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번째 글에 담고 싶은 마음
열심히, 그리고 진실되게
한때 박완서 작가는 내 롤모델이었다.
처음 쓴 소설로 단박에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된 것도 놀라운데,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아홉이었다는 사실이 내겐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기나긴 육아의 터널을 지나던 삼십 대 때, 작가를 보며 나도 언젠가 내 일을 찾길 꿈꿨다. 어쩌면 그 마음은 아직 늦지 않았다는 자기 위안과, 막막한 미래가 그래도 희망적일 거라는 기대 같은 것이었다.
마흔 살에 취업을 결심했지만 나를 받아준 회사는 저임금 고강도 정신노동이 요구되는 곳이었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것마저 붙잡지 않으면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홀로 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때려치우고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십사 년을 버텼다. 그리고 호기롭게 사표를 던졌다. 다들 의아해했지만 미련은 없었다.
하지만 은퇴 후 맞닥뜨린 현실은 예측할 수 없는 지뢰밭이었다. 그때 내 손을 잡아 준 건 글쓰기였다. 더없이 넓은 품으로 나를 이끌었고 견딜 만하게 다독여줬다. 어쩌면 좀 더 나은 어른으로 늙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겼다.
오늘로써 브런치에 발행한 글이 세 자릿수가 됐다. 2년여의 시간 동안 이런저런 소재를 그러모아 백 편의 글이 되었다. 브런치 작가 중엔 매일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깜냥으론 애썼다 싶다. 그러나 더 솔직한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실 이 정도는 회사 다니면서도 다들 하지 않니? 더구나 시간이 많은 백수인데 더 열심을 내면 좀 좋아? 글쓰기 잘하고 싶다면서 왜 숙제처럼 하는 건데?
긴 여행을 다녀온 후유증 때문인지, 쉬 가시지 않는 더위 때문인지 도무지 책도 글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글이 써지네 마네, 구독자가 느네 안 느네, 글쓰기 플랫폼이 문제네 아니네 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새삼 작가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차올랐다.
그동안 박완서 작가를 잘못 알았다.
그의 소설과 에세이를 섭렵했지만 그저 대작가이기에 당연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의 필력은 “지독하게 열심히” 습작에 습작을 거듭한 결과였음을 알게 됐다.
“우선 자신의 능력을 시험할 겸, 개발도 할 겸, 하나둘 습작을 시작했다. 지독하게 열심히 했다. 밤잠을 설치고, 입맛을 놓치고, 남의 좋은 글을 읽고 샘을 내고, 발표의 가망도 없는 글을 썼다. 차차 글 쓰는 어려움에 눈을 떴다. 자연히 쉽게 쓴 글이 쉽게 당선된 데서 비롯된 내심의 은밀한 오만도 숨이 죽었다.”(215쪽)
마치 죽비에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은 없다. 글쓰기는 그 무엇보다 정확하고 진실하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으면, 성찰하지 않으면,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없으면, 읽기를 게을리하면, 쓰고 또 쓰지 않으면 글쓰기는 결국 퇴보하고 만다.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해본 적도 없으면서 마치 슬럼프인 척 엄살을 부렸던 기억이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박완서 작가 10주기 기념 에세이집이라는 타이틀답게 이 책은 작가가 한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글 앞에 얼마나 솔직했는지, 인간적인 슬픔과 비통 앞에 어떻게 무너지고 일어섰는지 마치 고해성사 같은 고백이 가득하다.
“자랑할 거라곤 지금도 습작기처럼 열심히라는 것밖에 없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216쪽)
감히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할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였다. 이토록 진지한 고백과 자기 성찰 앞에 어떻게 겸손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박완서 작가의 그 마음을 되새기며 다시 시작해야겠다. 열심히, 그리고 진실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