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진 돌아가시기 한두 해 전부터 조금 괴팍해지셨다. 워낙 다정다감한 성격은 아니셨지만 엄마가 치매 진단을 받은 게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한다. 친정에 가 있던 어느 날, 아버지가 느닷없이 앨범을 버리겠다고 하셨다. 누군가 떼어간 사진 때문에 빈 공간이 남은 앨범이 보기 안 좋아, 흩어져 있는 사진들과 함께 새 앨범에 연도순으로 정리해 드린 지 얼마 안 됐는데 말이다. “다 필요 없다”는 아버지의 그 속마음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버리는 것도 당신이 살아생전에 해야 할 ‘정리’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난 도대체 왜 그러시냐며 화를 냈던 것 같다.
버려질 뻔한 그 앨범엔 밝은 표정의 아버지가 있다. 오빠가 캐나다로 이민 간 다음 해인가, 엄마와 함께 긴 비행을 거쳐 아들을 만나러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밴쿠버 다운타운을 배경으로 엄마, 아빠와 오빠네 가족들이 서 있다. 거리를 밝게 만들어 주는 화사한 꽃들과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며 캐나다에 대한 이미지도 좋게 남았던 것 같다.
막내 부부가 LA에서 오면서 사형제가 다시 밴쿠버에서 뭉쳤다. 당초 밴프(Banff)를 거쳐 재스퍼(Jasper)까지 다녀오기로 계획한 여행 일정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 때문에 밴프 여행으로 축소됐다. 그리고 본격 여행을 앞두고 다운타운에 다녀오기로 했다.
짧게 푹푹 소리를 내며 꺼져 버리는 가스타운 증기 시계 앞. 26년 전, 아버지가 손주들과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 걸었던 거리를 사형제가 함께 걷는다. 그리고 같은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오빠는 어느새 그 시절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며 놀라워한다. 그리고 기념품 가게에서 뭔가를 사라고 자꾸만 권한다. 사실 여행 내내 그랬다. 내가 사줄게, 맘에 들면 사! 이제 백수인데도 오빠는 여전하다.
내가 대학생 때, 오빠는 적자일 게 뻔한 월급쟁이 시절에도 용돈을 쥐어줬고, 나는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며 더 뜯어가곤 했다. 결혼할 땐 내가 모아놓은 돈이 변변찮은 걸 알기에 넉넉하게 보태줬고, 큰 아이 돌잔치 땐 사업이 잘 돌아간다며 선뜻 큰돈을 내놓았다. 아버지가 다섯이나 되는 당신 동생들을 모두 장가보냈듯이, 오빠도 맏이로서 형제들을 챙기고 돌봤다.
캐나다 플레이스(Canada Place)에 가니 거대한 크루즈 선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여름휴가철이라 알래스카로 떠나는 유람선이 많은 듯했다. 오빠는 여전히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이 끌리는 모양이다. 우린 아직 크루즈 여행 할 나이 아니라며 오빠랑 선을 그었지만, 슬금슬금 우리도 육십 줄에 들어서고 있다. 어릴 땐 오빠랑 일곱 살 차이 나는 게 엄청 컸는데 이젠 같이 늙어간다는 걸 실감한다. 체력 관리를 잘하는 오빠의 신체 나이는 어쩌면 우리보다 더 젊을 듯하다.
9년 전에 딸과 함께 걸었던 스탠리 파크(Stanley Park)에 가기로 했다. 그저 도심 속 공원이려니 따라나섰다가 나중에 다리가 아파 고생한 기억이 났다. 우린 밴프 여행을 앞두고 있으므로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한국은 엄청난 여름 더위 때문에 힘들다는데 이곳 풍경은 벌써 가을이 오나 싶다. 간단한 먹을거리를 싸들고 소풍 나온 가족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공원 안 레스토랑엔 대기 손님이 꽤 있었지만 기다림도 지루하지 않았다. 어딜 가나 가드닝에 진심인 캐나다인지라 식물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
그다음 행선지는 그랜빌 섬(Granville Island). 공장과 창고가 있던 건물들을 개조해 문화예술 공간과 퍼블릭 마켓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구경거리는 많았지만 사람들이 많아 휙휙 지나칠 수밖에 없다. 우리 중에 ‘직진 할배’ 같은 이가 있어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내가 미아가 될 판이다.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에 겨우 자리를 잡고 시장에서 산 수제 초콜릿을 한입 베어 문다. 커피와 초콜릿의 조합이 좋아서일까, 사형제가 뭉쳐서일까. 아무튼 행복하다.
막내는 밴프 여행 후에 바로 떠나기로 돼 있어 사실상 밴쿠버 관광은 단 하루뿐이다. 며칠 전에우린 다녀왔지만 포트 랭리(Fort Langley)에 다시 들르기로 했다. 이효리가 입양 보낸 강아지들을 만나러 떠나는 <캐나다 체크인>에 나온 곳이기도 하다. 오빤 그야말로 옆 동네라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프레이저 강과 기찻길, 아기자기한 상점들의 풍경이 예뻤다. 함께 사진을 찍어 주며 이 추억들이 오래오래 남기를 바라 본다. 아버지로부터 이어져온 따뜻한 형제애가 부디 빛이 바래지 않기를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