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다는 느낌
5월 8일 어버이날. 딸에게 용돈을 받았다. 언제나처럼 B와 나, 각자의 카톡으로 봉투가 날아온다. 따로 챙겨 받는 맛이 꽤 좋다. 조금은 찔린다.
사실 난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불효자였다. 내게 돈은 마치 ‘일용할 양식’처럼 그저 오늘을 살 정도만큼만 생기는 것 같았다. 그런 사정을 잘 아시는 부모님은 기념일에 내미는 가벼운 봉투도 귀하게 받으셨다. 그리곤 두 배, 세 배로 채워 갖가지 명목으로 손주들에게 돌려주시곤 했다. 가성비 나쁜 자식은 끝까지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야 내가 그렇게 넙죽넙죽 받기만 한 자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버지 없는 어버이날은 슬프다. 보이지 않는 날개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것만 같다. 하나 남은 날개, 위태롭게 파닥거리는 듯한 날개를 꼬옥 붙잡고 오래오래 이 날을 맞고 싶다.
어버이날, 엄마를 만나러 갔다. 평소와 달리 길이 막힌다. 내비게이션에서 다른 길을 검색한다. 면회 시각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시는 엄마를 생각해서도 지각하면 안 된다. 다행히 거의 정각에 도착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엄마가 웃는다. 우린 이제 굳이 “누구게?”라고 묻지 않는다. 엄마의 미소면 된다.
엄마가 좋아하시던 노래 <어머니의 마음>을 불러본다. 엄마는 가삿말을 따라 하는 대신 ‘아멘’이라고 화답했다. 다행히 기도의 습관은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동생이 티슈를 쏙 빼가더니 괜히 눈물바람이다. 엄마랑 같이 살 때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치매 초기 증세로 억지 부리는 엄마를 동생 혼자 오롯이 견뎌야 하는 나날은 힘들었을 것이다. 결국 동생은 따로 나가 살겠다고 선전포고를 했고, 엄마는 질 수 없다는 듯 맘대로 하라고 맞섰다. 그러나 이미 엄마는 지고 있었다. 내게 슬며시 얘가 진짜로 나갈 것 같으냐며 물었던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에이, 그냥 하는 소리야. 나가긴 어딜 나가.” 내 말에 엄마가 얼마나 안도하는 표정을 짓던지. 엄마는 당신의 약한 모습을 감추려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렸는지도 모른다.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우릴 보면서 엄마가 눈시울을 붉힌다. 엄마, 곧 또 올게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엄마를 달랜다. 손 흔들어 주라는 원장의 말에 엄마가 억지로 손을 올려 보인다. 엄마가 확실히 우리를 알아본 날. 우리의 감정은 양가적이다. 한없이 기쁘면서도 슬프다.
면회하고 돌아오자마자 앓았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목이 아프더니 결국 몸살이 난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코로나에 걸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토요일쯤에라도 병원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주말 내내 끙끙댔다.
아프면 한없이 약해진다. 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면역력이 떨어졌나? 그동안 운동을 소홀히 해서 그런가?
수면 부족을 채우듯 긴 잠이 쏟아졌다. 온전히 혼자 앓는 아픔이 쓸쓸하다. 엄마가 이마를 짚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초등학교 5, 6학년 무렵이 떠오른다. 엄만 내가 열이 나고 아플 때면 복숭아 ‘간스메’를 사 왔다. 아픈 내게만 주던 다디단 황도 통조림. 입안이 소태처럼 써서 아무것도 못 먹을 때 말캉한 과육을 베어 먹으면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충만함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도 없어. 불쌍해.” 치매 초기, 가끔씩 중얼거리던 엄마의 혼잣말이 떠오른다.
매정하게 이렇게 대꾸하던 내 모습도 생각난다. “아니 엄마, 엄마 연세가 얼만데 외할머니가 여태껏 살아계셔?”
엄마의 그 말은 치매 환자의 단순한 중얼거림이 아니라 외로움일 텐데, 그걸 몰랐던 난 엄마를 달래주지 못했다. 한없이 약해진 엄마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했다.
그걸 이제야 떠올리며 깨닫는다. 된통 몸살을 앓고 나서야 엄마 마음을 이해한다.
어버이날 엄마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요양원 원장에게 물었더니 괜찮으시단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동안 서운해하시긴 했는데 그 뒤로는 기분이 다운되지 않았다고 걱정 말란다. 우리들이 면회 온다고 원장이 전하면 “얘들이 진짜 온다니?” 하며 좋아하신다는 엄마. 더 자주 찾아뵈어야겠다.