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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l 01. 2024

한번은 만나고 싶은 인연

그렇게 기어이 마주하다

내가 미쳤지. 왜 굳이 연락해서 보자고 했을까.

그날 아침 후회와 귀찮음이 밀려왔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내가 왜 포털에서 A사를 검색해 봤는지 그 연결고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작년 6월, 합정동에서 내 브런치글에 관심을 보인 출판사 관계자와 미팅했을 때 잠시 그 시절이 떠오르긴 했다.

그리고 드라마 <졸업>을 보다가, 혜진과 학원장 현탁이 고생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A사의 그 건물이 생각나긴 했다.

어쩌면 동생 말마따나 생각할 시간이 많아져서 애써 과거의 기억들을 길어 올렸는지도 모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A사에 들어간 건 우연이었다. 당시 나는 누군가가 날린 결정타에 충격을 받은 터였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애써 자위했지만, 남들 보기엔 제 밥벌이도 못하는 한심한 인간일 뿐이었다. 계속 같이 활동해 온 친구에겐 미안했지만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든 돈 버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부탁하던 그때 마침 친구가 A사를 알려줘서 면접을 보게 됐다.


사장이 회사의 비전을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정규직 직원은 디자인 편집팀 언니 B와 나뿐이었다. 사장은 직접 기획한 책을 내고 싶어 했지만, 자잘한 출판 대행 일만 이어졌다. 작은 건물 2층에 자리한 사무실에서 나는 하루 종일 원고를 고쳤고, 매일 아침 사무실을 청소하고 화장실 세면대에서 컵을 씻었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가끔 기분 내는 회식을 했고, 몇몇 지인들과 함께 MT도 갔다. 그러나 회사의 생존을 걱정하는 사장의 고심이 깊어가는 듯했다. 나도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원고를 고치는 데 진력이 났다. 내가 소진되는 느낌, 아니 능력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2년은 채우리라 마음먹었는데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회사를 떠났다.


그런데 A사가 아직도, 심지어 그 분야에 제법 꽤 많은 책들을 내며 생존해 있다니 반가웠다. 그만둔다는 말을 떼기가 어려웠던 그때 마주한 사장 얼굴보다 후덕해 보이는 인터넷 기사 속 사진을 접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여기에서 멈출 텐데, 나는 A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안부인사 메일을 남겨볼까 생각한다. 그러다 괜히 스팸으로 처리될 짓 하지 말고 아예 전화를 거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왠지 사장의 각별한 후배인 B언니 소식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입니다.”

아니, 아직도 그 당시 기획사 이름으로 전화를 받네? 출판기획 일을 여전히 겸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혹시 B언니가 계시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전데요.”

그 시절 B언니였다.



   

출판사 주소를 찍고 지도앱이 알려주는 대로 버스를 탔다. 정류장에 내려 출판사가 위치한 건물을 바라본다. 그때와 다른 곳이지만 비슷한 분위기, 똑같은 2층이다.

신호등을 건너 건물 쪽으로 들어서려는데 주차하려던 승용차 안에서 누군가 부른다.

“저저…. 야, ○○○!”

사장이다. 스물서넛, 풋풋했던 그 시절의 날 부르던 그 말투 그대로다. 내가 낼모레 환갑이라는 현실이 오히려 실감 나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만났다. 세 사람이.

우린 각자 살아온 30여 년의 세월을 요약 설명하느라 바빴다.

핸드폰이 없던 그 시절, 갑작스레 데이트 약속을 잡으려면 사무실로 전화를 해야만 했다. 나는 그때 사무실로 전화하던 그 남자와 결혼해 아이 둘을 두었노라고, 마흔이 넘어 새로운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은퇴했노라고 얘기했다.

사장은 내가 온다는 소식에 잠시 잊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고 했다. 돌아보니 기적 같은 일이라고도.

B언니는 너무나 바쁘게 일하다 보니 이렇게 세월이 흘렀다고, 워낙 출판 환경이 급변하는 바람에 그 흐름을 따라가느라 정신없었다고 말한다.


번은 만나고 싶은 인연이었다.

어쩌면 철없던 20대 그 시절이 더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느낌 그대로 두 사람이 환대해 줘서 고마웠다. 오랜만에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많이 웃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뒤늦게 나의 엉뚱함과 싱거움과 느닷없음에 대해 생각했다.

참, 할 일이 없으니 일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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