타 할아버지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난 과자 선물 별로라고요! 사브레가 비싼 과자임엔 틀림없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산타의 사브레 선물은 나뿐 아니라 내 동생에게까지 이어졌다.
순진한 나는 몇 년 뒤에야 알게 됐다. 사브레가 엄마의 선택임을.
“엄마가 뭘 알아야지. 유치원에서 선물 사 오라길래 그냥 가게에서 샀지.”
허탈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맞아, 진짜로 산타 할아버지가 계시다면 내게 분명 좋은 선물을 주셨을 거야…. 정신승리 덕에 엄마에 대한 원망도 접었다.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유치원 생활은 작은 앨범으로 남았다. 벨벳 커버가 씌워진 앨범은 동생의 낙서(은하 유치원 밑에 ‘세탁기’라고 썼지)로 얼룩졌지만, 나는 자주 앨범을 들여다봤다. 또래 친구들보다 어린데도 키가 커서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아이, 사진 속 중심보다 주변에 머물러 있던 아이, 몇 달 뒤 개명하는 바람에 마치 다른 사람처럼 되어 버린 아이….
그 아이는 오십여 년 뒤, 입가에 미소를 띠며 카페에서 그날을 회상할 거라는 걸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