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의 면회, 그렇게 한 해가 갔다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았더라
엄마는 엄마였다.
“엄마, 오빠가 아프대요. 몸살이 난 모양이에요.”
평소엔 보는 둥 마는 둥 하시던 엄마가 전화기 속 아들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엄마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그러더니 금세 눈가가 촉촉해진다.
당신조차 잃어버린 엄마가 머리가 하얗게 센 육십 대 아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안 되겠다 싶어 엄마를 안심시키는 말을 건넨다.
“엄마, 오빤 원래 엄살이 심하잖아요. 괜찮을 거예요.”
엄마가 그제야 긴장한 표정을 누그러뜨린다.
여행을 다녀오느라 근 한 달 만에 엄마를 뵈러 갔다.
“엄마, 그새 예뻐지셨네?”
내 말에 엄마가 활짝 웃으신다. 예뻐졌다는 말을 누가 싫어하랴. 칭찬은 치매를 앓는 엄마도 춤추게 한다. 엄마의 미소는 오늘 컨디션이 좋다는 걸 알려주는 지표이다.
면회의 내용은 늘 비슷하다. 엄마에게 안부인사를 하고, 엄마가 이해하시든 못하든 그동안 집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지난주에 누구 결혼식에 다녀왔다느니, 손주 누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느니… ). 그리고 캐나다에 있는 오빠와 영상통화를 한다. 엄마가 지루해하며 다른 데 시선을 돌릴 때면 치트키를 써야 한다.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같은 노래가 효과적이다. 면회 내내 동생은 엄마의 웃음 포인트를 노린다. 형제들과 공유할 사진을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미소를 얻고자 과장된 표정을 지어가며 이야기를 건넨다.
면회 시간은 기껏해야 30분, 엄마의 집중도를 감안할 때 짧지 않은 시간이다. 줄곧 다른 생각을 하셨던 엄마도 헤어질 때면 어쩔 줄 몰라 한다. 우리는 엄마를 안아드리고 곧 오겠다고 말한다. 휠체어를 탄 엄마 모습이 여전히 낯설지만, 우리는 엄마가 그만하신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서로를 위로한다. 엄마를 만나기 위해 우리는 올해 스물두 번 만났고, 그렇게 2024년이 지나갔다.
얼마 전, 동네 친구 C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그날따라 왜 그리 내 얘기를 많이 했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어떻게 요양원에 가시게 됐는지, 아버진 왜 돌아가셨는지, 힘들었던 지난 이야기들을 하는데 C가 불쑥 말한다.
“자기도 조심해야겠다. 엄마는 치매에 아버지는 암이셨다니 어떡한대….”
뭔가 말문을 닫게 만드는 말이었다. 내 잘못이 아닌데 마치 원죄를 짊어진 듯한 느낌, 터부시되는 느낌, 부정이라도 타는 듯, 낙인이 찍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친구가 진심으로 내 걱정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얘, 치매는 물론 유전되기도 하지만 고령화시대를 사는 한 남의 일이 아니야. 암도 마찬가지지….’ 뭐라 대꾸하고 싶었지만 조용히 말을 삼켰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사건들을 만난다. 원치 않는 트라우마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적잖은 사람들이 직접적인 사건의 충격보다 주변인들의 시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
섣부른 말은 때로 의도와 다르게 상처가 되기도 한다. 상대는 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이라지만 당사자는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적어도 내가 겪은 바로는 그랬다. 미세한 뉘앙스에도 아문 듯한 상처가 벌어진다. 평정심을 찾은 줄 알았지만, 이럴 때 쉽게 무너지는 걸 보면 아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