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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n 12. 2023

언젠가 내 글이 밥이 될 수 있을까

출간 제안을 받고 든 생각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또 누군가가 브런치에서 본 내 글을 어딘가에 싣고 싶다는 메일이려니 생각했다. 그런 제안이 올 때 난 완곡히 거절한다. 브런치에서도 포털에서도 볼 수 있는 공개된 글이지만, 해당 웹사이트나 책자의 편집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 실리는 건 원치 않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한 한 아무런 커리어도 없지만, 난 내 글이 내가 원하는 곳에 놓이기를 바란다.

    

메일을 받은 그날은 공교롭게도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낙상하신 날이었다. 119에 실려 병원으로 가신 엄마는 대퇴골 골절 진단을 받았고, 병원에선 수술이 불가피하다 했다. 떨어지는 벚꽃 잎처럼 후드득 내 마음도 무너져 내린 날이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 받아본 메일엔 ‘출간 제안’이라는 생경한 단어가 보였다. (치매라는)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글로 옮긴 것이 마음에 든다는 문장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며칠 전부터 <엄마에게 착한 치매가 찾아왔다>가 ‘요즘 뜨는 브런치북’에 오르더니 편집자의 눈에도 띈 모양이다. 


뭔가 이야기를 나누려면 담당자와 만나야 하는데, 그때의 난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치매 환자와 낙상을 검색하면 암울한 이야기만 나왔고, 나는 집주인이 잠적해 버린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두 달이 지나면 이 모든 일이 끝나겠지 싶어, 6월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가장 긴 두 달이었다. 그 사이 엄마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고,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슬픔의 감정들을 걸러낼 자신이 없었다. 담담함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한편으론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난생처음 임대차등기명령이란 걸 하고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관련 서류를 보냈다. 전화로 상담할 땐 열흘이면 처리될 거라고 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편집자와 만나기로 한 약속을 마냥 미룰 수는 없었다. 6월 어느 날, 합정역 부근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합정동은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처음 살게 된 동네였다. 엄마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듯 한강 건너 낯선 동네에 집을 구했다. 거기서 학창시절의 대부분보냈다. 대학 졸업 후 다녔던 출판기획사도 근처 연남동이었다. 약속 장소로 걸어가는 동안 그 시절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난 50대의 날 어떻게 상상했을까.    


브런치 닉네임 ‘데이지’로 A출판사 편집자와 만났다. 베테랑답게 그는 에둘러 얘기하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다양한 평가도 전했다. 내 글의 의도를 충분히 간파하고 있지만, 동시에 부족한 게 무엇인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던 어느 순간부터 내 머릿속은 ‘출간’과 멀어지고 있었다. 원고량이 부족한 건 더 채울 수 있지만, 감정이 흘러넘치는 묘사로 눈물을 쏟게 만드는 건 자신 없었다. “내 원고의 성격이 분명”하다는 편집자의 평가에 혹했는데 독자층을 생각한다면 약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20대 MZ 세대부터 돌봄 경험이 없는 60대 남성 독자에게까지 두루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써낼 재난이 내겐 없다. 감정을 끌어올릴 장치를 끼워 넣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 출판사와는 어렵겠다 싶었다.


사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제대로 보였다. 지금보다 책을 많이 읽고 글도 더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점에선 의미 있는 미팅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어떤 편집자가 지금 글로 충분하다고, 원고만 더 채워서 내자고 했다면 내 기분이 어땠을까. 아마도 미심쩍었을 것이다. 짧게나마 관련 분야에서 일했던 경험에 비춰 봐도 출간은 브런치 글쓰기와는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직 내 글에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관심있다고 반응을 보여준 감사한 일이다.


출간을 상상하면서 잠시 계산해 봤다. 7~10% 인세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될지. 생각보다 적은 액수에 깜짝 놀랐다. 만약 1쇄도 소화하지 못한다면 더 처참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글쓰기 근육을 키울 때이다.  

다들 돈 벌려고 책 내는 게 아니라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 글로 밥벌이를 하고 싶다.

내 글은 언제 내게 밥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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