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봄날에 든 생각
잠시 여행을 다녀오느라 올핸 만개한 벚꽃을 보지 못했다.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다 싶다.
벚꽃을 보면 2년 전 그날이 떠올라 슬프다. 요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부디 엄마가 괜찮으시길 간절히 기도했던 순간. 엑스레이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 공원 그 벤치. 활짝 핀 벚꽃처럼 함박웃음을 지으며 사진 찍는 사람들의 표정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그날.
엄마는 그날 이후로 걷지 못하시게 됐다. 휠체어 발판에 가볍게 걸쳐진 엄마 발을 보면, 근육이 모두 빠져버린 앙상한 다리를 보면 가슴이 저민다.
요즘 엄마는 면회할 때면 손을 내미신다. 우리들의 온기를 느끼고 싶으신 듯, 따뜻한 사랑을 나눠주고 싶으신 듯. 면회하는 내내 동생과 나는 엄마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인공 어깨관절이 수명을 다했는지 오른팔이 불편하셔서 왼손뿐이지만, 엄마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다.
그날 그날의 엄마 상태에 따라 우린 달리 불린다. 컨디션이 최상이면 딸, 보통이면 동생, 영 안 좋은 날엔 누구더라.. 알쏭달쏭한 표정을 목도하지만 아무래도 좋다. 엄마가 먼저 손을 내밀어 우리들의 손을 잡아주는 그 시간이 좋다. 언제나 적정한 그 온도가 좋다.
엄마와 함께 끼려고 커플 비즈 반지를 샀다. 내 껀 왜 없냐고 동생이 타박한다. 난, 어서 사진이나 찍으라고 재촉한다. 두 딸이 티격태격하자 엄마가 웃는다.
한평생 고생만 하신 엄마 손이지만 곱기만 하다. 엄마 손, 내 손, 엄마 손, 내 손. 두 사람의 손이 포개진다. 엄마도 이 온기를 오래도록 기억하시면 좋겠다.
난 엄마랑은 한 군데도 닮은 구석이 없는 딸이다. 일단 첫인상부터 자그마하고 하얀 피부를 가진 엄마와 딴판인 데다, 얼굴 생김새도 완전 아빠 쪽이라 엄마 닮았다는 얘기를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럴 때면 엄마가 서운할 법도 한데, 엄만 그저 작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암, 나보다 커야지, 이런 혼잣말을 하셨던 걸 보면 아마도 당신이 잘 먹여 컸다고 생각하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내게도 엄마 얼굴이 보이나 보다. 몇 달 전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모가 반가워하며 그 얘기를 해준다. 이목구비는 변할 리 없고, 엄마와 인상이 비슷해진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엄마의 초긍정 멘털을 닮고 싶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미소를 닮고 싶다.
엄마와 꼭 닮았단 얘기를 들은 건 출산할 때였다. 큰 아이를 낳느라 산통에 시달릴 때, 간호사가 좀 참으라는 말에 얼마나 아픈 줄 아느냐며 엄마가 한 마디 해줬던 그 밤. 진통으로 꼬박 밤을 새워야 했던 그날. 엄마는 옛날 사람답게 사위한텐 아이 낳고 연락하면 된다고, 굳이 당신이 밤새 내 옆을 지켰다. 엄마를 닮아 아이를 허리로 낳는 모양이라고, 허리 아파 어떡하냐며 내 손을 꼭 붙잡아 주셨다. 그 고통은 나만 안다는 듯 안타까워하시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쉰여섯, 그때의 엄마가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엄마에게 우린 어떤 딸이었을까. 외삼촌댁 언니들 얘기를 자주 하셨던 것으로 봐서는 부러우셨나 보다.
야, 그 집은 딸 셋이 친정에서 자주 모인다더라 … 걔들은 살림만 하고 집에서 편히 지내는데 우리집 딸들은 왜 이리 바쁘다니….
그땐 엄마가 별 걸 다 부러워하신다고 생각했다. 돌아보니, 당신이 많이 외로우셨나 보다. 하지만 우린 엄마를 알지 못했다.
엄청난 돈을 버는 것도,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딸들의 하루하루는 바빴고 피곤했다. 그래도 가끔 시간을 내서 엄마가 좋아하는 샤브샤브 집에도 가도 한정식 집에도 갔지만 엄마는 번번이 처음인 듯 얘기했다. 매번 이민을 떠난 아들과 함께 갔던 식당 얘기만 했다. 과거의 기억만 부여잡고 사는 듯한 엄마가 서운했다. 아빠를 닮아 무뚝뚝한 딸들은 날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땐 이미 늦었다. 그렇게 우린 치매에 무지했다.
동생이 말한다.
언니, 우리가 좀 더 일찍 엄마를 알아채고 치매 약을 드시게 했으면 좋아지셨을까.
돌이킬 수 없는 순간들, ‘만약’이라는 가정에 무슨 말을 얹을 수 있을까.
부디 내년엔 활짝 핀 벚꽃을 봐도 슬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벚꽃의 꽃말처럼 ‘삶의 아름다움’을 엄마와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