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Sep 02. 202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위선과 내로남불 사이

적지 않은 세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간간이 뒤통수를 맞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미련퉁이’라는 사실을. 아울러 직설적인 내가 얼마나 많은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었는지도.


# 사람들

모든 것은 다 후임을 위해서라고 입에 발린 이야기를 하던 A. 그는 일을 그만두면 농사나 짓겠다더니 끊임없이 우리 조직 주변을 맴돌았다. 조직의 성과에 대해선 자신이 해놓은 일 덕분이라고 폄하했고,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발언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 그 자리는 권력이었던 모양이다.


나만 보면 애쓴다고 덕담을 해주던 B. 그러나 그의 말은 시효가 있었다. 그는 전략적 제휴의 관계에서 독립 단계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 이상 나를 컨트롤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독설이 날아왔다. 그에겐 조직의 대의보다 ‘내편’이냐 아니냐가 훨씬 중요한 듯했다.


때론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황도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기 얘기만 하는 C. 회사 근처 식당에서 맥락 없는 이야기를 두세 시간 쉬지 않고 떠들더니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에야 도와주기 힘들다고 했다. 당시 내겐, 거절이 서운했던 게 아니라 간절한 내 마음을 이용하는 듯한 태도가 섭섭했다. 훗날, 그는 자신이 부탁하는 일을 조직의 원칙상 들어줄 수 없다고 하자 온갖 루트로 나를 압박했다.


상대 파트너와 어떻게 합의해야 최선일까 논의하는 회의에서, 좀 봐주자며 상대방 입장을 변호하던 D. 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따졌고,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그가 내게 막말을 던진 건, 켕기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의 다음 행보는 상대편의 뒷배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출세지향적인 인간들에게 이유 없는 발걸음은 없다고 확신했다.


# 삶이란

잊고 싶은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린 건, 내가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읽다가 불쑥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다음 스텝을 고민하며 동아줄을 찾는 인간들 속에서 대체 나는 무엇을 했던가. 원칙과 ‘가오’를 위해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던 삶을 돌아본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으나 선의가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진 않았다.


가끔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여전하구나, 다들. 자기 욕심 포장하는 데 능하고, 자기 사람 끔찍이 챙기고, 무언가를 얻어내야 할 땐 절대 포기하지 않지.

그러나 난 구리기만 하다. 상대를 공격하는 케케묵은 논리도, ‘내로남불’에 놀란 빈약한 자기 합리화도.

성공한 듯한 그들이 직면하게 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가까이하기엔 너무 힘든 수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