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쓰기 1주년 자축!
브런치 1주년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 때문에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며칠 전 이사한 터라 집안은 엉망인데 오늘을 그대로 보낼 수 없어 아침 일찍 카페로 향했다.
그동안 쓴 글들을 읽어보고 나름 기록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메모했다. 여느 때보다 글 쓰는 속도가 더뎠지만 2시간여 끄적인 것 같다.
갑자기 집에 급한 일이 생겨 아이패드를 덮고 부리나케 나왔다. 몇 시간 후, 집에선 글쓰기가 잘 안 되는데 오늘은 특별한 날인지라 쓰던 글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첫 문장부터 마음에 차지 않는다. 수정하려다가 다시 살리기로 한다.
“저장하지 않고 나가시겠습니까?”라고 해서 나는 방금 수정한 내용을 되돌릴 생각에 “아니요”를 눌렀는데 치명적이었다. 카페에서 나올 때 저장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 날아가고 맨 처음에 저장한 두 문장만 남았다. 그것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뒤로 밀렸던 문장이다. 살릴까 말까 고민했던.
그래서 다시 글을 쓴다. 가까스로 남은 문장들에 이어서.
아마도 지금 글은 오전에 썼던 글과 다를 것 같다. 똑같이 다시 쓸 수도 없으려니와, 지난 1년의 내 글을 분석하려던 시도가 갑자기 부질없게 느껴졌다.
이런 축하는 처음이다. 브런치에 글 쓴 지 1년 됐다고 자축하는 글을 쓰다니.
그래도 기념하고 싶다. 글 쓰길 잘했다고 내게 말해주고 싶다.
퇴직하면서 얼마나 자유롭기를 꿈꾸었던가. 내가 하고 싶은 일, 재밌는 일을 찾겠다고 얼마나 호기롭게 얘기했던가.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삶은 우리를 두 가지 방식으로 시험한다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힘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거나.” - <낭만닥터 김사부3> 중
내게 후자의 상황이 밀어닥쳤다. 퇴직과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고 부모님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땐 그 순간이 가장 암담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별의 아픔이 훨씬 견디기 어려웠다. 후회와 안타까움과 어쩔 수 없음이 뒤범벅된 채 허우적댔다. 슬픈 마음이 출렁였다.
그때 브런치에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기억은 서서히 사라져 가지만 엄마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엄마의 삶을 되살릴 유일한 방법이 글쓰기란 생각이 들었다.
꼭 1년 전 오늘, 처음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렸다. 두근두근 어리둥절한데 라이킷한 사람들의 알림이 뜨기 시작했다. 다음 포털에 노출되면서 조회수가 올라갔다.
그렇게 몇 차례 롤러코스터를 타듯 조회수가 급상승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글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4월 ‘요즘 뜨는 브런치북’에 소개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동시에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에도 올랐다. 요즘 뜨는 주제도 아닌 데다 읽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치매 이야기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여줬다. 진심이 담긴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에 뭉클했다. 내 글쓰기에 응답받는 느낌이었다.
오늘까지 총 마흔다섯 편의 글이 모아졌다. 첫 브런치북을 완성하고 가졌던 휴식기와, 엄마가 입원하셨던 기간을 빼고 매주 한 편씩 글을 쓴 덕이다. 엄마 이야기뿐 아니라 지난 여행기, 재밌는 취미 생활, 글을 쓴다는 것, 일상 이야기도 조금씩 풀어낼 용기를 얻었다. 누적 조회수 12만 7천을 넘겼고 177명의 소중한 구독자가 생겼다. 비록 불발되긴 했지만 출간 제안을 받기도 했다. 지난 1년간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의 일들이 일어났다. 감사한 일이다.
여전히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은 미약하지만, 아직 충분히 나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앞으로 1년도 글쓰기가 데려다 놓을 그곳을 기대하며 꾸준히 걸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