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세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간간이 뒤통수를 맞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사람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미련퉁이’라는 사실을. 아울러 직설적인 내가 얼마나 많은 ‘뒷담화의 주인공’이 되었는지도.
# 사람들
모든 것은 다 후임을 위해서라고 입에 발린 이야기를 하던 A. 그는 일을 그만두면 농사나 짓겠다더니 끊임없이 우리 조직 주변을 맴돌았다. 조직의 성과에 대해선 자신이 해놓은 일 덕분이라고 폄하했고, 호시탐탐 재기를 노리는 발언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에게 그 자리는 권력이었던 모양이다.
나만 보면 애쓴다고 덕담을 해주던 B. 그러나 그의 말은 시효가 있었다. 그는 전략적 제휴의 관계에서 독립 단계로 넘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 이상 나를 컨트롤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부터 독설이 날아왔다. 그에겐 조직의 대의보다 ‘내편’이냐 아니냐가 훨씬 중요한 듯했다.
때론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황도 있었다. 어느 자리에서든 자기 얘기만 하는 C. 회사 근처 식당에서 맥락 없는 이야기를 두세 시간 쉬지 않고 떠들더니 자리에서 일어설 때쯤에야 도와주기 힘들다고 했다. 당시 내겐, 거절이 서운했던 게 아니라 간절한 내 마음을 이용하는 듯한 태도가 섭섭했다. 훗날, 그는 자신이 부탁하는 일을 조직의 원칙상 들어줄 수 없다고 하자 온갖 루트로 나를 압박했다.
상대 파트너와 어떻게 합의해야 최선일까 논의하는 회의에서, 좀 봐주자며 상대방 입장을 변호하던 D. 나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따졌고, 결국 언성이 높아졌다. 그가 내게 막말을 던진 건, 켕기는 게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의 다음 행보는 상대편의 뒷배 없이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출세지향적인 인간들에게 이유 없는 발걸음은 없다고 확신했다.
# 삶이란
잊고 싶은 과거의 사람들을 떠올린 건, 내가 예전에 써 놓은 글을 읽다가 불쑥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다음 스텝을 고민하며 동아줄을 찾는 인간들 속에서 대체 나는 무엇을 했던가. 원칙과 ‘가오’를 위해 철저히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던 삶을 돌아본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으나 선의가 좋은 결과를 보장해 주진 않았다.
가끔 그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여전하구나, 다들. 자기 욕심 포장하는 데 능하고, 자기 사람 끔찍이 챙기고, 무언가를 얻어내야 할 땐 절대 포기하지 않지.
그러나 난 구리기만 하다. 상대를 공격하는 케케묵은 논리도, ‘내로남불’에 놀란 빈약한 자기 합리화도.
성공한 듯한 그들이 직면하게 될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